제3절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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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3.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under the Leadership of Jesus

천사(天使)를 주관해야 할 아담(고전 6 : 3)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탄의 주관을 받아서 지옥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하여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그 자신이 사탄을 굴복시켜 천국을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제1절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사탄이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순종굴복할 리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인 책임을 지시고 야곱과 모세를 세워 장차 예수님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본보기노정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In the beginning, Adam should have governed the angels (I Cor. 6:3); but due to his fall, human beings came under Satan’s dominion and formed a hellish world. To restore this through indemnity, Jesus came as the second Adam to personally bring Satan to submission and establish the Kingdom of Heaven. However, Satan, who does not submit even to God, would by no means readily yield to Jesus and people of faith. Therefore, taking responsibility for having created human beings, God raised up Jacob and Moses and revealed through them the model course by which Jesus could subjugate Satan (cf. Moses and Jesus 1).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적(象徵的)인 노정을 걸었고, 모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형상적(形象的)인 노정을 걸었으며, 예수님은 그 실체적(實體的)인 노정을 걸으셔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사탄을 굴복시켜 나아갔던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완수하셔야 했던 것이다.

Jacob walked the symbolic course to bring Satan to submission, while Moses walked the image course. Their courses pioneered the way for Jesus to walk the actual course. In walking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Jesus followed the model demonstrated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Moses was working to subjugate Satan.

신명기 18장 18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고 하신 말씀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先知者) 하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모세와 같은 노정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 보여 주신 본보기노정을 그대로 걷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God told Moses, “I will raise up for them a prophet like you from among their brethren; and I will put my words in his mouth, and he shall speak to them all that I command him” (Deut. 18:18). By “a prophet like you,” God was referring to Jesus, who was to walk the same course Moses walked. When Jesus said, “the Son can do nothing of his own accord, but only what he sees the Father doing; for whatever he does, that the Son does likewise” (John 5:19), he meant that God had revealed the model course through Moses and that he was following in Moses’ footsteps.

상세한 것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에서 논하였지만, 모세를 중심한 3차의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과 예수님을 중심한 3차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전체적인 윤곽을 비교 대조하면서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논하여 보기로 하자.

Let us examine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centered on Jesus, drawing relevant comparisons between the three national courses to restore Canaan under Moses’ leadership and the three worldwide courses to restore Canaan under Jesus’ leadership.

Course to subjugate Satan

Ⅰ.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3.1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1. 믿음의 기대

3.1.1 The Foundation of Faith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中心人物)은 세례 요한이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떠한 입장에서 그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었던가?

In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central figure entrusted with the mission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was John the Baptist. From what position was John supposed to accomplish this mission?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가 석판(石板)을 깨뜨린 것과 또 반석(磐石)을 두 번 친 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그를 중심한 유대민족이 불신(不信)으로 돌아가면 석판과 반석의 실체인 예수님의 몸도 칠 수 있다는 조건을 사탄에게 허락하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모세노정에서 논급하였다.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Moses’ leadership, Moses broke the tablets of stone and struck the rock twice. This set up conditions for Satan to strike the body of Jesus – the fulfillment of the tablets and the rock – should the Jewish people of his day not believe in him.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조건을 피하시게 되려면, 그의 강림(降臨)을 위한 터전을 닦아 나아가는 선민(選民)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聖殿)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불신의 길을 걷게 되어 장차 오실 예수님 앞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켜 왔으므로, 이러한 조건을 막기 위하여 선지자(先知者) 엘리야가 와서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를 합하여 850명을 멸하는 등(왕상 18 : 19) 사탄 분립의 역사(役事)를 하고 승천하였던 것이다(왕하 2 : 11). 그러나 엘리야의 전체적인 사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는 재림해야 했던 것이다(말 4 : 5). 이와 같이 엘리야가 다하지 못한 사탄 분립의 사명을 맡아 완수하고, 메시아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요 1 : 23) 엘리야로 왔던 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다(마 11 : 14, 마 17 : 13).

For Jesus to be released from this condition, the chosen people entrusted with the mission to prepare for his coming should have united around the Temple, the image representation of the Messiah who was to come. However, over the years the Israelites repeatedly lapsed into faithlessness and thus multiplied conditions for Satan to attack Jesus. To erase these conditions, God sent the prophet Elijah. Elijah worked to separate Satan by defeating the prophets of Baal and Asherah, 850 altogether (I Kings 18:19), and then ascended to heaven (II Kings 2:11). Yet, because Elijah did not complete his entire mission he had to return (Mal. 4:5). John the Baptist was the prophet who came as Elijah (Matt. 11:14); (Matt. 17:13) to complete this unfinished mission to separate Satan and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 (John 1:23).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埃及)에서 400년 동안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고역(苦役)을 당하여 오다가, 그들을 민족적으로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메시아를 맞게 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모세 한 분을 만나게 되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말라기 선지(先知) 이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 400년 간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페르시아, 헬라, 애급,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異邦)들에게 고역을 당하여 오다가, 마침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 앞으로 그들을 인도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세례 요한을 만났던 것이다.

The Israelites had suffered hardships in Egypt for four hundred years without a prophet to guide them. They finally met Moses, the one man who could lead them into Canaan as a nation in preparation to receive the Messiah. In a similar fashion, the Jewish people suffered all kinds of tribulations under the oppression of the gentile nations of Persia, Greece, Egypt, Syria and Rome without a prophet to guide them during the four-hundred-year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 which began at the time of the prophet Malachi (cf. Periods 3.6). They finally met John the Baptist, the one man who could lead them to the Messiah, who was coming to restore Canaan worldwide.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 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충효(忠孝)의 도를 배웠던 것과 같이,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 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石淸)을 먹으면서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하늘 대한 충효(忠孝)의 도를 세웠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祭司長)을 비롯한(요 1 : 19) 유대인들은 모두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눅 3 : 15). 세례 요한은 이와 같이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웠으므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Thus, John the Baptist, like Moses, was called on the foundation of a four-hundred-year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Moses had learned to love his brethren and the traditions of his fathers while living in the Pharaoh’s palace. Likewise, John the Baptist learned the way of faith and obedience to Heaven and made preparations for the Messiah while living on locusts and wild honey in the wilderness. His life was so exemplary that many people, including the priests and Levites, wondered whether he might be the Messiah (John 1:19); (Luke 3:15). In this way, John the Baptist successfully established the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and was able to la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2. 실체기대

3.1.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세례 요한은 모세와 같은 입장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있어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였기 때문에,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다(본장 제2절 Ⅰ 2). 따라서 세례 요한은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40년 간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지나고,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운 터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Since John the Baptist stood in the same position as Moses, he likewise stood in the dual positions of parent and child. From the position of parent, he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From the position of child, he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for the fulfillment of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cf. Moses and Jesus 2.1.2). John the Baptist recovered a foundation on the world level comparable to that of Moses when he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first national course after forty years inside the Pharaoh’s palace.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이는 것을 보고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국가인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지만, 세례 요한을 중심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하(政權下)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그 제국(帝國)을 하늘 것으로 복귀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례 요한을 중심한 기사이적(奇事異蹟)을 보여 주시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던 것이다.

In Moses’ day, God’s desire at the first dispensation to start was that the Israelites develop trust in Moses when they witnessed him killing an Egyptian taskmaster. The Israelites were then to leave the satanic world of Egypt and travel to the land of Canaan. In John the Baptist’s time, however, the Jewish people were not to leave the Roman Empire and set out for another land. They were to remain within the empire, win over its people, and restore the empire to God’s side.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y encouraging the Jewish people to believe in John through the miracles surrounding his life.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잉태(孕胎)에 관한 천사의 놀라운 예고와, 또 그 부친이 이것을 믿지 않았을 때 벙어리가 되었던 기사, 그리고 그가 출생할 때에 보여 주신 이적 등으로 말미암아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눅 1 : 65∼66)고 하신 성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세례 요한의 출생시부터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石淸)으로 연명하면서 기도의 생활을 한 그의 빛나는 수도(修道)의 생애로 인하여, 제사장들과(요 1 : 19) 일반 유대인들이(눅 3 : 15) 그를 메시아로 오인할 정도로 그의 신망이 높았던 것이다.

At John’s conception, an angel gave a wondrous prophecy concerning the child. When his father Zechariah did not believe it, he was struck dumb, and his speech returned only after he circumcised and named the child. Through these and other miracles, the Israelites were convinced that John was a prophet sent by God: Fear came on all their neighbors. And all these things were talked about through all the hill country of Judea; and all who heard them laid them up in their hearts, saying, “What then will this child be?” For the hand of the Lord was with him (Luke 1:65-66). Moreover, John led an illustrious life of prayer and asceticism in the wilderness, living on locusts and wild honey. The general public and even the priests admired him so highly that many thought he might be the Messiah (Luke 3:15).

