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
예정론
- 고래(古來)로 예정설(豫定說)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성도(聖徒)들의 신앙생활의 실제에 적지 않은 혼란을 일으켜 온 것이 사실이다.
- 성서에는 인생의.
- 영고성쇠(榮枯盛衰)와.
- 행·불행은 물론.
- 타락인간의 구원(救援) 여부와.
-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되어지는 것으로 해석되는 성구가 많이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예정설을 부정할 수 있는 또 다른 성서적인 근거도 많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이와 같이 예정설을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모두 세워질 수 있는 성서의 문자적인 근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정(豫定)을 논술하기 위하여, 우리는 여기에서 ‘뜻’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墮落)으로 인하여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루지 못하셨다.
- 따라서 타락한 인간들을 놓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까지나 이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시려는 데 있는 것이다.
- 다시 말하면, 이 뜻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하나님은 유일(唯一)하시고 영원(永遠)하시며 불변(不變)하신 절대자이시므로.
-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역시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따라서 창조목적을 다시 이루시려는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뜻도.
- 유일하고 불변하며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 그렇다면 이 뜻에 대한 예정 또한 절대적일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사 46 : 11).
- 따라서 이 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시려는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뜻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관여할 수 없으나.
- 그 ‘뜻 성사’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를 중심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사실상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않는 것으로 그들에게 맡겨진 책임분담을 그들 자신이 완수함으로써만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창 2 :17).
- 따라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는 데 있어서도, 그 사명을 담당한 중심인물이 그 책임분담을 수행함으로써만 그 뜻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 그러면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로 예정하시는 것일까?
- 이미 위에서 논급한 바와 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 그 뜻의 성사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 하나님이 하실 95퍼센트의 책임분담에.
- 그 중심인물이 담당해야 할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어서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정하시는 것이다.
-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 자신들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 선의 인간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가 인간 조상이 되는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실 수는 없었다.
-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도.
-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을 어느 정도로 예정하시는 것인가?
- 어떤 인물을 중심한 하나님의 ‘뜻 성사’에 있어서는 그 자신이 언제나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을 해야만 된다는 필수적인 요건이 따라다닌다.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인물을 어떠한 사명자(使命者)로 예정하시는 데 있어서도.
- 그 예정을 위한 95퍼센트의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5퍼센트의 인간책임분담 수행이 합하여서.
- 그 인물을 중심한 뜻이 100퍼센트 완성됨으로써만 그러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예정하신다.
- 그러므로 그 인물이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의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예정에 있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중심인물(中心人物)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은 타락된 피조세계(被造世界)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세계에로 완전히 복귀하시려는 데 있다.
- 그렇기 때문에 그 시기의 차는 있으나 타락인간은 누구나 다 빠짐없이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벧후 3 : 9).
-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가 그러했듯이.
- 그의 재창조역사(再創造役事)인 구원섭리도 일시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 그것은 하나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전체적인 것으로 넓혀 가는 것이다.
- 하나님의 섭리가 그러하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위한 예정에 있어서도.
- 먼저 그 중심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 그러면 이렇게 부르심을 받는 중심인물은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 그는 먼저 복귀섭리를 담당한 선민의 하나로서 태어나야 하며.
- 다음으로는 같은 선민 중에서도 선(善)의 공적이 많은 선조의 후손이어야만 한다.
- 그리고 똑같이 선의 공적이 많은 선조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그 개체가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천품(天稟)을 타고나야만 하는 것이며.
- 또 같은 천품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이를 위한 후천적인 조건이 모두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 그리고 후천적인 조건마저 똑같이 갖춘 인물들 중에서도 보다 하늘이 필요로 하는 시기와 장소에 맞추어진 개체를 먼저 택하시는 것이다.
- 먼저 로마서 8장 29절 내지 30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은 미리 아신 사람을 미리 정하사, 미리 정하신 이를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를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고 한 말씀을 해명해 보기로 하자.
-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와 같이 미리 알고 계시는 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 그러나 부르시는 하나님의 책임분담(責任分擔)만으로는 그가 의롭다 함을 얻어 영광을 누리는 데까지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는 부름받은 입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야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榮華)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도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도록 예정되는 것이다.
- 다만 성구에는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에 대한 말씀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 이와 같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책임분담과 인간의 책임분담이 과연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 모든 뜻 성사를 하나님의 전담행사(專擔行事)로서만 보아 왔기 때문에.
- 칼빈과 같이 완고(頑固)한 예정설(豫定說)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었고.
- 또 그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을 두고 그대로 인정되어 오기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