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절 복귀섭리로 본 역사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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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7.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the Progress of History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지상천국(地上天國)은 완성한 사람 하나의 모양과 같은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타락된 세계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모양을 닮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생활을 살펴봄으로써 인류죄악사(人類罪惡史)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is a society whose structure is formed in the image of a perfect person (cf. Creation 3.2). Likewise, fallen society may be regarded as formed in the likeness of a fallen person. We can better understand the history of societies built by sinful humanity by examining the inner life of a fallen person.

타락(墮落)한 인간에게는 선을 지향하는 본심(本心)과 이 본심의 명령을 배반하고 악을 지향하는 사심(邪心)이 있어서, 이 두 마음이 항상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본심의 명령을 따르는 선행(善行)과 사심의 명령을 따르는 악행(惡行)이 우리들의 한 몸에서 상충되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자체 내에서 투쟁을 일으키고 있는 개체들이 횡적(橫的)으로 얽혀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사회이기 때문에 거기에도 역시 투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이 투쟁으로 얽히어진 사회생활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종적(縱的)으로 변전(變轉)하여 내려온 것이 바로 인류역사이므로, 이 역사는 필연적으로 투쟁과 전쟁으로 엮어지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A fallen person possesses both an original mind, which prompts him to pursue goodness, and an evil mind, which fills him with evil desires and rebels against the promptings of the original mind. Undeniably, the two minds are constantly at war with each other, inclining us toward shifting and conflicting behaviors. Since human society is composed of individuals who are constantly at war within themselves, interactions among them cannot help but be full of discord and conflict. Human history has consisted of people’s conflict-ridden social relationships constantly changing with the course of time. Hence, it has necessarily unfolded in strife and warfare.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the Progress of History

그러나 인간은 본심(本心)과 사심(邪心)의 집요한 싸움 가운데서 악을 물리치고 선을 따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행동도 점차 악행을 버리고 선을 행해 나아가는 방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타락된 인간에게도 이와 같이 선을 지향하는 본심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여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Nevertheless, in the midst of the persistent fight between the original mind and the evil mind, people are ever striving to repel evil and follow the way of goodness. As they gain ground in their striving, their efforts bear fruit in righteous deeds. Because of the activity of the original mind within himself, even a fallen person can respond to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join in furthering the goal of goodness.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에 의하여 엮어져 내려온 역사는, 선악(善惡)이 교착(交錯)되는 와중에서도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해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지향하는 종국적인 세계는 바로 선의 목적이 이루어진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쟁이나 전쟁은 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선과 악을 분립해 나온 하나의 과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싸움의 결과가 일시 악의 승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악의 결과로 인하여 역사는 보다 더 큰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는 섭리노정(攝理路程)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부단히 선과 악의 분립역사(分立役事)를 되풀이하면서 선을 지향하고 발전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rogress in history thus originates with individuals who, even amidst the vortex of good and evil, make determined efforts to reject evil and promote goodness. Therefore, the world toward which history is progressing is the Kingdom of Heaven, where the goal of goodness will be realized. We must understand that conflicts and wars are interim phenomena to separate good from evil in the pursuit of this ultimate goal. Even though evil may triumph at times, God will use it to steer history toward the fulfillment of a greater good. In this respect, we can recognize that the progress of history toward goodness is driven by a process of constantly dividing good from evil according to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그런데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은 타락된 인간을 중심하고 장차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것과 같은 형의 세계를 앞장서 이루어 나왔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류역사는 원리형(原理型)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를 형성하여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하시기 전에 사탄을 중심으로 한 그와 같은 형의 비원리세계가 먼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인 것이다. 사탄은 이처럼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뜻을 항상 앞질러 비원리적으로 이루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서는 참것이 나타나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 참것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앞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신 성서의 말씀은 이러한 원리로써만 해명될 수 있는 것이다.

Meanwhile, on the basis of his relationship of blood ties with the first human beings, Satan has worked through fallen people to realize, in advance of God, a perverted form of the ideal society which God intends to realize. As a result, in human history we witness the rise of unprincipled societies which are built upon twisted versions of the Principle. At the end of human history, before God can restore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Satan will have built an unprincipled world in a distorted image of the Kingdom: this is none other than the communist world. This is an instance of how Satan, who had a head-start in the course of history, has always mimicked God’s plans in advance of God. In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 false likeness precedes the appearance of the true (cf. Preparation 3.2; Preparation 4.1). Jesus’ prophecy that false Christs will appear before the Second Advent of Christ (Matt. 24:23-24); (I John 2:18) can be elucidated by this aspect of the Principle.

Human history

Ⅰ.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의 역사 발전

7.1 The Progress of History in the Ag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타락된 인간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원시공동사회(原始共同社會)였다. 이 사회는 사탄을 중심하고 서로가 유무상통(有無相通)하던 사회로서, 원래 하나님이 완성한 인간을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공생공영공의주의사회(共生共榮共義主義社會)를 사탄이 앞질러 비원리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만약 이 사회에 투쟁도 분열도 없었다면 이 사회는 그대로 영속(永續)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Some historians have held that the first society built by fallen people was a primitive collective society. From the viewpoint of God’s providence, the primitive societies which fallen people built were centered on Satan. Though Satan may have tried to build a collective society where people shared their possessions with each other, it would still have been only a defective imitation of the society which God intends to build through people of perfect character: a society characterized by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Regardless of the form, this satanic primitive society could not have been free of struggle and division. If it had been, it would have perpetuated its existence forever without change, and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could never have been fulfilled.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타락인간은 그 개체에 있어 두 마음이 서로 싸우고, 또 이 마음의 싸움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개체와 개체가 서로 싸우게 되므로, 원시공동사회가 그대로 평화로이 유지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사회가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서로 달리하는 사회에로 발전함에 따라서, 그 싸움이 더욱 크게 전개되어 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려는 인간의 본심(本心)의 작용에 의하여 사탄을 중심하고 조성되었던 원시공동사회에는 일찍부터 싸움에 의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In reality, the two minds at war within a fallen person give rise to internal conflicts which manifest themselves through his actions and cause him to be in conflict with others. Therefore, it would have been impossible for a satanic primitive society pursing the goal of collective living ever to maintain peace. As primitive societies evolved into larger-scale societies with different economic and social relations, these conflicts inevitably evolved in a corresponding manner. Due to the activity of the original mind calling people to respond to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divisions between relative good and evil surely arose in primitive societies under satanic sovereignty.

사탄을 중심한 인류 죄악사의 발전과정을 보면, 원시공동사회(原始共同社會)에서 분열된 인간을 중심하고 씨족사회(氏族社會)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더 성장하여 봉건사회(封建社會)를 이루었으며, 그 판도와 주권을 더욱 확장하여 군주사회(君主社會)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이 이 죄악세계에서 선한 개체를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선의 씨족사회를 세우고, 나아가 선의 봉건사회를 이루어 가지고 선의 왕국을 건설함으로써 메시아를 맞기 위한 선의 판도와 주권을 수립하려 하셨기 때문에, 사탄이 또한 이것을 먼저 알아 가지고 그러한 형의 노정을 앞질러 걸어 나온 것이었다.

When we examine the course of social development guided by Satan, we find that clan societies arose out of the divisions between individuals in primitive societies. These societies have tended to expand in scope, with clan societies developing into feudalistic societies and then into monarchic societies by increasing their territory and power. Satan preempted this pattern ahead of God, because he understood God’s plan to call good individuals out of the sinful world and have them build a good clan society, then expand to a good feudalistic society, and finally reach the stage of a good kingdom with territory and sovereignty sufficient for the Messiah to come and accomplish his work.

실상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세계에서 선의 중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자녀를 번식케 함으로써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그 후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급(埃及)에 들어가서 씨족으로부터 부족으로 발전되었으며, 그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에는 사사시대(士師時代)를 이루었던 것인데, 이 사사를 중심한 사회가 바로 이스라엘 봉건사회였다.