모세가 바로궁중 40년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을 마치고 애급인(埃及人)을 살해하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믿고 따랐더라면, 그들은 홍해(紅海)를 건너거나 광야를 돌지 않고 또 석판(石板)이나 성막(聖幕)이나 법궤(法櫃)도 필요 없이 블레셋의 곧은 길을 통하여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기사 이적(奇事異蹟)으로써 믿음의 대상자로 세워 주신 세례 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When Moses finished the forty-year indemnity period in the Pharaoh’s palace and killed the Egyptian, the Israelites should have been deeply inspired by his love for his people and followed him with faith. They would have then gone straight into Canaan, without having to cross the Red Sea or wander in the wilderness, and without need of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of the Covenant or the Tabernacle. Likewise, the Jewish people in Jesus’ time were to believe in and follow John the Baptist, whom God had raised up through miracles and signs as the focus of their faith. Thus, they would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thereby immediately establishing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The Foundation of Substance

3.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3.1.3 The Failure of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세운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를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요 1 : 19, 눅 3 : 15), 그들은 구약시대(舊約時代)를 청산하고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편 제4장 제2절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서도 그를 의심하는 데 이르렀고(마 11 : 3), 또 자기가 엘리야로 왔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부인하여(요 1 : 21)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는 입장에 서게까지 하였던 것이다.

The Jewish people stood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laid by John the Baptist and followed John as if they were following the Messiah (Luke 3:15). Thereupon, they brought an end to the Old Testament Age and were ready to embark upon a new course to restore Canaan worldwide. Yet, as was explained earlier (cf. Messiah 2). John the Baptist harbored doubts toward Jesus, even though he had testified to him. He sent a delegation and asked Jesus, “Are you he who is to come, or shall we look for another?” (Matt. 11:3). He denied that he was Elijah even though he in fact came to fulfill Elijah’s mission (John 1:21). This not only blocked the Jewish people’s path to Jesus, it even led them to oppose him.

이로써 세례 요한은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하게 됨에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이것도 모세 때와 같이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In effect, John left the position of Abel, depriving the Jewish people of the central person with whom they could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This blocked their way to complete the foundation of substance or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Consequently,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aborted. As was the case in Moses’ days, it was prolonged to a second and then a third course.

The Failure of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Ⅱ.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3.2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1. 믿음의 기대

3.2.1 The Foundation of Faith
(1)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심

3.2.1.1 Jesus Takes On the Mission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은 완성한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때까지의 섭리역사상(攝理歷史上)에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왔다 간 모든 중심인물들이 다하지 못하였던 사명을 완전히 이루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믿고 따르는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전체적인 섭리의 기대와 함께 예수님께 인계해 드린 후 믿음과 충성으로 그를 따르고 모셔야 했던 것이다.

In relationship to Jesus, the perfect Adam, John the Baptist came in the role of the restored Adam. He was to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thus completing all the unfinished missions of the central figures of the past who had labored to restore the foundations of faith and substance. Upon this foundation, he was to present all the fruits of providential history to Jesus and guide the Jewish people, who trusted and followed him, to receive Jesus. Finally, he himself should have attended Jesus with faith and devotion.

세례 요한은 자기도 모르고 행한 일이었지만,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것은(마 3 : 16)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쌓아 온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인계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Even though John the Baptist did not know it, the baptism which he gave to Jesus at the Jordan River (Matt. 3:16) was in truth a ceremony of offering Jesus all of John’s lifelong accomplishments for the sake of God’s Will.

그러나 그 후에 세례 요한은 점점 예수님을 의심하고 배신하는 데 이르렀으므로, 세례 요한을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던(눅 3 : 15) 유대인들은 자연히 예수님을 불신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2절). 따라서 세례 요한이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을 위하여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할수없이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함으로써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禁食)을 하시면서 사탄을 분립하신 것은, 바로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Nevertheless, because John the Baptist gradually came to doubt Jesus and finally even undermined his work, the Jewish people, who had the highest esteem for John, were compelled to disbelieve in Jesus (cf. Messiah 2.2). Consequently,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John had laid for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invaded by Satan. Jesus himself now had to take on John’s mission and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in order to set out on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Jesus fasted for forty days in the wilderness, it was to separate Satan for the very purpose of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however, for this he lowered himself to assume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로서 영광의 주(主)로 오셨으므로 원칙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고전 2 : 8). 그러나 그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던 세례 요한(요 1 : 23, 눅 1 : 75)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당했어야 할 고난을 예수님 자신이 당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 요한 대신으로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출발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자기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 16 : 20).

Jesus, who came as God’s only begotten Son and the Lord of Glory, was not meant to walk a path of suffering (I Cor. 2:8). Rather, it was for John the Baptist, born with the mission to make straight the way of Jesus (John 1:23); (Luke 1:76), to go through tribulations. However, because John did not complete his responsibility, Jesus had to undergo suffering in John’s place. Jesus enjoined Peter not to reveal to the Jewish people that he was the Messiah (Matt. 16:20) because, although he was the Messiah, he had assumed John’s role for the purpose of beginning this phase of the providence.

Jesus Takes on the Mission of John the Baptist
(2) 예수님의 광야 40일 금식기도와 3대 시험

3.2.1.2 Jesus’ Forty-Day Fast and Three Temptations in the Wilderness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40일 금식기도(禁食祈禱)와 3대 시험(三大試驗)에 대한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을 알아야겠다.

Let us examine the remote and immediate causes behind Jesus’ forty-day fast and his three temptations.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반석(磐石) 앞에 섰던 모세가 불신(不信)으로 돌아가 그것을 두 번 쳤기 때문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그 반석(고전 10 : 4)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후일 메시아로 오셔서 모세노정을 본보기로 걸어야 할 예수님의 노정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 오게 될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되면 반석 되시는 예수님 앞에도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 따라서 이 행동은 메시아에 앞서 올 세례 요한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반석을 두 번 친 모세의 행동은, 바로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될 때에 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광야로 나아가 40일 금식과 3대 시험(三大試驗)을 치르지 않을 수 없게 한 원인(遠因)이 되었다.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Moses stood before the rock, he turned faithless and struck the rock twice. As a result, the rock, symbolizing Jesus (I Cor. 10:4), was defiled by Satan. This act affirmed the possibility that centuries later, when Jesus came to walk in the footsteps of Moses’ course, John the Baptist might become faithless and Satan could then attack Jesus, the fulfillment of the rock. Moses’ act also affirmed the possibility that Satan might invade the foundation of faith laid by John the Baptist. Hence, Moses’ act of striking the rock twice was the remote cause which, should John lose faith, would compel Jesus to endure a forty-day fast and face three temptations in the wilderness for the purpose of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사실상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전편 제4장 제2절 Ⅲ) 그가 세웠던 ‘믿음의 기대’에는 사탄이 침범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근인(近因)이 되어 예수님은 몸소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하여 광야에서의 40일 금식과 3대 시험을 겪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John the Baptist actually did become faithless (cf. Messiah 2.3). and Satan invaded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John had laid. This was the immediate cause of Jesus undertaking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by fasting for forty days and overcoming the three temptations. By doing this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그러면 사탄이 3대 시험을 하게 된 목적은 어디 있는가? 마태복음 4장 1절 내지 10절을 보면, 사탄은 예수님에게 돌을 보이면서 그것으로써 떡이 되게 하라고 하였고, 또 그를 성전(聖殿) 꼭대기에 세우고 거기서 뛰어내리라고 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를 산꼭대기에 세우고 자기에게 경배하면 온 세상을 다 주겠다는 등 세 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It is written that after forty days, Satan tested Jesus three times. First, he showed Jesus stones and tempted him to turn them into loaves of bread. Next, he took Jesus to the pinnacle of the Temple and challenged him to throw himself down. Finally, Satan took Jesus to a very high mountain and offered to give Jesus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if he would fall down and worship him (Matt. 4:1-10).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서 그 개성의 완성, 자녀의 번식, 그리고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주관 등 세 가지의 축복(祝福)을 하셨다(창 1 : 28). 그러므로 인간이 이것을 완성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인 것이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킴으로써 이 세 가지 축복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그 창조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이 세 가지의 축복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사탄은 축복 복귀의 길을 막기 위한 그 세 가지의 시험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What was Satan’s purpose in giving Jesus the three temptations?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human beings and gave them three great blessings – perfection of individual character, multiplication of children, and dominion over the natural world (Gen. 1:28) – by which they might accomplish the purpose of creation. By inducing the first human ancestors to fall, Satan deprived humankind of the three great blessings and thus prevented the fulfillment of the purpose of creation. By inducing the first human ancestors to fall, Satan deprived humankind of the three great blessings and thus prevented the fulfillment of the purpose of creation.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accomplish the purpose of creation by restoring these blessings. Therefore, Satan tempted Jesus three times in an attempt to prevent him from restoring the three blessings and accomplishing the purpose of creation.

그러면 예수님은 이 3대 시험(三大試驗)을 어떻게 받으시고 어떻게 이기셨는가?

How, then, did Jesus confront and overcome the three temptations?

