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
모세와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
-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에 관한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성서를 보아도 그 숨은 뜻을 알 길이 없었다.
- 성서에서는 하나의 선지자(先知者)의 생애에 대한 기록도 그것의 실상은 단순히 그의 역사에만 멎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선지자의 생애를 통하여 타락인간(墮落人間)이 가야 할 길을 보여 준 것이다.
- 여기에서는 특히 하나님이 야곱과 모세를 세워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걷게 하시어, 그것으로써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걸으실 섭리노정을 어떻게 미리 보여 주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 야곱에 의한 그 상징노정(象徵路程)을.
- 또 그것을 실 체적(實體的)으로 걸어야 할 예수님의 노정에 대한.
- 형상적(形象的)으로 걸어야 할 모세노정이나.
- 전형노정(典型路程)이었다.
- 그리고 이 노정은 이스라엘 민족과 전인류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탄을 굴복시키면서 걸어가야 할 본보기노정이기도 하다.
-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인간 자신이.
- 그의 책임분담(責任分擔)으로서 사탄을 자연굴복(自然屈伏)시키고 주관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 예수님이 인간 조상으로서 메시아의 사명을 맡고 오신 것도, 사탄 굴복의 최종적인 노정을 개척하여 모든 성도(聖徒)들로 하여금 그 노정을 따라가게 함으로써 사탄을 자연굴복케 하시기 위함이었다.
- 그런데 하나님에게도 순종굴복(順從屈伏)하지 않았던 사탄이 인간 조상으로 오시는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순종굴복할 리가 없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인 책임을 지시고 야곱을 세우심으로써, 그를 통하여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노정을 본보기로 보여 주셨던 것이다.
- 하나님은 이와 같이 야곱을 세우시어 사탄을 굴복시키는 본보기노정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모세는 이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그 형상노정(形象路程)을 걸음으로써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 그리고 또 예수님은 야곱노정을 밟아 온 모세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그 실체노정(實體路程)을 걸음으로써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었으며.
- 아브라함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수로 말미암은 그 후손의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 기간이 끝난 다음.
-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福地)로 복귀하는 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모세였다.
- 모세 이전의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던 다른 인물들, 즉 아담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에 비하여 모세의 다른 점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 그것은 첫째로, 모세는 하나님 대신의 신(神)으로 세워졌었다는 것이다.
- 둘째로, 모세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의자(模擬者)였었다.
-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아벨이나 노아나 아브라함과 같이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하지 않아도.
-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40일 사탄 분립기대’만을 세우면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 복귀기대섭리시대(復歸基臺攝理時代)에 있어서는 ‘가정적인 실체기대’를 세우는 섭리를 하셨었다.
- 그러나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에 들어와서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세우는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 이렇게 하여 모세가 아벨의 위치를 확립한 후, 이스라엘 민족이 가인의 입장에서 모세를 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면.
- 거기에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 모세가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고.
-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면.
- 그것이 바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가 되는 것이다.
- 모세가 사탄세계인 애급(埃及)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로써 인도하여.
- 홍해(紅海)를 건너고.
- 광야를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노정은.
- 장차 예수님이 이 죄악세계(罪 惡世界)에서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을.
- 이적과 기사로 인도하여 이 죄악세계의 고해(苦海)를 건너고.
- 생명의 물이 마른 사막을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창조본연의 에덴으로 복귀케 될 그 노정을 미리 보여 준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한편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된 것과 같이,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 여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領導)하여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이 되기 위하여는.
- 민족적 탕감기간인 400년을 다시 개인적으로 탕감함으로써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 사탄세계의 중심인 바로궁중에 들어가 40년을 지내야 했던 것이다.
- 이와 같이 모세는 바로궁중생활 40년으로써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였던 것이다.
- 이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부모의 입장인 동시에 자녀로서의 아벨의 입장에 있었던 모세에게 믿음으로 순종굴복(順從屈伏)하여.
-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음으로써 선(善)을 번식하게 되었더라면, 그때에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 이스라엘 민족이 이와 같이 모세를 따라 애급을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로 돌아가는 기간은 바로 그들이 이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 되는 것이었다.
- 하나님은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이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 모세는 자기의 동포가 애급인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불타는 동포애(同胞愛)를 이기지 못하여 그 애급인을 쳐죽였던 것이나(출 2 : 12).
- 도리어 그를 오해하고 나쁘게 발설하였으므로.
- 바로는 이 소문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출 2 : 15). 이에 모세는 할수없이 바로의 눈을 피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 미디안광야로 도망하게 되었으므로 그 ‘.
- 실체기대’는 이루지 못하고 말았으며,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은.