God called Abraham out of the sinful world to be the standard-bearer of goodness and blessed him with descendants who would uphold the Will of God. God raised up Abraham’s descendants into the first Israelite clan society. They entered Egypt as a clan society, but by the time they left Egypt for Canaan, they had grown into a tribal society. Israelite society in the period of the judges was a feudalistic society.

The Progress of History in the Ag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그러면 이 사회를 어찌하여 봉건사회라고 하는가? 봉건사회의 특성은 봉사와 복종을 전제로 하는 주종관계(主從關係)에 의한 정치제도와 봉토(封土)를 중심한 봉쇄적인 자급자족의 경제체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사시대는 바로 이러한 성격의 사회였던 것이다. 즉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의 각 지파(支派)에게는 땅이 분배되었고, 그 지파들은 대영주(大領主)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사사(士師)를 중심하고 봉건사회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를 이스라엘 봉건사회라고 한다.

A feudalistic society in this discussion refers to a society with a political system characterized by master-servant relationships of service and obedience and an economic system composed of self-sufficient units in small, isolated territories. In the period of the judges, Israelite society had such characteristics. When the Israelites entered Canaan, a portion of land was allocated to each tribe. The judges who ruled these territories played a role similar to that of bishops and feudal lords in early medieval Europe.

봉건사회(封建社會)의 백성들은 그 사회의 성격상 그 영주(領主)의 사상(思想)과 영도(領導)에 절대 순종굴복하였다. 따라서 그 영주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 있는 한 그 백성들은 자연히 그를 따라서 하늘편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또 그들은 이와 같이 주종관계에 의한 봉쇄적인 정치와 경제의 사회제도하에 있었기 때문에, 사탄의 외침(外侵)을 당하지 않는 환경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씨족사회(氏族社會)가 봉건사회로 발전하게 된 것은, 사탄의 소유를 하늘편으로 빼앗아 넘김으로써 하늘편 주권에 속하는 보다 큰 판도를 형성하여 가지고 사탄의 침범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또 그것을 안 사탄은 여기에 대비하여 한 걸음 앞질러서 먼저 사탄편 봉건사회를 이룸으로써 사탄주권을 유지하려 하였던 것이다.

It is the nature of a feudalistic society that its people espouse the beliefs of their lord and obey his commands. As long as the lord remains faithful to the Will of God, his people will follow him and stand on God’s side. Living in a political system built on master-servant relationships and having a self-sufficient economy largely isolated from the outside world, they have considerable capacity to withstand Satan’s invasion from outside. The main reason that a clan society develops into a feudalistic society is to bring property and people, which had belonged to Satan, back to God’s side. By expanding the territory under God’s sovereignty, they are better placed to ward off Satan’s invasion. Understanding this divine providence, Satan tried to preserve his rule by preempting it and forming his own feudalistic societies many centuries earlier.

또 한편 봉건사회는 보다 더 큰 주권과 판도의 군주사회(君主社會)를 이루기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오게 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봉건사회로써 사탄편의 침범을 막을 수 있는 소단위의 하늘편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를 형성한 후에, 다시 이것들을 통합하여 보다 더 큰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로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군주사회가 오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울왕으로 시작된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였다.

The providential purpose of the feudalistic society of early Israel was to lay a foundation for the establishment of a monarchic society with greater territory and more powerful sovereignty. The monarchic society amalgamated the smaller units of political and economic sovereignty secured by the earlier feudalistic society into a single territory with a large population, a strong economy and a well-defended sovereignty. This was done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founded by King Saul.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었다(계 11 : 15).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군주사회를 형성하신 것은,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Jesus was to come as the King of Kings (Rev. 11:15). God built the monarchic society in Israel to prepare a strong enough foundation for him to come as the Messiah and rule as King of Kings.

하나님이 이러한 섭리 밑에서 이스라엘 군주사회를 세우려 하셨었기 때문에, 사탄편에서는 또다시 이것을 앞질러 먼저 사탄을 중심한 군주사회(君主社會)를 형성함으로써 하늘의 섭리를 막아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가 오기 전에 이미 사탄세계에서는 애급왕국(埃及王國)이 기원전 수십 세기에 제1왕조를 세워 그후 30왕조나 계승되었었고, 고 바빌로니아왕국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왕 때 벌써 전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였던 것이며, 힛타이트왕국은 기원전 14세기에 시리아를 중심으로 동방(東方)의 최강국(最强國)이 되었었다. 그리하여 사탄편 세계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는 인간 본심의 작용에 의하여 보다 선한 왕국과 보다 악한 왕국이 서로 싸우면서 왕국을 단위로 한 분립역사(分立役事)를 일으켜 나왔던 것이다.

Long before this, Satan understood the providence to receive the Messiah behind the construction of the monarchy and had formed his own monarchic societies to block God’s providence. Many centuries before the founding of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the first dynasty of Egypt had been founded, and pharaonic Egypt continued through some thirty dynasties. The ancient kingdom of Babylon had ruled all of Mesopotamia during the reign of King Hammurabi in the eighteenth century B.C., and the Hittites ruled supreme over the Near East in the region of Syria during the fourteenth century B.C. Even within the satanic world, there was constant warfare between relatively good kingdoms and relatively evil kingdoms, resulting in the separation of good from evil. This drive toward goodness is rooted in the original mind, which responds to the call of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따라서 당시의 솔로몬왕이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더라면, 그는 애급, 메소포타미아, 크레타(혹은 미노아)등 3대 문명(三大文明)을 흡수한 문화적인 사회환경에서 그의 탁월한 정치능력을 발휘하여 동방제국(東方諸國)을 통일하였을 것이었고, 나아가서는 메시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적인 판도를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왕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 군주사회를 붕괴시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Had King Solomon served God’s Will until the end, he could have exercised his God-given political skills to unify the nations of the Near East. He could have assimilated the Egyptian, Minoan and Mesopotamian civilizations, which were weak at that time. He thus would have built a worldwide dominion to which the Messiah could come and realize God’s sovereignty on earth. Unfortunately, Solomon fell into idolatry. Consequently, God had to begin a dispensation to dismantle this monarchic society which He had so painfully built up.

이와 같이 통일왕국시대의 왕들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 하나님의 주권을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은 이 왕국을 남북(南北) 두 왕조로 분립하셨다. 그리하여 하늘 뜻을 배반하였던 북조(北朝)는 이방인 앗시리아(애급, 바빌로니아, 힛타이트 등의 왕국이 쇠미해짐에 따라 이 앗시리아왕국이 강대해져서 기원전 8세기에 애급을 포함한 오리엔트의 중심부를 정복하여 최초의 세계제국을 건설하였었다)에 부쳐 멸망하게 하셨고, 하늘 뜻을 받들던 남조(南朝) 유대도 얼마 안 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게 되자 신바빌로니아(앗시리아제국이 멸망한 후 갈대아인에 의하여 바빌론을 수도로 하여 신바빌로니아왕국(혹은 갈대아왕국)이 창건되었었다)에 부쳐서 멸망하게 하셨던 것이다.

Since the kings of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did not lay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nor complete the groundwork upon which God could restore His sovereignty, God eventually divided the kingdom into two: Israel in the north and Judah in the south. When they continued to transgress against God’s Will, God let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be destroyed at the hands of the gentile nation of Assyria. The Assyrians in the eighth century B.C. had conquered the entire ancient Near East, including Egypt, to build the first world empire. The kingdom of Judah upheld God’s Will for a time, but then rebelled against Him. Hence, God allowed it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neo-Babylonian Empire, which had supplanted Assyria as the second world empire.