우리는 먼저 여기에서 사탄이 어떻게 되어 예수님을 시험하는 주체로 설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First, let us examine how Satan came to be in a position to impose temptations on Jesus.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불신과 모세의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이 예수님과 성신(聖神)을 상징하는 두 석판(石板)과 반석(磐石)을 취함으로써, 그는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의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밝혔다. 그런데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이르러, 사탄을 분립하여 메시아의 갈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자로 왔던 세례 요한(요 1 : 23)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자 모세 때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불신(不信)과 불순종(不順從)으로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미 모세노정에서 예시(豫示)하신 대로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된 것이었다.

Satan first took such a dominant position when,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he claimed possession of the rock and the tablets of stone, which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This was possible because Moses broke the tablets of stone and struck the rock twice in anger at the faithlessness of the people. In the worldwide course, when John the Baptist failed his responsibility, the Jewish people became as disbelieving and disobedient as the Israelites were in Moses’ time. Therefore, as God had already foreshadowed in Moses’ course, Satan rose to a position of power from which he could impose temptations on Jesus.

그러면 여기에서 그 시험(試驗)의 경위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예수님이 광야에서 밤낮 40일을 금식(禁食)하시고 난 뒤,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 : 3)는 시험을 하였다.

After Jesus completed the forty-day fast in the wilderness, Satan appeared before him and tempted him, saying, “If you are the Son of God, command these stones to become loaves of bread” (Matt. 4:3).

그런데 모세가 광야에서 ‘40일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석판(石板)을 깨뜨리고 반석(磐石)을 두 번 쳤던 행동과 세례 요한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 돌을 사탄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기 위하여 예수님도 광야로 나아가 40일을 금식하여 사탄을 분립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이 돌을 찾기 위하여 광야에 나오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옛날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광야노정(曠野路程)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불신으로 흘러 돌을 사탄이 가지게 되었던 것과 같이, 이제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노정에 있는 예수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굶주린 가운데 있으니, 어서 불신으로 돌아가 그 돌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것으로 떡이나 되게 하여 주린 배를 채우면, 그 돌은 사탄이 영원히 가지겠다 하는 뜻이었다.

Satan had possession of the stone. He had claimed the water-giving rock and the tablets of stone based on the condition first set by Moses’ mistakes and then brought to fruition by John the Baptist’s faithlessness. Moses had first obtained the stone after fulfilling dispensation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in the wilderness. To purify and recover the stone, Jesus fasted in the wilderness for forty days. Satan was well aware that Jesus went into the wilderness for this purpose, and his intention in giving the first temptation was to keep the stone in his possession. Jesus suffered from hunger in the wilderness, just as the Israelites had in Moses’ day. When the Israelites could not overcome their hunger but fell into faithlessness, this eventually let Satan claim possession of the stone. Likewise, if Jesus were to lose faith and satisfy his hunger by turning the stone into bread, abandoning his effort to restore the stone, Satan would possess the stone forever.

이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 : 4)고 하셨다.

Jesus’ answer to this temptation was,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s from the mouth of God” (Matt. 4:4).

원래 사람은 두 가지의 영양소로써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즉 자연계로부터 섭취하는 영양소로써는 육신(肉身)이 살아가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는 영인체(靈人體)가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 어 지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그 영인체들이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6장 48절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고 말씀하시면서, 계속하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 : 53)고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떡을 먹고 그 육신이 살아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서 온전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이 육신으로 화하여 모든 사람의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지 않으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Originally, human beings were created to live on two kinds of nourishment. The body lives on the nourishment obtained from the physical world, while the spirit lives by receiving the love and truth of God. However, since fallen people cannot receive the Word directly from God, their spirits have life by the words of Jesus, who came as the incarnation of God’s Word (John 1:14). Jesus said, “I am the bread of life….unless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ou have no life in you” (John 6:48-53). He meant that a person does not live a complete and wholesome life merely by eating bread to keep his body alive. His life is not full unless he lives by Jesus, who came as the life-giving nourishment for the spirit.

그런데 모세가 석판(石板)의 뿌리 되는 반석(磐石)을 두 번 침으로써 그 돌은 사탄의 소유로 돌아갔었다. 이렇게 사탄의 것이 되어진 그 돌은 바로 모세가 잃어버린 그 반석이었고 또 그 석판이었으므로, 그 돌은 결국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 돌을 그리스도로 상징하였고,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한 것을 보아서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탄의 첫째 시험에 응한 예수님의 대답은 결국 내가 지금 아무리 굶주린 가운데 있을지라도 육신(肉身)을 살리는 떡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너로부터 시험을 받고 있는 자리에서 승리하고 나서 온 인류의 영인체(靈人體)를 살려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이 되어야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시험을 받아 이김으로써 개성을 완성한 메시아의 입장을 찾아 세우는 시험이었던 것이다.

Indeed, the stone in Satan’s hands – signifying the rock and the tablets of stone which Moses had lost – symbolized the very self of Jesus (1 Cor. 10:4); (Rev. 2:17) who was being subjected to this temptation. In his reply, Jesus meant that although he was starving, he was less concerned about obtaining bread which could keep his body alive than he was with becoming the incarnate Word of God who could nourish every spirit with life. With that heart, Jesus was determined to triumph over Satan. Furthermore, this test was conducted so that Jesus might re-establish the position of the Messiah, the one who has attained perfection of his individual character, by overcoming the temptation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이처럼 원리적인 입장에서 뜻을 대하는 예수님의 언행(言行)에 사탄은 패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첫번 시험에 승리하여 개성(個性)을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제1축복(第一祝福)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Jesus defeated Satan because he spoke and acted in full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By his victory over his temptation, Jesus fulfilled the condition to restore the individual nature to prefection and thereby established the basis for the restoration of God’s first blessing.

다음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聖殿)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 4 : 6)고 하였다.

Next, Satan brought Jesus to the pinnacle of the Temple and challenged him, saying, “If you are the Son of God, throw yourself down” (Matt. 4:6).

그런데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 하셨고, 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성도(聖徒)들을 일러 하나님의 성전이라고도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지체(支體)라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은 본성전(本聖殿)이요 성도들은 그 분성전(分聖殿)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공으로 오셨으므로 사탄도 그 격위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웠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한 것은, 주인공의 위치에서 떨어져 타락한 인간의 입장으로 돌아가면 자기가 예수님 대신으로 성전 주관자(主管者)의 위치를 점령하겠다는 뜻이었다.

Jesus referred to himself as the Temple (John 2:19), and it is written that Christians are temples of God (I Cor.3:16) and members of the body of Christ (I Cor. 12:27). From this we can understand that Jesus is the main temple while the believers are like branch temples. Jesus came as the Lord of the Temple. Even Satan had to acknowledge his position; thus he put Jesus on the top of the Temple. When Satan dared Jesus to throw himself down, it meant that he wanted to usurp Jesus’ position as the Lord of the Temple by enticing Jesus to fall from that position to the lowly state of a fallen person.

여기에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 4 : 7)고 대답하셨다.

At that moment Jesus answered him, “You shall not tempt the Lord your God” (Matt. 4:7).

원래 천사(天使)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의 주관을 받도록 창조된 것이므로 타락한 천사는 응당 예수님의 주관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천사가 예수님 대신으로 성전 주관자의 입장에 서려 하는 것은 비원리적(非原理的)인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비원리적인 행동으로, 원리적인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몸 되신 예수님을 시험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하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된다. 더구나 예수님은 제1차 시험에 승리하여 개성을 복귀한 실체성전(實體聖殿)으로서 성전의 주인공의 입장을 확립하셨기 때문에, 사탄의 시험을 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도 없으니 이제는 예수님 자신을 시험하지 말고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Originally, angels were created to be governed by people who have realized their God-given nature. Hence, even fallen angels should rightfully submit to Jesus, their Lord. Accordingly, it was an unprincipled act for an angel to attempt to usurp the position of the Lord of the Temple from Jesus. Jesus’ response meant that Satan should not test God by tempting Jesus, the incarnation of God, who works His providence in strict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Moreover, by prevailing in the first temptation and restoring his individual character as the incarnate Temple, Jesus had already secured the position of the Lord of the Temple. Therefore, Satan had no condition to tempt Jesus again, but should have retreated at that point.

이렇게 하여 둘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본성전이시고 신랑이시며 또한 인류의 참부모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을 분성전과 신부와 참자녀의 입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하나님의 제2축복(第二祝福)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던 것이다.

By overcoming the second temptation, Jesus, the main temple, the bridegroom and the True Parent of humanity, opened the way for all people of faith to be restored to the positions of branch temples, brides and true children. Jesus thus established the basis upon which to restore God’s second blessing.

다음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가서 천하만국(天下萬國)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 : 9)고 시험하였다.

Finally, Satan took Jesus to a very high mountain and showed him all things under heaven and all their glory, saying, “All these I will give you, if you will fall down and worship me” (Matt. 4:9).

