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의 왕자가 못 되면 권세의 왕자도 못 된다.
심정에 대한 인용문
문선명, 한학자의 말씀 중에서
심정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종교는 하나님이 제일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실감(實感)있게 가르쳐 주는 종교이다.
끝날에 있어 종교는 심정종교(心情宗敎), 철학은 심정철학(心情哲學), 주의는 심정주의(心情主義), 사상은 심정사상(心情思想)으로 각각 해명되어야 한다.
말씀을 전할 때 하늘의 심정을 전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하며.
하늘의 심정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사람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심정으로 무장된 생활을 중히 여겨라. 나보다 심정적인 사람은 나의 아벨이다.
심정적인 감각을 가지고 그것을 실생활에서 사무치게 느껴 생활하는 자가 아니면 타락성(墮落性)을 벗을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시고, 나는 그로부터 창조되었고, 그리고 나는 하나님과 부자지인연(父子之因緣)이라는 것을 마음과 몸으로 체휼하게 될 때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 볼 수 있다.
타락 이후 섭리해 오신 하나님과 인연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락 전의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주는 시기에 받겠다면 망한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더라도 주는 심정으로 생활해 나가자.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면 이루지 못할 꿈이 없습니다.
‘가화’, 이것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중심한 4대가 화합해 가지고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행동과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심정을 책임져 주는 사람을 찾고 있다.
원수지간이지만 심정적 인연을 남긴 그러한 사람이 될 때는 역사를 되찾아 만날 수 있고 다시 살 수 있다.
말씀으로 이상(理想)을 주고, 인격으로 실천(實踐)을 보여 주고, 심정으로 사랑을 주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 심정, 내적 기준, 주체적 가치(價値)가 어떻게 되었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이다.
인격의 중심은 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정에 있다.
행복은 승리적인 심정의 권한을 가지고야 획득할 수 있다.
부모의 심정으로 생활하는 자는 거기에 잡초가 나지 않는다.
효자는 부모의 심정을 가진 자이다. 세상적인 지식과 지위가 문제가 아니고, 단 한 가지 하늘의 심정을 소유했느냐가 문제이다.
부모의 심정은 자식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이고, 하나님도 인류의 부모이시기에 당신이 지은 인간이 당신보다 낫기를 바라실 것이다.
민족이 부러워하는 가정, 세계가 부러워하는 종족(宗族)의 가정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심정의 인연을 통한 반려자(伴侶者)를 최고로 사랑하라.
사람을 지도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보다 더 수고해야 한다. 더 제물이 되어라. 그리고 간곡하고 애달픈 심정으로 대하라.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더듬어 자기 중심에서 일하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