하나님은 유대왕국을 멸하신 후,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까지 유대민족을 여러 이방(異邦)들에게 속하게 하심으로써 이 민족의 왕위를 비워 두셨다. 특히 유대민족을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기틀이 될 헬라문명권 내에 속방(屬邦)이 되게 하심으로써, 장차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 유대민족이 그를 환영하기만 하면 민의(民意)에 의하여서 언제든지 메시아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민주주의형의 사회를 이루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민의는 예수님을 왕위에 올려 세우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에 살해하고 말았으므로, 이것으로써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을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2천년의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영적으로만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After the fall of Judah, God kept the throne of Israel vacant and put the Jewish people under the control of successive gentile empires for most of the period leading up to the coming of the Messiah. Most notably, God placed them in the Hellenistic cultural sphere, which laid the ideological framework for democracy. God fashioned Israel’s society in the form of democracy in order that when the Messiah came, he could be hailed as their king by the will of the people, who should have welcomed him wholeheartedly. However, the Jewish public did not so elevate Jesus. Without public support, he was crucified. Consequently, at the consummation of the providence which had begun two thousand years earlier with the calling of Abraham and his descendants out of the sinful world, its purpose was attained only spiritually.

The Progress of History in the Ag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Ⅱ. 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역사 발전

7.2 The Progress of History in the Age of the Prolongation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1. 복귀섭리와 서양사

7.2.1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the History of the West

기독교(基督敎)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은 4세기 말에 이르러 드디어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 굴복하고,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정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당초에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모시어 하나가 되었더라면, 로마제국을 중심하고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는 응당 살아 계신 예수님에게 감화되어, 그를 왕으로 모시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왕국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민족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메시아왕국을 위한 터전이 되었어야 했던 로마제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서기 476년에는 서로마가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패망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원한의 땅 유대에서 서로마의 판도였던 서구(西歐)로 옮겨지게 되었다.

The Roman Empire, which had persecuted Christianity, finally knelt before the crucified Jesus in the fourth century and adopted Christianity as the state religion. Nevertheless, the original providential role of the Roman Empire, which had unified the ancient world around the Mediterranean Sea, was to lay the foundation for Christ’s kingdom on earth. Had the Jewish people believed in Jesus as the Messiah and united with him, the Roman Empire would have been won over by Jesus during his lifetime. Jesus would have been honored throughout the empire as the King of Kings. He would have established a worldwide dominion with Jerusalem as its capital. However, because the Jewish people disbelieved, Judea was destroyed and the Roman Empire was fated to decline. After a century of barbarian invasions, the Western Roman Empire came to an end in 476 A.D.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the History of the West

따라서 예수님 이후에 있어서의 기독교에 의한 영적 복귀섭리는 서구를 발판으로 하고 이루어 나왔기 때문에, 이 시대의 복귀섭리역사는 서구에서만 전형노정(典型路程)을 따라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유물사관(唯物史觀)에서 논하고 있는 역사발전 과정도 서구의 역사에서만 적응되고 있는 바, 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서구를 중심한 기독교사는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를 형성한 중심사료(中心史料)가 된 것이다.

In this manner, the center of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shifted from Judea, the land of God’s bitter grief, to Western Europe, formerly the territory of the Western Roman Empire now occupied by the Germanic tribes. Accordingly, the spiritual providence of restoration based on Christianity has been conducted primarily in Western Europe. Only in Western Europe has the history of this era progressed strictly according to the pattern set by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n Western Europe provides us with information about the events which shaped the Age of the Prolongation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the History of the West

2. 종교사와 경제사와 정치사의 상호관계

7.2.2 The Mutual Relations between Religious History, Economic History and Political History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유형(有形) 무형(無形)의 두 세계를 주관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육신(肉身)과 영인체(靈人體)의 두 부분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셨다 함은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논술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영인체와 육신이 함께 성장하여 완성됨으로써 영육 양면의 지성(知性)이 동시에 지상의 육신생활 가운데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됨으로 인하여 영육 양면의 무지에 빠지게 되었었다. 여기에서 인간의 영적인 무지는 종교에 의하여, 그 육적인 무지는 과학에 의하여 계발(啓發)되어 나왔던 것이니, 이에 관해서는 이미 전편 제3장 제5절 Ⅰ에서 논하였다.

To enable human beings to rule both the spirit world and the physical world, God created them as the dual entities of spirit self and physical self (cf. Creation 6.2). Had human beings not fallen, their spirit self and physical self would have reached perfection together. Their spiritual intellect and physical intellect would have joined in complete harmony during earthly life. After human beings fell and became ignorant of both the spiritual and physical worlds, God worked to overcome spiritual ignorance through religion and physical ignorance through science (cf. Eschatology 5.1).

그런데 영적인 무지는 종교로써 타락인간 가운데 잠재해 있는 그 본심(本心)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이 보이지 않는 원인적인 세계를 찾아 나아감에 따라 점차 계발되어 왔다. 그러나 종교는 누구나 다 긴절(緊切)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인 면의 계발은 어느 특수한 인간에 있어서는 비약적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완만한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에 있어서도 영적인 면에서는 고대인(古代人)이나 대차(大差)없는 인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Religions have helped fallen people gradually overcome their spiritual ignorance by stimulating their latent original mind to activity. They have been teaching people to focus their lives on the invisible, causal world of God. Since not everyone feels an immediate need for religion, only a few exceptional people attain spiritual knowledge rapidly. For the vast majority, spiritual growth remains a slow process. We see this from the fact that even today, with religions widespread throughout the world, people’s spiritual level is often no better than that of people in ancient times.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육적인 무지는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결과의 세계 즉 자연계(육계)에 대한 것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으로써 계발되어 왔다. 그리고 과학은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긴요하다. 그러므로 육적인 무지에 대한 계발은 급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On the other hand, everyone is familiar with the findings of science, which have greatly enhanced our knowledge of the physical world. Since science deals with practical matters, everyone feels a strong need for it. Thus, the increase in humankind’s knowledge of the physical world has generally been widespread and rapid.

이렇듯 찾아가는 대상이 종교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원인(原因)의 세계이므로 초현실적(超現實的)인 것인 데 반하여 과학에 있어서는 보이는 결과(結果)의 세계 즉 물질세계(物質世界)로서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와 과학은 이론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 상충되어 왔다. 그뿐 아니라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주권을 갖고 있는 사탄이 현실생활을 통하여 인간에게 침범하는 관계로, 지금까지 종교의 길은 현실을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기 때문에, 현실을 추구하는 과학과 서로 조화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Furthermore, while the objects of religious study are in the intangible, transcendent world of cause, scientific research examines tangible, material objects in the world of result. Hence, to this day religion and science remain theoretically irreconcilable. Moreover, because Satan, who holds sovereignty over the universe, attacks and corrupts people through their life in the world, religions teach one to deny the world. As such, religions cannot easily harmonize with science, which seeks to improve life in the world.

다음 장 제1절에서 상세히 논급하겠거니와, 하나님이 원래 인간의 외적인 육신(肉身)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으로 내적인 영인체(靈人體)를 창조하셨기 때문에(창 2 : 7), 재창조 원칙(再創造原則)에 의한 복귀섭리(復歸攝理)도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복귀해 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러한 섭리적 원칙으로 보더라도 과학과 종교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발전과정을 밟아 나온 것은 사실이다.

We know that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outward physical body of human beings before imbuing them with their inner spirit (Gen. 2:7).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hich is a work of re-creation, follows the same pattern, from the external to the internal. From this providential perspective, it is evident that during their course of development, religion and science are often at variance, even in conflict (cf. Preparation 1).