원래 아담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만물세계(萬物世界)에 대한 주인공의 자격을 상실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됨에 따라, 사탄이 아담의 대신으로 만물세계의 주관자로 서게 되었다(롬 8 : 20). 그런데 완성한 아담격으로 오신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5장 27절에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주관자이시었다. 따라서 사탄도 이러한 원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산 위로 인도하여 만물의 주인공의 입장에 세워 놓고, 태초에 아담이 사탄에게 굴복한 것과 같이 제2 아담 된 예수님도 사탄에게 굴복하라고 시험하였던 것이다.

Due to Adam’s fall, human beings lost the qualification to be the lords of creation. They fell under the dominion of Satan, who usurped Adam’s position as the creation’s master. Coming in the capacity of a perfected Adam, Jesus was the Lord of creation, as it is written, “For God has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 feet” (I Cor. 15:27). Because Satan knew this from his understanding of the Principle, he led Jesus to the top of the mountain in recognition of his position as the Lord of creation. Satan then tempted Jesus, hoping that Jesus, the second Adam, might also submit to him as Adam had submitted in the beginning.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 : 10)고 대답하셨다.

Jesus replied, “Begone, Satan! for it is written, ‘You shall worship the Lord your God and him only shall you serve’” (Matt. 4:10).

천사(天使)는 원래 부리는 신(神)으로서(히 1 : 14), 자기를 창조하신 하 나님을 경배(敬拜)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타락한 천사인 사탄도 그에게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원리요, 따라서 사탄은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의 몸으로 나타난 예수님에게도 굴복하고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 원리라는 것으로 예수님은 대답하셨던 것이다. 더구나 예수님은 이미 두 번의 시험에 승리하여 하나님의 제1, 제2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기대(基臺)를 조성하셨으므로 그 기대 위에서 하나님의 제3축복을 복귀하여 만물세계를 주관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미 승리의 기대 위에 선 만물세계를 걸어 놓고는 더 이상 시험받을 여지가 없다는 뜻으로 원리적인 대답을 하셨다.

Angels were created as ministering spirits (Heb. 1:14) to revere and serve God, their Creator. By his answer, Jesus indicated that according to the Principle even a fallen angel like Satan should worship God; by the same token, he should honor and attend Jesus, who came as the body of the Creator. Furthermore, by overcoming the two previous temptations, Jesus already had laid the basis upon which to restore God’s first and second blessings. Upon this foundation, he would naturally restore God’s third blessing and govern the creation. Jesus said, “Begone, Satan!” because there was no longer any basis for Satan to contend with Jesus over the natural world, which already stood on the firm foundation of his victory.

이렇듯 예수님은 셋째 시험에도 승리하시어,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제3축복(第三祝福)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다.

By prevailing in the third temptation, Jesus set up the condition to restore dominion over the natural world – God’s third blessing.

(3) 40일 금식과 3대 시험으로 사탄을 분립한 결과

3.2.1.3 The Result of the Forty-Day Fast and the Three Temptations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인간이 정(正)·분(分)·합(合) 3단계의 과정을 거치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어야만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위기대를 이루어 나오는 과정에서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도 역시 3단계까지 연장되어 내려오면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 가지고, 상실되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코자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3단계의 시험에 승리하여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우셨다. 이것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서, 3단계로 연장하시면서 ‘40일 사탄 분립 기대’로써 찾으시려 했던, 다음과 같은 모든 조건들을 일시에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Creation, God’s purpose of creation is to be realized only when human beings pass through the three stages of origin, division and union and establish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However, Satan blocked this ideal while the first human ancestors were still in the process of building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Therefore, in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ith its prolongations through three stages, God has tried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all that was lost by working to fulfill dispensation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Jesus prevailed over the three temptations and fulfilled the forty-day fast as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Thereupon,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all at once, the following conditions which God had been seeking to fulfill through all the dispensation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throughout history.

첫째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셨으므로, 그때까지의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찾아 세우려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즉 가인 아벨의 헌제,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헌제, 모세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 등을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아담 이후 4천년 간의 종적인 역사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中心人物)들의 실수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모든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하시었다. 즉 노아의 심판 40일, 모세의 3차의 40년 기간과 2차의 40일 금식, 정탐 40일, 이스라엘의 광야노정 40년, 그리고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애급고역 400년, 그리고 그 후 예수님 때까지에 있어졌던 모든 40수의 기간을 전부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First,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In so doing, Jesus restored all that had been offered to God over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for the purpose of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including: the offerings of Cain and Abel, Noah’s ark, Abraham’s sacrifice, Moses’ Tabernacle and King Solomon’s Temple. Furthermore,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all at once, all the dispensation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conducted during the four thousand years since Adam, lost despite the best efforts of central figures to lay the foundation of faith. These included: Noah’s forty-day flood judgment, the three forty-year periods in the life of Moses and his two forty-day fasts,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the Israelites’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the four hundred years from Noah to Abraham, the four hundred years of slavery in Egypt, and all other periods characterized by the number forty which had been lost since the Exodus.

둘째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입장에 서게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3대 축복(三大祝福)을 이루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헌제(獻祭)를 이룬 실체시요, 또한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와 반석(磐石)과 성전(聖殿)의 실체로 설 수 있게 되셨던 것이다.

Second, by rising from John the Baptist’s position to the position of the Messiah, Jesus paved the way for the fulfillment of God’s three great blessings and the restoration of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Having successfully made his offering, Jesus stood as the fulfillment of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of the Covenant, the Tabernacle, the rock and the Temple.

The Result of the Forty-Day Fast and the Three Temptations

2. 실체기대

3.2.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예수님은 인류의 참부모로 오셔서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셨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모세가 미디안광야에서 40년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지남으로써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입장 을 세계적으로 탕감복귀한 입장에 서게 되셨던 것이다.

Jesus came as the True Parent of humanity, yet he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while standing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Therefore, after he restored the foundation of faith (and rose to the position of Messiah and True Parent) he stood in the position of a parent. At the same time, when he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for fulfilling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he stood in the position of a child (still in the role of John the Baptist with respect to that condition). In that capacity, Jesus through his forty-day fast attained the same position on the world level that Moses had assumed just after he had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by enduring a forty-year exile in the wilderness of Midian.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3대 기적(三大奇蹟)과 10재앙(十災殃)으로 그의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런데 그 후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무위(無爲)로 돌아간 애급에서의 3대 기적과 10재앙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석판·성막·법궤의 3대 은사와 십계명(十誡命)을 세우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는 것은 이미 모세노정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석판·성막·법궤의 3대 은사와 십계명의 실체이시기 때문에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예수님 자신이 말씀과 기사 이적(奇事異蹟)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가인의 입장에 있었던 유대민족이 이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세례 요한의 사명을 가지고 아벨의 입장에 서 있는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르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실체기대(實體基臺)’를 복귀하게 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세례 요한의 입장으로부터 메시아로 서게 되고, 온 인류는 그에게 접붙임을 받아(롬 11 : 17) 중생(重生)되어 원죄를 벗고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룸으로써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여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게 되었을 것이었다.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by providing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by having the people uphold the three manifestations of divine grace –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 – and obey the Ten Commandments. These, as we recall, were given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o restore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lost due to the faithlessness of the Israelites. Jesus was the fulfillment of the three manifestations of grace and the Ten Commandments. Therefore,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based on Jesus’ own words and miraculous deeds. If the Jewish people (Cain) had been moved to believe in and follow Jesus, who was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Abel), they would have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restore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would thus have been laid. Standing upon this foundation, Jesus would have risen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to the position of the Messiah. Then, by engrafting all people with himself (Rom. 11:17), humankind would have been reborn, cleansed of the original sin, and would have become one with God in heart. They would have restored their original, God-given nature and built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in Jesus’ d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3.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3.2.3 The Failure of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세례 요한의 불신(不信)으로 말미암아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몸소 광야 40일의 고난을 당하시면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셨던 것이다.

When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due to John the Baptist’s faithlessness, Jesus took John’s mission upon himself and suffered hardships in the wilderness for forty days. Thus,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그런데 앞서 논술한 바 3대 시험(三大試驗)에서 예수님에게 패배한 사탄은 예수님 앞을 얼마 동안 떠났다고 하였다(눅 4 : 13). 사탄이 얼마 동안 떠났다는 말은, 아주 떠난 것이 아니라 다시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과연 사탄은 불신으로 돌아간 제사장(祭司長)과 교법사(敎法師) 등을 중심한 유대민족, 특히 예수님을 판 제자 가룟 유다를 통하여 다시 예수님 앞에 대립하고 나섰던 것이다.

It is written that Satan, who was defeated in the three temptations, left Jesus’ side “until an opportune time” (Luke 4:13), indicating that Satan had not left Jesus for good but might confront him at a future date. As a matter of fact, Satan did confront Jesus, working primarily through the Jewish leadership, the priests and scribes who disbelieved in Jesus. In particular, Satan confronted Jesus through Judas Iscariot, the disciple who betrayed him.

이와 같이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룰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섭리를 위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어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Due to the faithlessness of such people, Jesus could lay neithe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nor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for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hus ended in tragic failure.