-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不信)으로 말미암아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모세가 그의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웠던 바로궁중 40년 기간은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 그러므로 모세가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을 출발하기 위하여는 사탄 침범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바로궁중생활 40년 기간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기간을 다시 찾아 세워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 모세는 미디안광야 40년으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새로이 세웠기 때문에.
-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할 수 있게 되었었다.
-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때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3대 기적(三大奇蹟)과 10재앙(十災殃)의 권능을 주시어 애급인을 치게 하심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모세를 믿고 따르는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드디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었다.
- 이 광야노정의 전기간을 두고 순종과 굴복으로 모세를 믿고 따라가지 않고서는 ‘.
-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하여 광야노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 즉 제1차 노정에 있어서는 그들이 모세를 믿고 따르기만 하였더라면, 블레셋의 곧은 길로 인도되어.
- 야곱의 하란노정 기간 수인 21일 간이면 가나안 복지(福地)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 그런데 제2차 노정에 있어서는 출애굽기 13장 17절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 만일 그들이 블레셋 땅의 곧은 길로 인도되면 전쟁을 보고 두려워함으로써 제1차 노정 때와 같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애급 땅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시어.
- 하나님은 그들을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홍해(紅海)를 건너고 시내광야를 돌아 21개월 걸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을 취하게 하셨던 것이다.
- 이와 마찬가지로 모세에게도 그가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서는 바로를 속이고 자유행동을 취하여 사탄을 분립하는 3일 기간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장정(壯丁) 60만 명이 라암셋을 출발한 것은 정월 15일이었다(출 12 : 6∼ 37, 민 33 : 3).
-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팡이로 홍해(紅海)를 갈라 세워 이것을 육지와 같이 건넜으나.
- 그들의 뒤를 추격해 오던 애급의 병거는 다 수장(水葬)되어 버리고 말았었다(출 14 : 21∼28).
-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너서 애급(埃及)을 떠난 후 제2월 15일에 신광야에 이르렀다(출 16 : 1). 이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이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만나와 메추리를 내려 먹이셨으니(출 16 : 13∼ 35).
- 이스라엘 민족이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 장막(帳幕)을 쳤을 때.
-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시어 호렙산의 반석(磐石)을 쳐서 물을 내어.
- 그들에게 먹이셨다(출 17 : 6).
- 이스라엘 민족은 아말렉과 싸워서 승리한 후 제3월 초에 시내광야에 이르렀다(출 19 : 1). 여기에서 모세는 장로(長老) 70인을 거느리고 시내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뵈었다(출 24 : 9∼10).
- 모세는 시내산에서 금식을 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법궤와 성막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출 25∼31장).
- 그리고 40일 간의 금식이 끝났을 때 모세는 십계명을 기록한 두 석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것이다(출 31 : 18).
- 모세가 이 석판(石板)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들은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埃及)에서 인도한 신(神)이라고 섬기고 있었다(출 32 : 4).
- 이것을 본 모세는 대로(大怒)하여 손에 들었던 석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출 32 : 19).
- 이 말씀을 받은 모세가 다시 40주야를 금식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의 석판에 다시 십계명을 기록하여 주셨다(출 34 : 28).
- 모세가 이 석판을 가지고 다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타났을 때.
- 비로소 그들은 모세를 받들게 되어 법궤를 만들고 성막을 건축하였던 것이다(출 35∼40장).
- 따라서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은 복귀한 아담과 해와의 상징체로서 장차 말씀의 실체로 오실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성막은 예수님의 상징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 이런 점으로 보아 법궤는 크게는 천주(天宙)의, 작게는 성막(聖幕)의 축소체였던 것이다.
- 그러면 하나님이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를 주신 목적은 어디 있는가?
-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불신으로 흘러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최후에는 모세마저 불신의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는 터이었다.
- 여기에서 하나님은 비록 사람은 변하여도 변할 수 없는 그 어떠한 신앙의 대상을 세워 놓으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세우고 나아가야 할 ‘성막을 위한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게 되어.
-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우고, 성막을 중심한 모세에게 순종굴복하면 그들은 또다시 제3차의 ‘성막을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이것을 위한 조건으로서 주신 것이 40일 정탐기간(偵探期間)이었던 것이다.
- 그러나 정탐에서 돌아온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신적인 보고를 하였다.
-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원망하고 통곡하면서.
- 이와 같이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도 복귀할 수 없게 되어.
- 성막을 위한 기대’가 3차나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墮落性)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은 세울 수 없게 되었다.
- 따라서 제2차로 세우려던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하지 못하게 되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이 실패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 모세가 이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웠던 미디안광야 40년 기간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고 말았다.
-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偵探) 40일 기간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함으로써 날을 해로 환산하여 광야를 표류하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오는 40년 기간은.
- 모세에게 있어서는.
- 제2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제3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한 기간이었다.