이러한 부조화(不調和)는 종교와 경제의 관계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경제도 역시 과학과 같이 현실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더욱이 과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로 인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에 의한 종교사(宗敎史)와 그 외적인 섭리에 의한 경제사(經濟史)는 그 발전에 있어서 서로 방향과 진도를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전형노정(典型路程)을 밟아 온 서구에 있어서의 역사발전을 섭리적인 면에서 파악하기 위하여는 기독교사(基督敎史)와 경제사를 따로 갈라 가지고 고찰해 보지 않으면 아니 된다.

The same discord is foun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people’s religious and economic life. Like science, economic activities deal with the practical world. Indeed, economic progress bears a close relationship to the development of science. Accordingly, religious history, based on the internal development of God’s providence, and economic history, based on the external development of His providence, have taken divergent directions and have progressed at different rates. Therefore, to grasp the progress of the history of the West, which has followed the pattern set by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we must examine the history of Christianity and Western economic history separately.

그런데 종교와 과학이 그러하듯이, 종교와 경제도 타락인간(墮落人間)의 내외 양면의 생활을 각각 분담하여 복귀해야 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전혀 관계없이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 따라서 종교와 경제는 그 발전과정에 있어서 서로 상충적인 면을 지니면서도, 우리의 사회생활과 결부되어 각각 기독교사와 경제사를 형성해 온 것이다.

As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religion and economy are related in that they are responsible for restoring the internal and external aspects of fallen people’s lives. Although religion and economy, like religion and science, seem to develop at variance with each other, they are related in the life of society.

그러면 그것들은 우리의 사회생활과 어떻게 결뉴(結紐)될 수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정치에 의해서였다. 기독교화했던 서구(西歐)에서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서구에 있어서의 정치는 급진적인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과, 복귀섭리의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맸던 기독교의 움직임을 사회생활 가운데서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정치사(政治史)는 종교와 경제를 조화시키려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를 위한 역사의 발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는 정치사도 역시 별도로 고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Thus, there has been some mutual influence betwee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and economic history. Religion and economy are integrated with our life in society through politics. Especially in Western Europe, politics has sought to connect economic development, which has closely followed the progress of science, with the path of Christianity, which has often lacked a clear sense of its providential direction. Western political history has pioneered a path through which to harmonize religion and economy. Therefore, to accurately grasp the progress of history as it moves toward the goal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e must also investigate separately the history of politics.

이에 대한 실례로서, 17세기 말엽에 있어서의 서구(西歐)의 역사를 놓고 그 발전과정을 고찰해 보자.

As an illustration of how the courses of religious, political and economic development have progressed separately, let us sketch the historical situation of Western Europe toward the end of the seventeenth century.

먼저 종교사(宗敎史)의 면에서 살펴보면, 이 시대에는 이미 기독교 민주주의사회(基督敎民主主義社會)가 형성되어 있었다. 즉 1517년의 종교개혁(宗敎改革)으로 인하여 교황이 독재하던 영적인 왕국이 붕괴됨으로써 중세인들은 교황에 예속되어 있던 신앙생활에서 해방되어 누구나 성서를 중심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나 정치사(政治史)의 면에서 보면 이 시대에는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가 대두되어 있었고, 경제사(經濟史)의 면에서는 아직도 장원제도(莊園制度)에 의한 봉건사회(封建社會)가 엄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동시대의 동사회가 종교면에서는 민주주의사회가 되고, 정치면에서는 군주주의사회가 되며, 경제면에서는 봉건주의사회가 되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이 시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그 발전과정을 각각 별도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With respect to the history of religion, democratic values had already taken root in the Christianity of this period. Christianity of a monarchic polity under the rule of the papacy had fragmented with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1517. The people of Europe, whose life of devotion in medieval times had been subject to the papal hierarchy, were gradually liberated to lead a Christian life based on their own reading of the Bible. With regard to the politics of this period, absolute monarchy was at its height. Economically, feudal society based on the manor system persisted in many parts of Europe. Thus, the same European society was becoming democratic with respect to religious life while remaining monarchic with respect to political life and feudal with respect to economic life.

그러면 복귀섭리시대(구약시대)에 있어서의 역사 발전은 어찌하여 그러한 과정을 밟아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고대사회(古代社會)에 있어서는 과학의 발달이 거의 정돈상태(停頓狀態)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발전도 역시 그러하였다. 아직도 생활양식이 분화되기 전인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이스라엘 민족은 지도자들의 명령에 의하여 엄격한 율법(律法)에 추종하는 주종관계(主從關係)의 사회제도하에서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생활은 곧 그들의 사회생활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립된 발전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We also should clarify why the development of history through most of the Old Testament Age was not characterized by this pattern of separate development. In ancient Israel, the progress of science was extremely slow. Hence, its economic life did not develop, and its society had little specialization. The people led a simple life under a social system in which religion was an integral part of their daily life. Bound by master-servant relationships and the strict code of the Mosaic Law, they had to obey their rulers in matters both political and religious. In that age,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did not progress separately.

The Mutual Relations between Religious History, Economic History and Political History

3. 씨족사회

7.2.3 Clan Society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복귀섭리연장시대(신약시대)에 있어서의 종교와 정치와 경제 등의 각 부면으로 본 역사발전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Let us examine the progress of history in terms of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during the New Testament Age.

사탄을 중심한 원시공동사회(原始共同社會)는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는 인간의 본심(本心)의 작용에 의하여 분열되어, 그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인간이 분립됨으로써 하늘편 씨족사회(氏族社會)가 형성되었다 함은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살해한 유대민족은 이미 사탄편 계열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회를 그대로 두시고는 복귀섭리를 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사회를 분열시켜 그 가운데서 독실한 기독교 신도들을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기독교씨족사회(基督敎氏族社會)를 세우셨던 것이다.

The inclination of the original mind to respond to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generally brings about divisions in a society centered on Satan. Those who follow God’s Will are singled out in this process and may gather to form a clan society on God’s side. The birth of the Christian clan society followed this pattern. With the crucifixion of Jesus, the Jewish nation had fallen to Satan’s side and God could not continue with His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that society under such circumstances. Consequently, God broke up that society, calling devout believers out of it to establish a Christian clan society.

구약시대에 있어서 야곱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형성하여 섭리노정(攝理路程)을 출발했던 것과 같이,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가 기독교씨족사회를 형성하여 섭리노정을 출발했던 것이다. 기독교씨족사회는 원시기독교사회(原始基督敎社會)였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도 정치나 경제에 있어서의 어떠한 제도가 필요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립된 발전을 할 수 없었다.

In the Old Testament Age, Jacob’s twelve sons led his seventy kinsmen to form Israelite clan society and set out on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Similarly, in the New Testament Age, Jesus’ twelve disciples led his seventy followers to form the Christian clan society and commence God’s new providence. Christian clan society was composed of rudimentary communities with little or no structured political or economic system. In this period, religion, politics and economics did not progress independently.

기독교씨족사회(基督敎氏族社會)는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 안에서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받아 가면서 번성하여 기독교부족사회(基督敎部族社會)를 형성하는 데 이르렀었다. 그리고 4세기 후반으로부터 시작되었던 민족들의 대이동에 의하여 서로마제국은 드디어 476년에 쇠망(衰亡)하였고, 그 판도 안으로 이동해 온 게르만 민족에게 기독교가 침투됨으로써 그들을 중심하고 광범한 기독교사회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Despite severe persecution, Christian clan society gradually prospered in the Roman Empire around the Mediterranean Sea and developed into a Christian tribal society. Battered by the mass migrations of peoples which began in the latter half of the fourth century, the Western Roman Empire fell by 476 A.D. Christian society expanded greatly as Christianity was brought to the Germanic peoples who migrated into this territory.

Clan Society

4. 봉건사회

7.2.4 Feudalistic Society

역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씨족사회(氏族社會) 다음에 오는 것은 봉건사회(封建社會)인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왕권(王權)이 쇠미해지고 국가가 무질서한 상태에 빠졌을 때 봉건사회는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서구의 기독교사회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화되어 각각 상이(相異)한 발전을 해 나아가게 되었다.

