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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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 개인의 사소한 일로부터 역사를 좌우하는 큰 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결국 하나같이 보다 행복해지려는 삶의 표현인 것이다.
-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될 때 오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 욕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 본의(本意)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다.
- 그것은 그 욕망이 선(善)보다도 악(惡)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불의(不義)를 맺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本心)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심은 이러한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 악을 지향하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러한 모순성을 내포한 운명적인 존재였다면 애당초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 따라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모순성은 후천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인간의 이러한 파멸상태를 일러 기독교에서는 타락(墮落)이라고 한다.
- 인간은 이와 같이 타락되어 자기 파멸에 이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 사심으로부터 오는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본심으로부터 일어나는 선의 욕망을 따라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것으로써 그 자체의 모순성을 제거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 바로 이 새 진리가 지금까지 민주주의세계에서 주창해 온 유심론(唯心論)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 유물론(唯物論)을 흡수함으로써 온 인류를 새 세계에로 옮겨 놓을 수 있어야 한다.
- 이와 같이 이 진리는 역사 이래의 모든 주의나 사상은 물론 모든 종교까지도 하나의 길로 완전히 통일시킬 수 있어야 한다.
- 따라서 새 진리는 타락인간을 그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이 땅 위에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셨으니,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文鮮明 先生)이시다.
- 내적인 무지란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영적인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생(生)의 목적은 무엇이며.
- 사후(死後)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내세(來世)와 하나님에 대한 존재 여부.
- 또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 그리고 외적인 무지란 인간의 육신을 비롯한 자연계에 대한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 모든 물질세계의 근본은 무엇이며, 그 모든 현상은 각각 어떠한 법칙에 의하여 일어나는가 하는 것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 인간은 유사이래(有史以來) 오늘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무지(無知)에서 지(知)에로 극복하기 위하여 진리를 찾아 나왔다.
- 그리하여 내적인 무지에서 내적인 지에로 극복하기 위하여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종교(宗敎)요.
- 외적인 무지에서 외적인 지에로 극복하기 위하여 외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과학(科學)이다.
-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종교와 과학은 인생의 양면의 무지에서 양면의 지에로 극복하기 위하여 양면의 진리를 찾아 나온 방편임을 알 수 있다.
- 그러므로 인간이 이 무지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가지고 본심의 욕망이 지향하는 선한 방향으로만 나아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는, 종교와 과학이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 내외 양면의 진리가 상통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인생의 실제에 있어서 인간이 밟아 온 과정을 두 가지로 대별(大別)하여 본다면.
- 첫째는 물질로 된 이 결과의 세계에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길이다.
- 이러한 길을 지상(至上)으로 생각하고 걸어온 사람들은, 극도로 발달된 과학 앞에 굴복하여 과학의 만능과 물질적인 행복을 자랑하고 있다.
- 그러나 인간은 과연 이러한 육신을 중심한 외적인 조건만으로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 과학의 발달이 아무리 안락한 사회환경을 이루고 그 속에서 아무리 부귀(富貴)와 영화(榮華)를 누린다 한들 그것으로써 어찌 속사람의 정신적인 욕구까지 근본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 사람에 있어서 마음이 있음으로써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이, 기쁨에 있어서도 마음의 기쁨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몸의 기쁨도 온전한 것이 되는 것이다.
- 지금까지의 과학의 연구 대상은 내적인 원인의 세계가 아니고 외적인 결과의 세계였으며, 본질(本質)의 세계가 아니고 현상(現象)의 세계였다.
- 그리하여 그 원인적인 심령세계(心靈世界)에 대한 논리, 즉 내적 진리가 없이는 결과적인 실체세계(實體世界)에 대한 과학, 즉 외적 진리도 그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결론을 얻기에 이르렀다.
- 인간이 밟아 온 과정의 그 둘째는 결과적인 현상세계(現象世界)를 초월하여 원인적인 본질세계(本質世界)에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 그런데 이 길을 밟아 온 이제까지의 철학이나 종교가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 그리하여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철인(哲人)들과 성현(聖賢)들은 인생의 갈 길을 열어 주려고 각각 당시대에 있어서 선구적인 개척의 길로 나섰던 것이었으나.