-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게 되었고.
-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민족적인 실체헌제(實體獻祭)를 위한 아벨의 입장도 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
- 따라서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가데스바네아를 출발하는 것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을 받들고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그때에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짐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 광야 40년 기간을 뜻 앞에 세우지 못하고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을(민 20 : 4∼5)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회중(會衆) 앞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여 가지고 그들에게 마시게 하셨다(민 20 : 8).
- 그러나 모세는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는 백성을 보자 격분하여 치밀어 오르는 혈기(血氣)를 누르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 모세는 이와 같이 한 번 쳐야 할 반석(磐石)을 두 번 침으로써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도 이루지 못하게 되어.
- 드디어 약속받은 가나안 복지(福地)를 눈앞에 바라보면서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민 20 : 24, 민 27 : 12∼14).
- 그러므로 하나님은.
- 여호수아는 다시 두 사람의 정탐을 여리고성으로 보냈다(수 2 : 1).
- 그리하여 여리고성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두 정탐인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수 2 : 24)라고 믿음으로 보고하였던 것이다.
- 이때에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두 그 정탐인(偵探人)의 말을 믿었으므로.
-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그들이 3일노정을 마친 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표상된 예수님과 성신(聖神)의 상징적 실체인 법궤가 그들을 요단강까지 인도하였던 것이다(수 3 : 3, 수 3 : 8).
- 언덕에 넘치던 요단강의 흐름이 갈라져서(수 3 : 16), 따라온 이스라엘은 육지와 같이 강을 건너게 되었다(수 3 : 17).
- 길갈에 진을 쳤던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그 해 정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 굳게 닫힌 여리고의 성벽을 향해 진군을 하였다.
-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행군으로 하루에 한 번씩 6일이나 성(城)을 돌았어도 그 성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그들은 인내(忍耐)와 복종(服從)으로 사탄의 침범을 당한 6일의 창조기간(創造期間)을 탕감복귀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순종으로 6일을 찾아 세운 후, 제7일에 일곱 나팔을 부는 7인의 제사장(祭司長 )이 성벽을 일곱 번 돌면서 7회의 나팔소리를 끝내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향하여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호령하자 백성들이 이에 응하여 일제히 큰소리로 외치니 그 성이 곧 붕괴되었다(수 6장).
- 이리하여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적을 공격하게 된 여호수아는 벧호론 싸움에서의 19왕과 메롬 격전에서의 12왕을 합하여 모두 31왕을 멸하였으니(수 12 : 9∼24).
- 이렇게 되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됨으로써.
- 그때는 이미 타락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하고 애급왕국(埃及王國) 등의 굳건한 왕국을 건설하여 하늘편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는 세워졌을지라도 그 터전 위에 사탄에 대결할 수 있는 하늘편의 왕국이 건설되기까지는 메시아가 강림(降臨)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간 내적 이스라엘도 또다시 불신으로 흘러.
- 이 섭리는 다시 연장을 거듭하여 예수님 때까지 밀려 나왔던 것이다.
- 천사(天使)를 주관해야 할 아담(고전 6 : 3)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탄의 주관을 받아서.
-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그 자신이 사탄을 굴복시켜 천국을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적(象徵的)인 노정을 걸었고.
- 모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형상적(形象的)인 노정을 걸었으며.
- 예수님은 그 실체적(實體的)인 노정을 걸으셔야 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사탄을 굴복시켜 나아갔던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완수하셔야 했던 것이다.
- 신명기 18장 18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고 하신 말씀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先知者) 하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모세와 같은 노정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中心人物)은 세례 요한이었다.
-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 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세례 요한은.
-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石淸)을 먹으면서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하늘 대한 충효(忠孝)의 도를 세웠던 것이다.
- 세례 요한은 이와 같이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웠으므로.
-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 세례 요한은 모세와 같은 입장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있어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례 요한을 중심한 기사이적(奇事異蹟)을 보여 주시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던 것이다.
-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세운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를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요 1 : 19, 눅 3 : 15), 그들은 구약시대(舊約時代)를 청산하고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서도 그를 의심하는 데 이르렀고(마 11 : 3), 또 자기가 엘리야로 왔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부인하여(요 1 : 21).
-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는 입장에 서게까지 하였던 것이다.
- 이로써 세례 요한은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에.
-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이것도 모세 때와 같이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 따라서 세례 요한이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을 위하여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다.
- 그렇기 때문에 할수없이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함으로써.
-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禁食)을 하시면서 사탄을 분립하신 것은.
- 이와 같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 요한 대신으로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출발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 즉 첫째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셨으므로.
- 그때까지의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찾아 세우려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아담 이후 4천년 간의 종적인 역사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中心人物)들의 실수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모든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하시었다.