With the progress of history, clan society developed into feudalistic society. A feudalistic society was born in Europe when, around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imperial authority waned and the empire sank into chaos. In this society,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would eventually divide and take separate paths. In the early days of this feudalistic society, particularly among the newly-Christianized Germanic tribes, free peasants and warriors were ruled by local princes.

봉건사회는 대·중·소의 영주(領主)와 기사(騎士)들 사이에 복종과 봉사를 전제로 하고 맺어진 주종관계에 의한 정치제도(政治制度)와 장원제도(莊園制度)에 의한 봉쇄적인 자급자족의 경제제도로써 형성되었었다. 국토는 많은 영주들에 의하여 분할되었고, 국왕은 사실상 영주 중의 하나였으므로 국왕의 권력도 지방분권적이었다. 영주들은 상부로부터 은대지(恩貸地)로 토지를 분배받아 그들의 독립 영지(領地)를 이루고 그 안에서 재판권까지 행사하였었다. 따라서 이 영지는 거의 국가권력을 떠난 사령(私領)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어진 사령을 장원(莊園)이라고 한다.

Political power was diffused among many lords, each ruling over his territory in the absence of any national authority. Feudalistic society in Europe then gradually developed into a political system based on master-servant relationships at every level, as between lords of different ranks and their knights, and the self-sufficient economy of the manor system. After the fall of the Carolingian Empire, mature feudalism would spread everywhere in Europe. Land was divided into many manors, each ruled by a feudal lord.

자작농(自作農)의 하민(下民)들이 주권자들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자기의 소유지를 영주 또는 사원(寺院)에 기증하고, 그 토지를 다시 은대지로 대여받아서 된 장원도 있었다. 이와 같이 되어 장원은 전국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최하급의 기사는 하나의 장원을 할여받아 영주에게 사병(私兵)으로서 종사하였지만, 국왕이나 영주는 수백 수천의 장원을 소유했던 것이다.

These lords were responsible for all aspects of life in their manors and had supreme judicial authority. Farmers traded their private land to the feudal lords or monasteries in exchange for military protection, and their land was returned to them as a fief. Vassal knights received manors from their feudal lords in return for service as their private soldiers. While a lower ranking knight might own only a single manor, each king or great lord possessed hundreds or thousands of such manors, which he distributed as fiefs to his vassals. The kings had limited power and were no more than great feudal lords.

종교면에서도 그것은 기독교를 중심하고 위에서 논한 봉건사회(封建社會)와 동일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기독교봉건사회(基督敎封建社會)라고 한다. 즉 교구장(敎區長), 대주교(大主敎), 주교(主敎)는 대·중·소의 영주에 해당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국왕이 영주 중의 하나였던 것과 같이 교황도 교구장 중의 하나였다. 거기에도 절대적인 주종관계에 의한 종교적인 정치제도가 있었고, 주교들은 신자들로부터 기증된 봉토(封土)를 가지게 되어 그들은 봉건적 계급층들 중에서 유력한 지위를 가지고 있던 영주들이기도 하였다.

Religious life in Europe during the period of regional church leadership developed along the same lines as the early feudalism of its political and economic life; hence it may be termed feudalistic Christianity. Patriarchs, archbishops and bishops assumed positions corresponding to major, medium and minor feudal lords. As a king was only one of the great feudal lords, the pope was only one of the five patriarchs. The political structure within the Roman Catholic church was founded upon strict hierarchical relationships between master and servant. A bishop or abbot had a social rank and power comparable to a secular feudal lord. Acting as the lord of his church estates, he could, if necessary, raise an army from the ranks of his vassals.

다음으로 경제면에서 이 시대를 고찰하여 본다면, 이 시대는 고대 노예제도(奴隸制度)에서 장원제도(莊園制度)로 옮겨진 시대였다. 따라서 평민들이 이때부터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토지제도에 의한 신분은 대체로 지주, 자작농, 농노(반자유 신분), 노예(부자유 신분) 등의 4계급으로 갈라져 있었다.

With respect to economic life, this period began with a time of transition from the slave society of ancient Rome to the manor system. Some of the land in this period began to be owned by a free peasantry. In terms of land tenure, people’s status in this period could be classified into four grades: nobility, free peasantry, serfs and slaves.

이와 같이 하나님은 게르만 민족을 새로운 선민(選民)으로 교화(敎化)하여 봉건사회를 수립함으로써 쇠망한 서로마의 터전에다 종교와 정치와 경제의 3면으로 소단위의 하늘편 판도들을 강화하여, 장차 하늘편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In this way, out of the ashes of the Western Roman Empire, God raised a feudalistic society among the newly-Christianized Germanic peoples whom He had chosen to lead the providence. By strengthening small units under godly sovereignty in the spheres of religious, political and economic life, God laid the groundwork to establish a godly kingdom.

Feudalistic Society

5. 군주사회와 제국주의사회

7.2.5 Monarchic Society and Imperialism

역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봉건사회 다음에 오는 것은 군주사회(君主社會)인 것이다. 그러면 이때의 서구(西歐)에 있어서의 정치면에서 본 군주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With the progress of history, feudalistic society developed into monarchic society. Politically, how did European monarchic society arise?

서구에 이동된 게르만 민족이 세웠던 국가들은 모두 그 존립기간(存立期間)이 짧았었으나, 프랑크왕국만은 오래도록 존속되었다. 프랑크는 서게르만의 한 부족이었는데, 그가 메로빙왕조를 세운 후 기독교(基督敎)와 결합하고 로마문명을 흡수하여 서구에다 게르만적인 로마풍의 세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 왕조(王朝)가 몰락한 후 카알 마르텔은 서침(西侵)한 아라비아인을 물리쳐 세력을 폈고, 그의 아들 피핀은 카롤링왕조를 세웠다. 피핀의 아들 카알대제는 일찍부터 성어거스틴의 ‘신국론(神國論)’을 숭상하였었는데, 왕위(王位)에 오르자 그는 어거스틴의 ‘신국론’을 국가이념으로 하는 군주국가(君主國家)를 세우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카알대제는 중부유럽을 통일하고, 민족 대이동으로 혼란된 서구를 안정시켜서 강력한 프랑크왕국을 확립하였었다.

The kingdoms built by the Germanic peoples in Western Europe were all short-lived, except for the Kingdom of the Franks. The Frankish kings of the Merovingian dynasty received Christianity and absorbed the heritage of Roman civilization to form a Germanic-Roman world in Western Europe. After the Merovingian kings lost power, Charles Martel became the effective ruler of the Franks. He expanded the kingdom by defeating the Moors, who had invaded from the southwest. His son, Pepin the Short, became the first Carolingian king and was the father of Charlemagne. Charlemagne thought highly of St. Augustine’s vision of a Christian kingdom and made it the guiding principle of the realm. Charlemagne’s empire unified western and central Europe, bringing stability to lands which had formerly been in turmoil due to massive migrations.