The Failure of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Ⅲ.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3.3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1. 예수님을 중심한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

3.3.1 The Spiritual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Jesus’ Leadership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관한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다.

In discussing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we should first understand in what respects this course was different from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이미 위에서 상세히 논급한 바와 같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대상은 메시아의 상징체인 성막(聖幕)이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모두 불신으로 흘러갔을 때에도 이 성막만은 모세가 금식 40일 기간으로 세웠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서 있었고, 모세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그것은 모세가 세운 ‘믿음의 기대’ 위에 여호수아에 의한 정탐 40일 사탄 분립기간으로 조성되었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계속 그 뜻을 받들어 나온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유대민족의 신앙의 대상은 성막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이었는데 그의 제자들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 : 14)라고 하신 말씀대로 그의 육신을 십자가(十字架)에 내주시어 죽음의 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As was explained in detail, the focus of faith for the Israelites in the third national course was the Tabernacle, the symbol of the Messiah. Even when the Israelites fell into faithlessness, the Tabernacle remained intact, standing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which Moses had laid during his forty-day fast. When Moses also became faithless, the Tabernacle remained intact, preserved by Joshua’s stewardship an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which he had laid during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However, in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focus of faith for the Jewish people was Jesus himself, who came as the fulfillment of the Tabernacle. When even his disciples became faithless, Jesus had to walk the path of death and be crucified, as he had foretold,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John 3:14).

이와 같이 유대민족은 영육(靈肉) 아울러 신앙의 대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같이 직접 실체노정으로써 출발하지 못하고,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신앙의 대상으로 세워 가지고 먼저 영적 노정으로써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성전(예수님)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 : 19)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치 여호수아가 모세의 사명을 계승하여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였던 것과 같이, 예수님은 재림(再臨)하셔서 초림(初臨) 때의 사명을 계승하시어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영육 아울러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As a consequence, the Jewish people lost the one who should have been the spiritual and physical focus of their faith. They no longer had a basis upon which to begin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as a substantial course, as the Israelites had when they commenced the third national course. Rather, Christians, as the Second Israel, were to begin this course as a spiritual course by exalting the resurrected Jesus as their focus of faith. Foreseeing this, Jesus said, “Destroy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raise it up” (John 2:19). Then, just as Joshua succeeded to Moses’ mission and completed the third national course,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ill succeed the mission of Jesus. He will complete, both spiritually and physically,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우리는 이러한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초림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재림하시지 않으면, 초림 때에 이루려 하셨던 복귀섭리의 목적을 계승 완수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Accordingly, unless the returning Christ comes in the flesh, as Jesus did, he cannot inherit Jesus’ mission, much less fulfill the purpos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Spiritual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Jesus' Leadership
(1) 영적인 믿음의 기대

3.3.1.1 The Spiritual Foundation of Faith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 인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40일 금식으로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에게 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의하여 그 육신을 사탄에게 내주신 후에는,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의 입장에서 40일 부활기간(復活期間)으로 사탄 분립의 영적 기대를 세우심으로써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노정 을 위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40일의 부활기간(復活期間)을 세우시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안 사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When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due to the Jewish people’s rejection of Jesus,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Jesus had laid during his forty-day fast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was lost to Satan. After Jesus gave up his body on the cross, he resumed John the Baptist’s mission spiritually. During the forty-day period from his resurrection to his ascension, Jesus triumphed over Satan and broke all his chains. By doing so, Jesus restore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piritual course in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is is the heretofore undisclosed reason behind this forty-day period.

그러면 예수님은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어떻게 세우셨던가? 예수님이 메시아로 나타나실 때까지는 하나님은 유대 선민(選民)들과 함께 계셨다. 그러나 그들이 메시아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배반한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들 선민을 사탄에게 내주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로부터 배척당한 독생자(獨生子) 예수님과 함께 선민을 버리고 돌아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How, then, did Jesus lay the spiritual foundation of faith? God had personally been guiding His beloved chosen people until the time Jesus appeared as the Messiah. Yet from the moment they turned against His only begotten Son, God tearfully had to turn His back and allow Satan to lay claim to them.

그러나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은 선민을 비롯한 전인류(全人類)를 구원(救援)하시려는 데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시고서라도 전인류를 구원하려 하셨던 것이다.

Nonetheless, God’s purpose in sending the Messiah was to save the Jewish people and all humanity. God was determined to save humankind, even though it meant delivering Jesus into the hands of Satan.

한편 또 사탄은 자기편에 서게 된 선민을 비롯한 전인류를 모두 하나님에게 내놓게 되더라도 메시아인 예수님 한 분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4천년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제1목적이 메시아 한 분을 세우시려는 데 있었으므로, 사탄은 그 메시아를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전섭리(全攝理)의 목적을 파탄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Satan, on the other hand, was fixed on killing one man, Jesus Christ, even though he might have to hand back all of humanity, including the Jewish people, to God. Satan knew that the primary goal of God’s four-thousand-year providence of restoration was to send the Messiah. He thought that by killing the Messiah he could destroy the entire providence of God.

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사탄편으로 돌아간 유대민족을 비롯한 전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탕감조건(蕩減條件)으로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시게 되었다.

In the end, God handed over Jesus to Satan as the condition of indemnity to save all humankind, including the Jewish people who had turned against Jesus and fallen into Satan’s realm.

사탄은 자기의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살해함으로써, 그가 4천년 역사노정을 두고 목적해 왔던 바를 달성한 것이 되었다. 이처럼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신 하나님은 그 대가로서 이스라엘을 비롯한 전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시게 되었다.

Satan exercised his maximum power to crucify Jesus, thereby attaining the goal he had sought throughout the four-thousand-year course of history. On the other hand, by delivering Jesus to Satan, God set up as compensation the condition to save sinful humanity.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여서 죄악 인간(罪惡人間)들을 구원하실 수 있게 되었는가?

How did God achieve this?

사탄이 이미 그의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여 예수님을 살해하였기 때문에, 탕감복귀원칙(蕩減復歸原則)에 의하여 하나님에게도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실 수 있는 입장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사탄의 최대 실권행사(實權行事)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최대 실권행사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탄이 그의 최대 실권행사로서 예수님을 살해한 것에 대한 탕감조건으로 하나님도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시어 죽은 예수님을 부활(復活)시키시고, 온 인류로 하여금 그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접붙이어(롬 11 : 24) 중생(重生)케 하심으로써 구원을 받도록 하신 것이었다.

Because Satan had already exercised his maximum power in killing Jesus,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restoration through indemnity, God was entitled to exercise His maximum power. While Satan uses his power to kill, God uses His power to bring the dead to life. As compensation for Satan’s exercise of his maximum power in killing Jesus, God exercised His maximum power and resurrected Jesus. God thus opened the way for all humanity to be engrafted with the resurrected Jesus and thereby receive salvation and rebirth.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잘 아는 바와 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같이 생활하시던 그러한 예수님은 아니시었다. 그는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리에 계셨기 때문에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없는 분이었다. 그는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는 방 안에도 문득 나타나셨는가 하면(요 20 : 19),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홀연히 나타나시어 오랫동안 동행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지 못하였으며(눅 24 : 15∼16), 이와 같이 나타나셨던 예수님은 또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기도 하셨던 것이다.

It is clear from the biblical record that the resurrected Jesus was not the same as he had been when he had lived with his disciples before his crucifixion. The resurrected Jesus was no longer a man seen through physical eyes, because he transcended time and space. He appeared to his disciples inside a room with closed doors (John 20:19). He accompanied two disciples traveling toward Emmaus for a long distance. Yet they did not recognize him until much later, when he made himself known, at which point he suddenly vanished out of sight (Luke 24:15-31).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육신을 제물(祭物)로 십자가에 내주신 후, 이렇듯 부활 40일의 사탄 분립기간으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세우심으로써 만민의 죄를 대속(代贖)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셨다.

By passing through the forty-day period of his resurrection and thereby separating Satan, Jesus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piritual course. He thus opened the way to redeem humanity’s sins.

The Spiritual Foundation of Faith
(2) 영적인 실체기대

3.3.1.2 The Spiritual Foundation of Substance

예수님은 영적(靈的)인 세례 요한 사명자의 입장에서 영적인 부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조성하심으로써 영적 참부모의 입장에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또 영적인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영적인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 표류(曠野漂流) 40년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지남으로써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과 같이,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Through his resurrection appearances, Jesus fulfilled the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while standing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in spirit. He thereby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piritual course in the position of the spiritual True Parent. At the same time, from the position of a child, he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for fulfilling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This spiritual foundation of faith which Jesus laid for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comparable to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Moses laid for the third national course through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모세 때에는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우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러나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 흩어졌던 제자들을 거두어 모으시고, 자신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영적인 실체가 되어 제자들에게 기사(奇事)와 이적(異蹟)의 권능을 주심으로써(마 28 : 16∼18)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God ha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in Moses’ day by having him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However, the resurrected Jesus was himself the spiritual fulfillment of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 He gathered his scattered disciples from all over Galilee an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y giving them the power to perform signs and miracles (Matt. 28:16-20); (Mark 16:15-18).