- 둘째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입장에 서게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3대 축복(三大祝福)을 이루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셨다.
- 그런데 예수님은 석판·성막·법궤의 3대 은사와 십계명의 실체이시기 때문에.
-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예수님 자신이 말씀과 기사 이적(奇事異蹟)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 이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세례 요한의 입장으로부터 메시아로 서게 되고.
- 온 인류는 그에게 접붙임을 받아(롬 11 : 17) 중생(重生)되어 원죄를 벗고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룸으로써.
-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여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게 되었을 것이었다.
- 특히 예수님을 판 제자 가룟 유다를 통하여 다시 예수님 앞에 대립하고 나섰던 것이다.
- 이와 같이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룰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섭리를 위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어.
-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이미 위에서 상세히 논급한 바와 같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대상은 메시아의 상징체인 성막(聖幕)이었다.
-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모두 불신으로 흘러갔을 때에도 이 성막만은 모세가 금식 40일 기간으로 세웠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서 있었고.
- 모세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그것은 모세가 세운 ‘믿음의 기대’ 위에 여호수아에 의한 정탐 40일 사탄 분립기간으로 조성되었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계속 그 뜻을 받들어 나온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 그의 제자들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었기 때문에.
- 그의 육신을 십자가(十字架)에 내주시어 죽음의 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의하여 그 육신을 사탄에게 내주신 후에는,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의 입장에서.
- 40일 부활기간(復活期間)으로 사탄 분립의 영적 기대를 세우심으로써.
-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노정 을 위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셨던 것이다.
- 그러나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 흩어졌던 제자들을 거두어 모으시고, 자신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영적인 실체가 되어.
- 제자들에게 기사(奇事)와 이적(異蹟)의 권능을 주심으로써(마 28 : 16∼18)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 이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로서 영적인 아벨의 입장에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 믿고 모시고 따라 ‘타락성을 벗기 위한 영적인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복귀하게 된 것이다.
- 가룟 유다 대신으로 맛디아를 택하여 12제자의 수를 채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숨을 바쳐 믿고 모시고 따름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조성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를 복귀하였다.
-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적인 메시아의 입장을 확립하고 성신(聖神)을 복귀하심으로써.
- 영적인 참부모가 되어 중생(重生)의 역사를 하시게 되었다.
- 기독교 신도들은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위에서 영적인 메시아로 서게 된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써.
- 영적 가나안 복귀만을 완성하게 되었다.
- 그리하여 영적 가나안 복귀의 혜택권 내에 있는 성도들의 육신은 십자가(十字架)에 의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의 육신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나 다름없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원죄(原罪)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롬 7 : 25), 성도들도 또한 예수 재림을 위한 사탄 재분립(再分立)의 노정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 재림주님은 초림(初臨) 때에 실체로써 이루시려던 지상천국을 그대로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 실체인간으로 지상에서 탄생하셔야 되는 것이다(후편 제6장 제2절 Ⅱ 참조).
- 초림(初臨) 때와 같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지는 않는다.
-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류의 참부모님을 세우시어(전편 제7장 제4절 Ⅰ 1)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루시려는 섭리는, 아담에서 예수님을 거치어 재림주님에 이르기까지 세번째인 재림 때에는 의당 그 섭리를 이루시게 되어 있으며, 더구나 후편 제4장 제7절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 이후 2천년 간의 영적 복귀섭리는 그를 위한 사회 조성을 위하여 민주주의시대(民主主義時代)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 예수님은 그 초림 때에는 유대교의 반역자(反逆者)로 몰려서 돌아가셨지만, 그가 재림하시는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설혹 그가 이단자(異端者)로 몰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죽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이와 같이 하나님과 혈통관계가 끊어진 타락인간을 복귀시켜 가지고, 하나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세우시려는 데 있는 것이다.
- 그러나 노아 때에 이르러, 그의 둘째 아들로서 아벨의 입장이었던 함은 그의 실수로 인하여 비록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노아가 충성을 다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종들의 종’(창 9 : 25)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간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이르러 그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선민(選民)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종의 입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니(레 25 : 55).
- 예수님이 오신 후,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세우신 그의 ‘믿음의 기대’ 위에 섰던 제자들은 비로소 구약시대의 종 된 입장에서 양자(養子)의 입장으로 복귀되었었다.
- 그러므로 예수님은 온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시기 위하여 재림(再臨)하셔야 한다.
- 재림 예수님은 ‘말씀’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 대’를 실체적으로 조성하시어.
- 그 기대 위에서 온 인류를 영육(靈肉) 아울러 접붙이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셔야 하는 것이다.
- 그는 재림하셔서도 그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가정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천주적인 것으로 복귀하시어.
- 그 기대 위에 천국을 이루는데까지 나아가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