다음으로 종교면에 있어서 기독교봉건사회(基督敎封建社會)에 뒤따라 온 기독교군주사회(基督敎君主社會)는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敎皇)을 중심하고 세워졌던 국토 없는 영적 왕국사회였다. 그리고 교황 레오 3세가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고, 그에게 황제(皇帝)의 관을 수여하여 천적(天的)인 기업을 상속함으로써, 교황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영적인 왕국과 정치적으로 형성된 프랑크왕국이 하나되어 기독왕국(基督王國)을 이루었던 것이다

In the sphere of religion, monarchic Christianity, which followed feudalistic Christianity, was a spiritual kingdom which transcended national borders. It was established under the rule of the papacy and upon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In 800 A.D., Pope Leo III crowned Charlemagne emperor and gave him the Church’s blessing. By this act, the pope passed on to him the central responsibility for the providence. The spiritual kingdom under the papacy and the Kingdom of the Franks under Charlemagne united and formed the Christian empire.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는 구약시대의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와 동시성의 시대였다. 이처럼 봉건시대(封建時代)에 뒤따라 왕국시대가 왔던 것은 봉건사회를 통합함으로써 더욱 큰 하늘편의 주권과 백성과 판도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천사장(天使長)의 입장에서 실체세계(實體世界)를 복귀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 온 교황은 국왕을 축복한 후에 가인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하고, 또 국왕은 교황의 이념에 따라 메시아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하여 기독왕국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웠더라면, 이 시대가 바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말세(末世)가 될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그때까지 서로 타협을 보지 못하고 상충되어 왔던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과제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왔더라면, 그때 바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하나의 이념을 중심하고 완전히 일치된 방향으로 발전함으로써, 이 터전 위에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The period of the Christian empire was parallel to the period of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in the Old Testament Age. In both cases, a monarchic society followed a feudalistic society for the purpose of consolidating a greater sovereignty, population and territory on God’s side. It was explained earlier that the pope had been leading the Church from the position of archangel in order to pave the way for an earthly kingdom. But after crowning the emperor and giving him God’s blessing, the pope was then to serve him from the position of Cain (cf. Parallels 4). The emperor, in turn, was to uphold the teachings of the papacy and carry on political work to realize a kingdom fit to receive the Messiah. Had they thus built the Christian empire in full accordance with the Will of God, this period would have been the Last Days of human history, when the Messiah could have come. The new truth would have then appeared to resolve the problems of religion and science as an integrated human endeavor, guiding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to progress in one unified direction based on God’s ideal. On this basis, the found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was to have been established.

그렇기 때문에 기독왕국시대가 옴으로써 봉건시대는 그때에 완전히 끝나야만 할 것이었다. 그러나 교황이나 국왕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됨에 따라서, 카알대제의 본래의 이상(理想)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완강한 봉건제도(封建制度)의 기틀은 무너지지 않고 그 후 오래도록 존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여전히 서로 분립됨으로써,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도 여전히 분립되어 상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었다.

Moreover, with the dawning of the period of the Christian empire, feudalism should have come to a complete end. However, the popes and the emperors deviated from the Will of God. This made it impossible for them to realize Charlemagne’s founding ideal. As a result, feudalistic society was not dismantled; on the contrary, it grew stronger over the next several centuries.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remained divided, with the spiritual kingdom ruled by the papacy coming into frequent conflict with earthly kingdoms ruled by kings.

이와 같이 되어 카알대제는 원숙한 봉건제도의 터전 위에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그 장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실상 일개 대영주(大領主)의 입장에 불과하였다. 기독왕국(基督王國)이 이렇듯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왕국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봉건제도는 점점 더 강화되어 정치면에서의 봉건계급사회(封建階級社會)는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가 일어날 때까지 전성(全盛)하였다.

The Christian empire failed to build a unified kingdom to which the Messiah could come. Charlemagne built his empire when the foundation of early feudal society was ripe for consolidation into a strong monarchy. However, he never fully subjugated the vested powers of the feudal lords. Instead, the feudal system strengthened, with the Holy Roman Emperor reduced to just one of the great feudal lords. Instead, the feudal system strengthened, with the Holy Roman Emperor reduced to just one of the great feudal lords. The feudal system would dominate Europe until the rise of absolute monarchy in the seventeenth century.

17세기 중엽부터 봉건계급이 몰락됨에 따라 지방으로 분할되었던 영주들의 권력은 국왕을 중심하고 중앙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정치이념으로 하고 군림한 국왕은 절대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국왕이 봉건계급사회의 영주의 입장을 벗어나 정치면에서의 군주사회(君主社會)를 사실상 형성하였던 것은 17세기 중엽으로부터 1789년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이 일어날 때까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With the decline of feudalism at that time, the previously decentralized powers of the feudal lords came to be concentrated in the hands of kings of large nation-states. The kings came to command absolute power and justified it by the doctrine of the divine right of kings. Absolute monarchies flourished until the French Revolution in 1789.

다음으로 종교사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군주사회(基督敎君主社會)의 귀추는 어떠하였던가? 이 시대의 교황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 못하고 세속화(世俗化)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심령적인 면에서 쇠퇴의 길을 밟아 가게 되었었다. 더구나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에 패함으로 말미암아 교황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한편 또 교황이 남불(南佛) 아비뇽에 유수(幽囚)됨으로써 그들은 허명무실(虛名無實)한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이었던 기독교군주사회는 1517년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되었던 것이다.

In the sphere of religious history, what were some of the trends during the period when Christianity led by the papacy had a monarchic structure? The popes fell away from God’s Will and became secularized; they were on the path of spiritual decline. Due to repeated defeats in the Crusades, the papacy lost its authority, and during its exile in Avignon, it was deprived of power and dignity. With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1517, Western Christianity ceased to be a unitary spiritual monarchy.

이 시대의 경제면에서의 발전과정을 보면, 봉건적 경제제도는 봉건적인 정치제도가 몰락되고 중앙집권화한 전제군주사회에 있어서도 의연히 존속되어 불란서혁명 때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농업경제(農業經濟)의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본주의화해 가던 다른 경제면에 있어서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넘을 수 없었다. 즉 자영농민(自營農民)들도 봉건 영주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하여 국왕의 권력에 의뢰하였으나 그들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또 매뉴팩처(manufacture)의 경영자들도 봉건적인 분열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중앙집권의 국왕과 결탁하였으나 결국 그들도 역시 봉건화한 상업자본가(商業資本家)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When we examine the progress of economic life, we find that feudal economic arrangements persisted even when political feudalism was being replaced by absolute monarchy. Capitalism was growing in the cities and towns, where manufacturers and merchants joined forces with the kings and fought against the constraining feudal system. New agricultural arrangements arose in the countryside, where independent farmers sought the aid of the king to resist the rule of the feudal lords. Still, neither of these economic developments could entirely displace feudalism, which continued until the French Revolution.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봉건사회(封建社會)에 뒤이어 오는 것이 군주사회(君主社會)라면, 경제면에 있어서의 봉건사회에 뒤이어 오는 것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사회(資本主義社會)와 그 뒤에 따라오는 제국주의사회(帝國主義社會)인 것이다. 국정(國政)에 대한 독재가 군주주의의 특색인 것같이, 금융자본(金融資本)에 대한 독점이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의 특색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17세기 중엽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가 시작될 무렵부터 싹이 터 영국의 산업혁명기(産業革命期)로부터는 점차 원숙기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사회가 오게 된 것은 봉건적인 경제제도에 의하여 확보된 소단위의 경제기대(經濟基臺)를 더 큰 기대로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경제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In the progress of economic history, feudalism was followed by capitalism, which was accompanied by the age of colonial expansion. As the consolida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was the goal of absolute monarchy, monopolization of finances and capital was the goal of powerful capitalists. Capitalism arose concurrently with the rise of absolute monarchy in the seventeenth century and flourished during and after the Industrial Revolution. Capitalism’s purpose in the providence was to promote the accumulation of capital and the centralization of economic activity to an extent impossible under feudalism; this was even more the case with imperialism. The imperialist drive for colonial expansion which began in this period had, as its providential purpose, the establishment of a worldwide economic, political and religious foundation.

여기에서 다시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전형노정(典型路程)은 서구(西歐)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논하는 제국주의도 서구를 중심하고 전개된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This discussion focuses on European imperialism alone, because the course of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was centered on Western Europe.