여기에서 가인의 입장에 선 성도(聖徒)들은, 이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로서 영적인 아벨의 입장에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라 ‘타락성을 벗기 위한 영적인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복귀하게 된 것이다.

The resurrected Jesus stood spiritually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and the position of Abel. The faithful believers stood in the position of Cain. By believing in Jesus and following him devotedly, they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restored the spiritual foundation of substance.

The Spiritual Foundation of Substance
(3)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3.3.1.3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신 후에 남은 열한 제자는 모두 힘없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그들을 다시 한 곳으로 거두어 모으시고, 영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섭리를 시작하셨던 것이다. 제자들은 가룟 유다 대신으로 맛디아를 택하여 12제자의 수를 채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숨을 바쳐 믿고 모시고 따름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조성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를 복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적인 메시아의 입장을 확립하고 성신(聖神)을 복귀하심으로써 영적인 참부모가 되어 중생(重生)의 역사를 하시게 되었다.

Upon Jesus’ crucifixion, his eleven remaining disciples were demoralized and scattered. After his resurrection, however, Jesus gathered them in one place and commenced a new phase of the providence: the restoration of spiritual Canaan. The disciples chose Matthias to replace Judas Iscariot and fill the vacancy among the twelve. By believing in Jesus and following him at the cost of their lives, they laid the spiritual foundation of substance and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Upon this foundation, Jesus ascended from the position of the spiritual mission-bearer for John the Baptist to the position of the spiritual Messiah and sent the Holy Spirit. Thereupon, Jesus and the Holy Spirit became the spiritual True Parents and began the work of giving rebirth.

즉 사도행전 2장 1절 내지 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오순절(五旬節)에 성신이 강림하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적인 참아버지로서 영적 참어머니 되신 성신과 합하여 역사하심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접붙이게 하시어 영적 중생의 역사를 하셨기 때문에, 영적 구원섭리만을 이루시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권내에는 사탄의 영적 참소조건(讒訴條件)이 청산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영적인 면에 있어서의 사탄의 불가침권(不可侵圈)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Ever since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at the Pentecost (Acts 2:1-4). the resurrected Jesus as the spiritual True Father and the Holy Spirit as the spiritual True Mother have worked in oneness to grant spiritual rebirth by spiritually engrafting believers with themselves. This is the work of spiritual salvation (cf. Messiah 1.4), which established a realm of resurrection inviolable by Satan.

타락인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와 하나가 되어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은 여전히 사탄의 침범을 당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육적 구원은 의연(依然)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그와 함께 영적으로 사탄 불가침권 내에 있게 됨으로써, 사탄의 영적인 참소조건을 면하고 영적 구원만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ven though we may by faith unite with Jesus in spirit, our bodies are still liable to Satan’s attack, as was the case with Jesus himself. In other words, our physical salvation still remains unaccomplished. Still, if we believe in the resurrected Jesus, he will guide us to enter spiritually his realm of resurrection, which is invulnerable to satanic invasion. There we are released from the conditions which allow Satan to accuse us, and we are spiritually saved.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4) 영적 가나안 복귀

3.3.1.4 The Restoration of Spiritual Canaan

기독교 신도들은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위에서 영적인 메시아로 서게 된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써 영적 가나안 복귀만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적 가나안 복귀의 혜택권 내에 있는 성도들의 육신은 십자가(十字架)에 의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의 육신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나 다름없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원죄(原罪)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롬 7 : 25), 성도들도 또한 예수 재림을 위한 사탄 재분립(再分立)의 노정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By believing in and serving the resurrected Jesus, who stands upon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Christians can accomplish the restoration of spiritual Canaan and enter its realm of grace. On the other hand, the physical bodies of Christians stand in the same position as Jesus’ body, which was assaulted by Satan through the crucifixion. Christians are still stained with the original sin (Rom. 7:25) and are just as much in need of purifying themselves from satanic influences as were people who lived before the coming of Jesus. Hence, Christians still must walk the course for the separation of Satan to prepare for the Second Coming of Christ (cf. Messiah 1.4).

모세를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성막이상(聖幕理想)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적 실체성전(實體聖殿)을 중심하고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지성소(至聖所)와 성소(聖所)는 그것들이 상징한 바 예수님과 성신(聖神), 예수님의 영인체와 육신이 영적 실체로 이루어졌고, 속죄소(贖罪所)의 이상(理想)은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짐으로써 거기에 하나님이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그 속죄소에서, 인간 시조가 타락된 후에 그 앞을 가로막았던 그룹을 좌우로 갈라 세우고 법궤 안으로 들어가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보여 주셨던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히 9 : 4∼5).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의 재림은 모세노정을 통하여 보더라도 그것이 기정적(旣定的)인 섭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The resurrected Jesus is the spiritual fulfillment of the Temple. He realized worldwide the ideal of the Tabernacle which Moses had upheld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most holy place and the holy place, representing the spirit and flesh of Jesus, were fulfilled as spiritual realities through Jesus and the Holy Spirit. The ideal of the mercy seat has been realized through the works of salvation given by Jesus and the Holy Spirit, enabling God to appear in their works and impart His Word. On the mercy seat, where God’s Word is proclaimed, the cherubim that had blocked our path since the Fall were parted, opening our way to enter the Ark of the Covenant and receive Jesus, the Tree of Life. There we can partake of the manna provided by God and witness the greatness of God’s power that once caused Aaron’s staff to bud (Heb. 9:4-5). As we have learned by studying Moses’ course, the delays in God’s providence were not predetermined, but were caused by people’s faithlessness. Likewise, Jesus’ crucifixion and the need for his return were not originally predestined by God.

The Restoration of Spiritual Canaan

2. 재림주님을 중심한 실체적 가나안 복귀노정

3.3.2 The Course to Restore Substantial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Christ at the Second Advent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같이 실체노정(實體路程)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영적 노정으로 출발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이다.

We have already explained why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began as a spiritual course, not as a substantial course like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위에서 영적 메시아로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출발한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섭리는, 2천년의 유구한 역사노정(歷史路程)을 지나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그 영적 판도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치 모세의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여호수아가 대신하여 실체노정으로 걸어서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하였던 것과 같이,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재림(再臨)하셔서 실체노정으로 걸으시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하심으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This spiritual providence began when, upon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Jesus could stand as the spiritual Messiah and his followers believed and obeyed him. This providence has passed through a long two-thousand-year course of history, expanding to construct a worldwide spiritual dominion. While Moses could enter Canaan only in spirit, Joshua walked the national course as a substantial course and actually conquered the promised land.

이와 같이 재림주님은 초림(初臨) 때에 실체로써 이루시려던 지상천국을 그대로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실체인간으로 지상에서 탄생하셔야 되는 것이다(후편 제6장 제2절 Ⅱ 참조).

Likewise, while Jesus has been restoring Canaan as a worldwide spiritual realm, Christ at the Second Advent is to complete this third worldwide course as a substantial course and build the actual Kingdom of Heaven on earth. Christ at the Second Advent must realize, on earth, God’s ideal which was left unfulfilled at the First Coming. For this reason, he must be born on earth in the flesh (cf. Second Advent 2.2).

The Course to Restore Substantial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Christ at the Second Advent

그러나 재림주님은 초림 때의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탕감복귀하셔야 하기 때문에, 마치 그의 초림 때에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영적 복귀섭리의 고난(苦難)의 노정을 걸으셨던 것과 같이, 재림 때에 있어서도 만일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 영적인 고난의 노정을 다시 실체로써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나 그(예수님)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눅 17 : 25)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Since Christ at the Second Advent must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left unfinished at Jesus’ coming, he may have to follow a similar course. Jesus encountered disbelief among the Jewish people and had to walk a course of bitter suffering. Likewise, if Christians, the Second Israel, reject Christ at the Second Advent, he will have to go through tribulations comparable to those Jesus suffered. He will have to repeat Jesus’ painful course and restore it through indemnity, but this time during his earthly life. For this reason, Jesus said, “But first he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is generation” (Luke 17:25).

그러므로 예수님은 초림 때에 그를 위하여 소명(召命)되었던 제1 이스라엘 선민을 버리시고 기독교 신도들을 제2 이스라엘 선민으로 세워 가지고 새로이 영적인 섭리노정을 이루어 나올 수밖에 없으 셨던 것과 같이, 재림 때에도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들을 버리시고 새로이 제3 이스라엘을 세우시어 실체적인 섭리노정을 이루어 나아가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재림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그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세례 요한의 사명(요 1 : 23)을 가지고 올 선구자(先驅者)들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재림주님 자신이 또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실체적으로 조성하셔야 하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At the First Coming, Jesus at the end had to forsake the First Israel, which had been called for his sake, and elect the Christians as the Second Israel to commence the new spiritual providence. Similarly, at Christ’s Second Coming, if the Christians reject him in disbelief, he will have to abandon them, raise up a Third Israel, and work with them to bring the providence to its fulfillment on the earth. If the Lord’s forerunners, who are entrusted with missions like that of John the Baptist, do not complete their responsibilities, then he will have to lower himself to assume the role of John the Baptist and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ubstantial course in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In such an eventuality, he will walk a path of suffering.