- 어느 철인이 우리의 고민을 풀어 주었으며, 어느 성현이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여 우리의 갈 길을 뚜렷이 보여 주었던가?
- 다만 피부의 빛깔이 다름을 인하여 그 형제들과 자리를 같이할 수 없게 된 현실은.
-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실천력을 잃어버리고 회칠한 무덤같이 형식화해 버린 현하(現下) 기독교의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사회악(社會惡)이 또 있다. 음란(淫亂)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교리는 이것을 죄 중의 가장 큰 죄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오늘의 기독교 사회가 현세인들이 몰려가는 이 윤락(淪落)의 길을 막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눈물겨운 실정인가!
- 이것은 바로 종래의 기독교가 현대 인류에 대한 구원섭리(救援攝理)에 있어서 얼마나 무능한 입장에 있는가 하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그러면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오던 종교인(宗敎人)들이 오늘에 이르러 그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마치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합해야만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과 같이.
- 본질과 현상의 두 세계도 완전히 합치되어야만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진정한 육신의 행복이 없이 그의 심령적(心靈的)인 기쁨도 있을 수 없다.
- 심령적인 기쁨을 위하여 육신의 행복을 멸시하기에 몸부림쳐 왔다.
- 그러나 끊어 버리려야 끊어 버릴 수 없는 현실과, 떼어 버리려야 떼어 버릴 수 없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육신적인 행복욕(幸福慾)은 집요하게 도인(道人)들을 붙들어 오뇌(懊惱)의 골짜기로 몰아가고 있다.
- 이 모순성을 내포한 도인생활의 파멸, 이것이 바로 오늘의 종교인들의 생태인 것이다. 이와 같이 자가당착(自家撞着)을 타개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 현대의 종교가 무위화(無爲化)한 주요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 즉 과학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지성(知性)이 최고도로 계발(啓發)된 나머지 현대인은 모든 사물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을 필요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종교의 교리에는 그의 과학적인 해명이 전적으로 결여(缺如)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종교(宗敎)의 궁극적인 목적은 먼저 마음으로 믿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다.
- 그런데 그 믿음은 앎이 없이는 생길 수 없다.
- 그리고 안다는 것은 곧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 인간은 논리적이며 실증적인 것 즉 과학적인 것이 아니면 인식할 수 없으며.
- 이와 같이 내적인 진리에도 논증적인 해명이 필요하게 되어, 종교는 오랜 역사의 기간을 통하여 그 자체가 과학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 시대를 추구해 나왔던 것이다.
- 이와 같이 종교와 과학은 인생의 양면의 무지(無知)를 타개하기 위한 사명을 각각 분담하고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 과정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상충하여 서로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은 양상(樣相)을 보여 왔으나.
- 인간이 그 양면의 무지를 완전히 극복하여 본심이 요구하는 선(善)의 목적을 완전히 이루자면.
- 어느 때든지 과학을 찾아 나온 종교와 종교를 찾아 나온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주는 새 진리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 새 진리(眞理)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은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 신도들에게는 못마땅하게 생각될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서가 이미 그것만으로써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물론 진리는 유일(唯一)하고 영원불변(永遠不變)하며 절대적(絶對的)이다.
- 그러나 경서란 진리 자체가 아니고 진리를 가르쳐 주는 하나의 교과서로서.
-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로 그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높아져 온 각 시대의 인간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 그 진리를 가르쳐 주는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와 방법에 있어서는 시대를 따라서 달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성격을 띠고 있는 교과서마저 절대시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 이와 같이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주실 것은 성서(聖書) 가운데에도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전편 제3장 제5절 참조).
- 그러면 그 새 진리(眞理)는 어떠한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인가?
- 모든 인간들을 내외 양면의 무지(無知)에서 내외 양면의 지(知)에로 완전히 극복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 선악(善惡) 양면의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모순성과 위에서 이미 논한 바 종교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도(道)의 생활의 모순성을 극복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을 비롯하여.
- 하나님이 자신을 반역하는 타락인간을 버리지 못하시고 유구(悠久)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구원(救援)하시려고 애써 오신 애달픈 심정을.