서구에서 팽창된 제국주의사상(帝國主義思想)은 서구의 각 기독교국가로 하여금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을 전후하여 지구의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획득하게 하였다. 이렇게 되어 세계는 급진적으로 기독교문화권(基督敎文化圈)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Competition among the nations of Western Europe led to their scramble for colonies all over the globe before World War I. This enabled the entire world to progress into Western Christian civilization.

Monarchic Society and Imperialism

6.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7.2.6 Democracy and Socialism

군주주의시대(君主主義時代)에 뒤이어 온 것은 민주주의시대(民主主義時代)였다. 그런데 군주주의시대가 오게 되었던 이유는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장차 메시아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가 그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이 사회를 깨뜨리고 메시아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세우신 것이다.

The age of monarchy gave way to the age of democracy. We recall that the purpose of monarchic society was to construct a kingdom which could support the Messiah and his reign. When this dispensation was not accomplished during the Christian empire, however, God began a process that would eventually tear down monarchic societies and raise up democracies in their place in order to commence a new providence for rebuilding a sovereign nation fit to receive the Messiah.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주권을 인민(人民)에게 둠으로써, 인민이 그 민의(民意)를 따라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주의를 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메시아왕국을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군주주의(君主主義)의 독재를 깨뜨리고, 메시아를 왕으로 모시기 위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제도를 세우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Democracy is based on the sovereignty of the people; it is government of, by and for the people. Its purpose is to destroy the political monopoly of monarchy, which had deviated from God’s Will, and to establish a new political system capable of accomplishing the goal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namely, to receive and support the Messiah as the King of Kings.

인간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서 그 심령(心靈)이 점차 밝아지게 되므로, 이 섭리에 대응하는 인간의 본심(本心)은 자기도 모르게 종교를 찾게 되고, 또 종교를 찾는 그 본심은 결국 하나님이 최종적인 종교로 세우시고 섭리하시는 기독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하나의 기독교문화권(基督敎文化圈)을 형성해 가고 있는 원인은 실로 여기에 있다.

How can democracy accomplish its purpose? With the flow of history, humankind’s spirituality has become enlightened due to the merit of the age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People’s original minds respond to the providence and seek religion, often without their knowing why. Eventually, people will come to receive Christianity, which God is raising to be the highest religion. In this way, the world today is converging to form a single civilization based on Christian ideals.

그러므로 역사가 종말에 가까워 갈수록 민의는 점차 기독교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민의에 따르는 민주정체(民主政體)도 또한 기독교적으로 변이(變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되어 기독정신(基督精神)으로 원숙한 민주정체의 사회로 메시아가 재림(再臨)하시면, 그는 민의에 의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지상에 세워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결국 사탄편의 독재를 없이 하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의 주권을 민의에 의하여 복귀하시려는 최종적인 섭리에서 나온 주의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전제군주주의(專制君主主義)에 대항하여 일어난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영(英)·미(美)와 불란서(佛蘭西)에서 민주주의 혁명을 일으키어 군주사회(君主社會)를 붕괴하고 민주사회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As history nears its consummation, the will of the people inclines toward Christian values. Democratic governments which abide by the will of the people also gradually become more Christian. Thus, when the Messiah returns to societies under the rule of democratic governments well-matured by the Christian spirit, he will be able to establish God’s sovereignty upon the earth with the wholehearted support of the people. This will be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We need to understand that democracy was born to undermine satanic monopolies of power for the purpose of God’s final providence to restore, by the will of the people, a heavenly sovereignty under the leadership of the returning Christ. The democratic movements which rose against the absolute monarchies of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gave rise to revolutions in England, America and France. These revolutions destroyed monarchic societies and gave birth to today’s democratic societies.

우리는 위에서 역사발전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고찰하였거니와, 히브리사상과 헬라사상의 섭리적인 흐름으로 본 민주주의에 대하여는 다음 장으로 미루기로 한다.

The different forms taken by democracy according to the providential trends of Hebraism and Hellenism will be discussed in the next chapter (cf. Preparation 3.1-3.2).

다음으로 종교면에서의 역사발전 과정에 있어서도, 1517년 종교개혁(宗敎改革)으로 인하여 교황을 중심한 국토 없는 영적인 왕국이 붕괴된 후에 기독교민주주의시대(基督敎民主主義時代)가 왔다. 기독교민주주의는 종교개혁을 일으킴으로써 교황이 독재하여 내려오던 영적인 왕국을 붕괴시켰다.

The progress of history in the religious sphere moved to the stage of democratic Christianity after monarchic Christianity was shattered by the Protestant Reformation of 1517. Through the Reformation, democratic forces within Christianity dismantled the spiritual kingdom over which the papacy had commanded sole authority.

원래 교황을 중심한 이 왕국은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교황이 국왕과 하나가 되어 재림하실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왕국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교황이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치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의 독재적인 주권을 깨뜨리기 위하여 민주주의가 나오게 되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교황의 독재적인 주권을 깨뜨리기 위하여 기독교민주주의가 나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에는 교황이나 승려를 통하지 않고 각자가 성서를 중심하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기독교민주주의시대가 오게 되었던 것이다.

God’s original desire was that the Christian empire unite with monarchic papal Christianity to build the kingdom to which the Messiah would come. However, when the popes failed in their responsibilities, the monarchic Christianity over which they had all authority had to be dismantled. This has been the mission of democratic Christianity, just as the mission of political democracy has been to destroy the absolutist sovereignty of secular monarchy. Accordingly, after the Protestant Reformation, the way was open for people to freely seek God through their own reading of the Bible, without the mediation of the priesthood. People were no longer subjected to the authority of others in their religious life, but could freely seek their own path of faith.

이와 같이 종교면에 있어서도 신도들이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고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하여 신앙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왔다. 이리하여 기독교민주주의(基督敎民主主義)는 장차 메시아가 어떠한 형태로 재림(再臨)하신다 하더라도 그를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는 기독교적인 사회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Democratic Christianity has thus created a social environment which allows all people to seek freely for Christ at his return, regardless of the manner in which he may come.

한편 경제사(經濟史)의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그 발전법칙에 의하여 제국주의(帝國主義)를 깨뜨리고 민주주의적인 경제사회(經濟社會)를 이룩하기 위하여 사회주의(社會主義)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지 획득을 위한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는 제국주의의 식민정책(植民政策)을 타파하기 위한 국가적 민주주의가 대두하여 열강(列强)들은 식민정책을 포기하고 약소국가(弱小國家)들을 해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경제시대는 제국주의의 붕괴를 전기로 하여 사회주의적인 경제시대에로 전이(轉移)하게 되는 것이다.

Similarly, with the progress of economic history, socialist ideals arose which undermined imperialism and fostered a democratic form of economy. Although some historians have regarded World War I as a war fought by imperialist nations over colonies, in fact, soon after its conclusion the democratic spirit rose to prominence and began to undermine colonialist policy. At the end of World War II, the great powers began to divest themselves of their colonies and liberate the nations under their control. Upon the fall of imperialism, capitalism began to evolve into a form of economy which would foster equal and common prosperity.