그러나 재림주님은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으신다 하여도 초림(初臨) 때와 같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류의 참부모님을 세우시어(전편 제7장 제4절 Ⅰ 1)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루시려는 섭리는, 아담에서 예수님을 거치어 재림주님에 이르기까지 세번째인 재림 때에는 의당 그 섭리를 이루시게 되어 있으며, 더구나 후편 제4장 제7절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 이후 2천년 간의 영적 복귀섭리는 그를 위한 사회 조성을 위하여 민주주의시대(民主主義時代)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However arduous the path he may walk,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ill not die without fulfilling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is is because God’s providence to raise up the True Parents of humankind (cf. Christology 4.1.1) and fulfill the purpose of creation through them will be successful on the third attempt. This providence began with Adam, was prolonged through Jesus, and will bear its fruit without fail at the Second Advent.

예수님은 그 초림 때에는 유대교의 반역자(反逆者)로 몰려서 돌아가셨지만, 그가 재림하시는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설혹 그가 이단자(異端者)로 몰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죽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주님이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으신다 할지라도, 그가 세우시는 실체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 그를 절대로 믿고 따라 모시는 성도들이 모여서,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실체노정(實體路程)을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실체적인 기대’를 이루게 될 것만은 확실하다.

Moreover, as will be discussed below (cf. Parallels 7.2.6), God’s spiritual providence of restoration during the two thousand years since Jesus’ day has prepared a democratic social and legal environment which will protect Christ at the Second Advent. Jesus was killed after being branded a heretic by the Jews and a rebel by the Roman Empire. In contrast, even if Christ at the Second Advent is persecuted as a heretic, in the democratic society to which he will come, such accusations will not be sufficient grounds for him to be condemned to death. Therefore, no matter how bitter his tribulations may be,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ill be able to lay the foundation of faith on the earth. Standing upon it, he will gather disciples of indomitable faith. He will guide these followers to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establish the foundation of substance.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for the substantial course in the third worldwide course will be established without fail.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 때에는 반석(磐石)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게 되어 있었고, 여호수아 때에는 반석보다 더 내적인 그 샘물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초림 때에는 기사 이적(奇事異蹟)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지만, 재림 때에는 그의 내적인 ‘말씀’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전편 제3장 제3절 Ⅱ에서 논급한 바와 같이, ‘말씀’으로 창조된 인간이(요 1 : 3) 타락으로 인하여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목적을 다시 이루시기 위하여 ‘말씀’의 외적인 조건을 세우시어 복귀섭리(復歸攝理)를 이루어 나오시다가, 섭리역사의 종말에 이르러는 ‘말씀’의 실체 되신 예수님(요 1 : 14)을 다시 보내시어 ‘말씀’을 중심하고 구원섭리(救援攝理)를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When Moses was the central figure in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Go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When Joshua was the central figure,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water from the rock, which is more internal than the rock. Similarly, at Jesus’ coming,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rough miracles and signs, but at Christ’s Second Advent God will conduct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Word, which is more internal than miracles and signs. As was explained earlier, (cf. Eschatology 3.2) although human beings were created through the Word (John 1:3), due to the Fall they could not fulfill its purpose. To accomplish the purpose of the Word, God has been working His providence of restoration by setting up external conditions of obedience to the Word. Finally, at the consummation of providential history, God will again send the Christ, the incarnation of the Word, and complete the providence of salvation based on the Word.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심정의 인연을 중심하고 보면, 하나님은 영적인 부모로서 인간을 실체의 자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최초로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형상적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창조된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제1 실체대상으로서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부부를 이루고 자녀를 번식하여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을 나타내는, 부모의 심정과 부부의 심정과 자녀의 심정으로 결뉴(結紐)된 가정을 이루게 되어 있었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이룬 사위기대(四位基臺)인 것이다(전편 제1장 제2절 Ⅲ 참조).

The deepest explanation of God’s purpose of creation is revealed in terms of relationships of heart. As our invisible, internal Parent, God created human beings as His substantial children. Adam and Eve wer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as the substantial object partners to God in the pattern of His dual characteristics. As God’s first substantial object partners, they were meant to be the Parents of humankind. They were meant to become husband and wife, bear and raise children, and form a family intertwining the heart of parents, the heart of husband and wife, the heart of brothers and sisters, and the heart of children. Their family would have manifested the true love of parents, the true love of husband and wife, and the true love of children. This would have been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which realizes the three object purpose (cf. Creation 2.3.3).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직계(直系)의 자녀들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이미 타락론(墮落論)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인간 시조가 천사장(天使長)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음으로 인하여 온 인류는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아서 모두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말았다(마 3 : 7, 마 23 : 32, 요 8 : 44). 그리하여 인간 시조는 하나님과 혈통관계가 끊어진 입장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이것이 바로 타락이다(전편 제2장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이와 같이 하나님과 혈통관계가 끊어진 타락인간을 복귀시켜 가지고, 하나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세우시려는 데 있는 것이다.

In this manner, God intended to build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through His own children, born of His heavenly lineage. The primary significance of the Fall was that the first human ancestors formed a bond of blood ties with the Archangel; therefore, all of humanity has been bound to Satan’s lineage (cf. Fall 1.3.3). Every human being has been born as a child of the Devil (Matt. 3:7); (Matt. 23:33); (John 8:44). The first human ancestors fell to the position where they no longer had any connection to God’s lineage. Accordingly, the ultimate purpose of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is to transform fallen people, who have no connection to God’s lineage, into children born of God’s direct lineage.

The relation of kinship between God and human beings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비밀을 성서(聖書)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Let us look further at the Bible for evidence of this hidden purpose behind God’s providence.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타락되어 살육행위(殺戮行爲)를 자행하였던 아담가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 때에 이르러, 그의 둘째 아들로서 아벨의 입장이었던 함은 그의 실수로 인하여 비록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노아가 충성을 다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종들의 종’(창 9 : 25)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간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 전 시대(舊約前時代)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였다.

Adam’s family, whose members committed the Fall and the first murder, was bereft of any relationship with God. At Noah’s time, a direct relationship with God could not be restored due to the mistake of his second son, Ham. Nevertheless, because Noah had demonstrated utmost devotion, his family could stand in an indirect relationship with God, as a servant of servants (Gen. 9:25). This was the nature of humankind’s relationship with God attainable prior to the Old Testament Age.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이르러 그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선민(選民)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종의 입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니(레 25 : 55), 이것이 바로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였다.

Abraham, the father of faith, with his family established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They and their descendants, God’s chosen people, were elevated to the position of God’s servants (Lev. 25:55). This was the nature of humankind’s relationship with God attainable in the Old Testament Age.

예수님이 오신 후,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세우신 그의 ‘믿음의 기대’ 위에 섰던 제자들은 비로소 구약시대의 종 된 입장에서 양자(養子)의 입장으로 복귀되었었다. 그들이 하늘의 직계의 혈통적 자녀가 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에게 절대로 순종하여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룸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 선 예수님에게 영육(靈肉) 아울러 접붙임을 받아서(롬 11 : 17) 그와 일체를 이루어야 했던 것이다.

In the days of Jesus, the disciples, who stood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Jesus had laid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were elevated from the position of servants to the position of adopted children. To rise further from this state and become the children of God’s direct lineage, they should have first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and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by serving and obeying Jesus absolutely. Had Jesus stood as the Messiah upon that foundation, they could have been engrafted with him both spiritually and physically and attained complete oneness with him.

예수님은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원죄(原罪) 없는 독생자(獨生子)로 오셔서, 타락한 온 인류를 그에게 접붙이어 한 몸이 되게 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복귀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과 성신(聖神)이 인류의 참부모로서 이와 같이 타락인간을 접붙이어 원죄를 벗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혈통적인 인연을 맺게 하시는 역사를 우리는 중생(重生)이라고 한다(전편 제7장 제4절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은 돌감람나무 된 타락인간으로 하여금 접붙이게 하시기 위하여 참감람나무의 중심으로 오셨던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Jesus is the only Son of God, sinless and born of His direct lineage. He is the true olive tree who came to engraft all fallen people, the wild olive trees, with himself (Rom. 11:17). By thus joining them in oneness with himself, he was to cleanse them of the original sin and restore them as children born of God’s lineage. This is the work of rebirth, which was to have been conducted by Jesus and his Bride (cf. Christology 4).

그러나 제자들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으므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입장에 서 보지도 못하고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셨다. 그리하여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이 영적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부활 40일 사탄 분립기간으로써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세우신 후, 회개하고 돌아온 제자들의 신앙(信仰)과 충절(忠節)로 말미암아 영적인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영적인 기대 위에 영적인 메시아로 서신 예수님에게 영적인 접붙임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성도(聖徒)들은 영적인 자녀로서만 설 수 있게 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영적 복귀섭리에 의한 하나님과 타락인간과의 관계인 것이다.