- 바로 이 새 진리가 지금까지 민주주의세계에서 주창해 온 유심론(唯心論)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 유물론(唯物論)을 흡수함으로써 온 인류를 새 세계에로 옮겨 놓을 수 있어야 한다.
- 이와 같이 이 진리는 역사 이래의 모든 주의나 사상은 물론 모든 종교까지도 하나의 길로 완전히 통일시킬 수 있어야 한다.
- 그런데 진리의 목적이 선을 찾아 이루려는 데 있고, 선의 본체가 바로 하나님이시므로.
- 그 진리에 의하여 도달된 이 세계는 바로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서로 형제애(兄弟愛)에 얽혀 사는 세계인 것이다.
-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상천국을 이루시려는 데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 따라서 새 진리는 타락인간을 그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 하나님이 인간을 비롯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가르쳐 줌으로써, 복귀과정(復歸過程)에 있는 타락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야 된다.
- 그리고 인간은 과연 성서(聖書)가 말하는 문자 그대로 선악과(善惡果)라는 과실을 따먹고 타락(墮落)되었는가?
- 그렇지 않다면 타락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 또 완전완미(完全完美)하신 하나님이 어찌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는 인간을 창조(創造)하셨고.
-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타락되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으며.
-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왜 그 창조의 권능을 가지고 일시에 죄악인간을 구원(救援)하지 못하시는가 하는 것 등.
- 그러므로 이 새 진리는 이러한 근본문제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명백하게 풀어 줄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므로 인류의 죄악역사가 어떻게 출발하여 어떠한 공식적인 섭리의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모양으로 종결되어 어떠한 세계에로 들어갈 것인가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긴절(緊切)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그런데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여 나아가는 섭리의 역사임이 사실일진대, 그와 같이 모든 법도(法度)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이처럼 오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기간을 두시고, 아무 계획도 없이 무질서하게 이 역사를 섭리해 나오셨을 리는 없는 것이다.
- 이러한 문제들이 명확하게 풀리게 될 때 우리는 역사를 계획하시고 이끄시는 어떠한 주체, 곧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더욱 부인할 수 없게 될 것이며.
- 따라서 이 역사상에 나타난 모든 사실들이 바로 타락인간(墮落人間)을 구원하여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心情)의 반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또 새 진리는 오늘날 문화권(文化圈) 형성의 세계적인 사명을 띠고 있는 기독교의 많은 난해(難解)한 문제들을 명백히 풀어 줄 수 있어야 한다.
- 뿐만 아니라 이에 못지않게 난해한 문제로 되어 있는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하여도 근본적인 해명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 그리고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구원(救援)은 어찌하여 그 독생자(獨生子)로 하여금 십자가(十字架)에 달려 피를 흘리게 하셔서만 가능하였던가 하는 것도 응당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 십자가 대속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뿐만 아니라 이 진리는 예수님이 왜 재림(再臨)하셔야 하며, 또그의 재림은 언제 어디로 어떻게 하실 것인가 하는 것과, 그때에 타락인간의 부활(復活)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
- 상징과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성서의 허다한 난문제들을 이미 예수님 자신이 직접 말씀하신 바와 같이 비사(比辭)로써가 아니고 누구나 공통하게 알 수 있도록 밝히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한다.
- 이러한 진리로써만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는 성구(聖句)를 저마다 각양각이하게 해석함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교파 분열의 필연성을 지양(止揚)하고, 그것들을 통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이와 같이 인간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이 최종적인 진리는 어떠한 경서(經書)나 문헌에 의한 종합적인 연구의 결과로나.
- 혹은 어떠한 인간의 두뇌에서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 이 진리는 하나님의 계시(啓示)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
-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이 땅 위에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셨으니,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文鮮明 先生)이시다.
- 선생은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영계(靈界)와 육계(肉界)의 억만 사탄과 싸워 승리하신 것이다.
- 은밀히 하나님과 영교(靈交)하는 가운데서.
- 그리하여 예수님을 비롯한 낙원(樂園)의 수많은 성현(聖賢)들과 자유로이 접촉하시며.
- 모든 천륜(天倫)의 비밀을 밝혀 내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