공산주의사회(共産主義社會)를 지향하는 사탄편의 세계에서 이 사회주의를 부르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방향과 내용은 전혀 다르나 사회주의적인 경제체제에로 나아가려는 하늘편의 노정을 사탄편에서 앞질러 먼저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It is only natural for the satanic realm, which reached its apogee in communism, to promote socialism. This is because Satan always attempts to realize, in advance of God, a defective imitation of the divine plan. God’s plan is to develop a socialistic economy, although with a form and content utterly different from the state socialism that communism actually established.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으로 보면, 인간에게 부여된 창조본연(創造本然)의 가치에 있어서는 그들 사이에 서로 어떠한 차이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마치 우리 인간의 부모가 그 자식을 대하듯이, 누구에게나 균등한 환경과 평등한 생활조건을 주시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生産)과 분배(分配)와 소비(消費)는 마치 인체에 있어서의 위장(胃腸)과 심장(心臟)과 폐장(肺臟)과 같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므로, 생산과잉(生産過剩)에 의한 판로경쟁이나 편파적인 분배로 인하여 전체적인 생활목적에 지장을 가져오는 축적이나 소비가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평하고도 과부족(過不足) 없는 분배와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하며, 마치 인체에 있어서의 간장(肝臟)과 같이 기능 전체의 원활한 활동을 위한 적의(適宜)한 저축(貯蓄)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According to God’s ideal of creation, God confers upon each individual the same original value. Just as parents love all their children equally, God desires to provide pleasant environments and living conditions equally to all His children. Moreover, in an ideal society,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should have the same organic relationship as exists between the functions of digestion, circulation and metabolism in the human body. Thus, there should not be destructive competition due to over-production, nor unfair distribution leading to excessive accumulation and consumption, which are contrary to the purpose of the public good. There should be sufficient production of necessary and useful goods, fair and efficient distribution of these goods, and reasonable consumption which is in harmony with the purpose of the whole. Just as the liver provides a reserve of nutrients for the human body, adequate reserves of capital should be maintained to ensure smooth operation of the entire economy.

인간은 이러한 이상(理想)으로써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이상을 복귀할 수 있는 섭리역사(攝理歷史)의 종말기에 이르러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찾아 인간의 본성을 더듬어 나아가게 되면, 결국 누구나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생활체제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의(民意)가 이러한 것을 요구하게 되면 민의에 의한 정치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최후에 가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사회주의사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Because human beings are created to live in an ideal society, they will inevitably pursue a socialistic ideal as they strive for freedom and democracy and further search into their original nature. This is particularly true at the consummation of providential history, when this ideal can actually be realized. As this natural desire springs forth from within, politics in democracy, which is shaped by the will of the people, will also move in that direction. Eventually, a socialistic society embodying God’s ideal will be established.

고대 기독교사회(古代基督敎社會)에서도 우리는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찾아볼 수 있고,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사상도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것이었으며, 한편 또 영국의 산업혁명기(産業革命期)에 일어났던 오웬의 인도주의(人道主義)에 입각한 사상도 그러했으며, 또는 19세기로 들어오면서 영국의 킹슬리의 기독교사상에 의하여 가톨릭사회주의와 프로테스탄트사회주의 등이 나오게 되었던 것은 모두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지향하는 인간 본성의 자연적인 발로에서 일어났던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arly Christians lived according to this ideal in some respects by sharing all their goods in common (Acts 4:32-35). Thomas More’s Utopia, written in sixteenth-century England, and Robert Owen’s humanistic socialism during the Industrial Revolution in England each expressed a vision of the socialist ideal. Catholic and Protestant socialist movements have also shared this vision, one example being Charles Kingsley’s advocacy of Christian Socialism in England of the mid-nineteenth century. Their inclination toward socialism originated from the natural impulse of the original mind as it pursues the ideal of creation.

Democracy and Socialism

7. 공생공영공의주의와 공산주의

7.2.7 The Ideals of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versus Communism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은 사탄의 침범으로 말미암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던 인간의 창조본성(創造本性)을 계발하여 나아가므로, 인간은 이와 같은 창조본성의 욕구에 의하여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의 세계를 동경하고 그것을 찾아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편의 사회주의사회(社會主義社會)를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은 마침내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共義主義)를 부르짖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이루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 세계가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중심한 지상천국(地上天國)인 것이다.

The merit of the age in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has furthered the development of man’s original nature, which had not been manifested due to Satan’s grip on human life. Responding to the promptings of their inmost hearts, people everywhere have ardently aspired to the world of God’s ideal where the purpose of creation is fulfilled. In seeking for a socialistic society on Heaven’s side, their original mind has drawn them to the ideals of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The world in which these ideals will finally be realized is none other than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under the leadership of the returning Christ.

사탄은 하나님의 섭리를 앞질러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므로, 사탄편에서는 먼저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입각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를 부르짖어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발전관(歷史發展觀)에 입각하여 인류역사는 원시공산사회(原始共産社會)에서 다시 공산주의사회에로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원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

Since Satan mimics God’s providence in advance, the satanic side has advocated “scientific socialism” based on the theories of dialectical and historical materialism and has built the communist world. The theory of historical materialism asserts that human history began as a primitive collective society and will be consummated with the creation of an ideal communist society.

The Ideals of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versus Communism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지상천국(地上天國)의 실현을 약속하셨던 것이므로, 인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먼저 맺은 사탄이 타락인간을 중심하고 원리형(原理型)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를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복귀하시려는 지상천국을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놓은 원리형의 비원리세계가 바로 공산세계인 것이다.

The evident errors of this theory are due to the fact that it does not take into account the fundamental cause of historical progress. After creating human beings, God promised to realize the Kingdom of Heaven. However, because Satan had formed kinship relations with people before God did, God had to permit him to construct an unprincipled world through fallen people in a distorted imitation of the ideal society which God intends to accomplish on the earth. The communist world is this unprincipled world built by Satan.

마치 군주주의(君主主義)의 정치적인 독재를 막고 그 주권을 인민의 것으로 돌리려는 데서 민주주의(民主主義)가 나오게 된 것과 같이, 국가의 재산이 어느 특수한 개인이나 계급에 독점을 당하는 제국주의적(帝國主義的)인 경제체제를 타파하고 인민들이 그것을 균등하게 향유(享有)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사회주의(社會主義)를 거쳐서 하늘편에서는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共義主義)를 지향하고, 사탄편에서는 그것을 앞질러 먼저 공산주의(共産主義)를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경제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나오게 되는 것이다.

Democracies of two types arose with the purpose of dismantling absolute monarchy and transferring sovereignty to the people. Likewise, movements to further the ideals of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arose on God’s side, while communism was born on Satan’s side, in order to demolish economic systems which concentrated a society’s wealth in the hands of a privileged few. Each of these movements has sought to establish a system which would distribute wealth more equally among people. The aspirations to socialism on both sides have arisen in their providential striving to realize a society based on a truly democratic economic system.

우리는 위에서 서구(西歐)를 중심하고 이루어진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가 종교사와 정치사와 경제사의 3면으로 분립되어 각각 공식적인 노정을 통하여 발전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하여서 서로 동일한 역사노정에서 융합되는 섭리역사로 종결을 지어, 재림이상(再臨理想)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인가?

It was explained earlier that in the history of Western Europe as steered by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three aspects of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have progressed separately through their own paths of development. How can they come together at one point at the consummation of providential history to lay the found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Christ?

이미 위에서 우리는 인간의 영육(靈肉) 양면의 무지(無知)를 타개하기 위한 종교와 과학이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발전이 3분되어 발전하여 왔다는 것을 밝혔다. 따라서 이렇게 3부면(三部面)으로 발전해 온 역사가 하나의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초점으로 귀결되기 위하여서는, 종교와 과학을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진리(眞理)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에 입각한 종교에 의하여 온 인류가 하나님의 심정(心情)에 귀일(歸一)함으로써 하나의 이념을 중심한 경제의 기대 위에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실현하는 정치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생공영공의주의에 입각한 메시아왕국인 것이다.

A fundamental cause of this separate development was the divergence of religion and science, which are endeavors to overcome humanity’s spiritual and physical ignorance. For the paths of religion, politics and economy to converge and realize God’s ideal, a new expression of truth must emerge which can completely integrate religion and science. The religion founded upon this truth will lead all of humanity to become one with God in heart. Such people will build an economy in accordance with the divine ideal. These will be the foundations for a new political order which can realize the ideal of creation. This will be the messianic kingdom built on the principles of interdependence, mutual prosperity and universally shared values.

New expression of truth

복귀섭리로 본 역사발전 표시도

복귀섭리로 본 역사발전 표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