Unfortunately, even Jesus’ own disciples lost faith, and Jesus died on the cross without having ascended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or commenced the duties proper to the Messiah. After his resurrection, Jesus began his spiritual course. He laid the spiritual foundation of faith through the forty days from his resurrection to his ascension – a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 while standing in the position of spiritual John the Baptist. His disciples repented and returned to serve him with faith; thus, Jesus and his disciples established the spiritual foundation of substance and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Upon this foundation, Jesus stands as the spiritual Messiah and has been engrafting his faithful followers with himself – though only spiritually. As a result, faithful Christians have been elevated to become God’s spiritual children. This has been the nature of humankind’s relationship with God attainable from the time of Jesus until today.

그러므로 예수님 이후의 영적 복귀섭리는 마치 하나님이 영계(靈界)를 먼저 창조하셨던 것과 같이 그러한 형의 영적 세계를 먼저 복귀하여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타락인간은 아직 영적으로만 하나님의 대상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잘 믿는 기독교 신도라 할지라도 육적으로 내려오는 원죄(原罪)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는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전편 제4 장 제1절 Ⅳ).

In this spiritual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spirit world has been restored first, just as in the order of creation God made the spirit world first. Humanity has been elevated to stand as God’s object partners, but only spiritually. However devout a Christian may be, since the original sin passed down through the flesh has not yet been removed, he is no different from a faithful person of the Old Testament Age in the sense that both are still bound to Satan’s lineage (cf. Messiah 1.4).

이와 같이 기독교 신도들은 하나님 앞에 혈통이 다른 자녀이기 때문에 양자(養子)가 되는 것이다. 일찍이 바울이, 성령(聖靈)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도 탄식하여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고 한 이유는 실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롬 8 : 23).

Christians are, at best, God’s adopted children, because they do not stem from His lineage. This explains why St. Paul lamented,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for adoption as sons” (Rom. 8:23).

그러므로 예수님은 온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시기 위하여 재림(再臨)하셔야 한다. 따라서 그는 초림(初臨)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지상에서 탄생하셔서 초림 때의 노정을 다시 걸으심으로써 그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Christ will return and restore all humanity to be God’s true children. He will return in the flesh and be born on the earth, as at his First Coming. He will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course of his First Coming by walking it again.

그러므로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재림 예수님은 ‘말씀’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 대’를 실체적으로 조성하시어, 그 기대 위에서 온 인류를 영육(靈肉) 아울러 접붙이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셔야 하는 것이다.

As was explained above, the returning Christ will conduct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Word and then complete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both spiritually and physically. Upon that foundation, he will engraft all humanity with himself, cleansing them of the original sin and restoring them to be God’s children, born of His lineage.

그리하여 예수님이 초림 때에,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의 중심인물이었던 야곱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3제자를 중심한 12제자를 세우심으로써 가정적인 기대를 세우셨고, 다시 70문도를 세우심으로써 그 기대를 종족적인 기대에로 넓히려 하셨던 것과 같이, 그는 재림하셔서도 그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가정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천주적인 것으로 복귀하시어, 그 기대 위에 천국을 이루는데까지 나아가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At the First Coming, Jesus laid a family foundation by choosing twelve disciples and appointing three of the twelve as his chief disciples. In this, he intended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position of Jacob, who had been the central figure for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By raising up seventy followers, Jesus then expanded the scope of his foundation to the clan level. In the same manner,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ill begin by laying, both spiritually and physically,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He will then expand its scope to the clan, society, nation, world and cosmos. When this foundation is secure, he will finally be able to build the Kingdom of Heaven.

하나님은 장차 예수님이 탄생하시어 천국 건설의 목적을 빨리 이루게 하시기 위하여 제1 이스라엘 선민을 세우심으로써 그 터전을 예비하셨었으나 그들이 배반함으로 인하여 기독교 신도들을 제2 이스라엘로 세우셨던 것과 같이, 만일 재림(再臨) 예수님의 천국 건설 이상을 위하여 제2 이스라엘로 세워진 기독교 신도들이 또 그를 배반하면 하나님은 부득이 그 제2 이스라엘 선민을 버리시고 새로이 제3 이스라엘 선민을 택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末世)에 처한 기독교 신도들은 예수님 초림(初臨) 당시의 유대민족들과 같이 가장 행복한 환경 가운데 있으면서도 한편 가장 불행하게 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God’s purpose in raising up the people of the First Israel was to prepare the foundation for Jesus, that he might accomplish the goal of building the Kingdom of Heaven when he came. When they turned against him, God elected the Christians to be the Second Israel. Similarly, God’s purpose in raising up Christianity was to prepare the foundation for Christ at the Second Advent to achieve the goal of building the Kingdom of Heaven. If the Christian world should likewise turn against him, God will be left with no alternative but to forsake them and elect a Third Israel. Therefore, although Christians in the Last Days may enjoy great blessings, in fact, like the Jewish people of Jesus’ day, their situation is extremely precarious. They are liable to fall into disgrace and great misfortune.

Foundation for the Messiah: laid

Ⅳ. 예수님의 노정이 보여 준 교훈

3.4 Some Lessons from Jesus’ Course

첫째로, 여기에서도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豫定)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 그의 사명을 대신하시면서까지 기필코 그 뜻을 이루려 하셨고, 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地上天國)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재림하셔서까지 이 뜻을 절대적으로 이루려 하시는 것이다.

First, Jesus’ course instructs us about God’s predestination of His Will. God predestines absolutely that His Will be accomplished and then works unceasingly until it is fulfilled. When John the Baptist failed his mission, Jesus tried to accomplish God’s Will at any cost, even to the extent of taking on John’s responsibility. When disbelief on the part of the Jewish people frustrated his attempts to build the Kingdom of Heaven, Jesus still remained absolute in his determination and promised to fulfill the Will at his return.

다음으로는 택함받은 어느 개인이나 민족을 중심한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즉 하나님은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어떤 인물이나 어떤 민족을 세우셨을지라도, 그들이 자기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새로운 사명자를 세우시어 그 일을 잇게 하셨던 것이다.

Next, Jesus’ course demonstrates that God’s predestination concerning the manner in which His Will is to be accomplished through an individual or a nation is conditional, not absolute. That is to say, although God may have chosen a certain individual or nation to accomplish a purpose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f he fails to complete his responsibility, God will surely choose another person or nation to continue His work.

예수님은 그의 수제자(首弟子)로 세례 요한을 택하셨었으나 그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신으로 베드로를 택하셨고, 또 가룟 유다를 12제자의 하나로 택하셨던 것이었으나 그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의 대신으로 맛디아를 택하셨던 것이다(행 1 : 25). 한편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유대민족을 택하셨으나 그 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자 그 사명을 이방인(異邦人)들에게로 옮기셨던 것이다(행 13 : 46, 마 21 : 33∼ 43). 이처럼 아무리 뜻 성사를 위하여 택함을 받은 존재라 할지라도, 그를 중심한 뜻의 성사는 결코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Jesus chose John the Baptist to be his chief disciple, but when he failed to complete his responsibility, Jesus chose Peter to replace him. Jesus chose Judas Iscariot to be one of his twelve disciples, but when Judas failed, Matthias was chosen to take his place (Acts 1:25). Similarly, God chose the Jewish people to accomplish the central responsibility in His providence of restoration, but when they failed, their mission passed to the Gentiles (Acts 13:46); (Matt. 21:33-43). These instances illustrate that when God chooses a person or a nation to accomplish His Will, He never predestines in absolute terms whether that person or nation will, in fact, accomplish the Will.

다음으로 하나님은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에 대해서는 간섭치 않으시고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세례 요한이나 가룟 유다가 불신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그것을 모르시지 않았을 것이며, 또 그것을 못 하게 하실 수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의 신앙에 대하여는 일절 간섭치 않으시고 그 결과만을 보고 주관하셨던 것이다.

Jesus’ course also demonstrates that God does not interfere with a person’s efforts to fulfill his portion of responsibility, but treats him according to the results of his actions. God must have known that John the Baptist and Judas Iscariot were losing their faith. He certainly had the power to stop them from sinning. Yet God did not interfere at all in their faith, but dealt with them only based on the results of their deeds.

다음으로, 큰 사명을 맡은 인물일수록 그에게 오는 시련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아담이 하나님을 불신으로 버렸기 때문에,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는 아담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입장에서 오히려 믿음을 세워 그의 타락 전 입장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셔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까지도 받으셔야 했었고, 또 십자가상(十字架上)에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일까지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마 27 : 46).

Finally, Jesus’ course shows that the greater a person’s mission, the greater the test he will confront. Jesus came as the second Adam. To complete his mission, he had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position Adam had occupied prior to the Fall. Since Adam became faithless and forsook God, Jesus had to restore Adam’s mistake by enduring when God forsook him, all the while showing unchanging faith. Therefore, Jesus was tempted by Satan in the wilderness and forsaken by God on the cross (Matt. 2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