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기대섭리시대
복귀기대섭리시대
- 그러므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 타락인간을 복귀(復歸)하시려는 섭리는 일찍이 아담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아담가정이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實體基臺)’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우고.
- 그로써 이루어지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복귀섭리(復歸攝理)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 첫째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한 어떠한 조건물(條件物)이 있어야 한다.
- 둘째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 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중심인물(中 心人物)이 있어야 한다.
- 아담가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했던 중심인물은 물론 아담 자신이었다.
- 그러나 성서(聖書)의 기록을 보면, 아담이 제물을 바치지 못하고 가인과 아벨로부터 제물을 바쳤던 것이니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가?
- 선 악 두 성품의 모체가 된 아담을 선성품적(善性稟的)인 존재와 악성품적(惡性 稟的)인 존재의 둘로 갈라 세우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탄을 각각 대할 수 있는, 즉 한 주인 상대의 원리적인 입장에 세워 놓고 제각기 제물(祭物)을 바치게 하셨던 것이다.
- 악의 표시체로서 사탄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고.
- 선의 표시체로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던 것이다.
- 아벨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방법으로 헌제를 드렸다.
- 그리하여 아담가정이 세워야 할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 아담가정에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세워지기 위하여는, 가인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이 그의 헌제(獻祭)를 기뻐 받으실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 타락인간이 그 타락성을 벗기 위하여는 탕감복귀원리(蕩減復歸原理)에 의하여 아래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 타락성본성(墮落性本性)을 가지게 되었던 것과 반대의 경로를 취하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 천사장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던 아담을 사랑하지 못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
-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타락성’이 생겼다.
- 그리고 천사장(天使長)이 하나님에게 더 가까웠던 아담을 중보(仲保)로 세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아담의 위치를 취하려다가 타락되었기 때문에 ‘.
- 자기 위치를 떠나는 타락성’이 생겼다.
- 그리고 천사장은 자기를 주관해야 할 인간, 즉 해와와 아담을 역주관(逆主管)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
- 주관성을 전도(顚倒)하는 타락성’이 생겼다.
-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천사장은 따먹어도 좋다는 불의(不義)의 뜻을 해와에게 전했고, 또 해와는 그것을 아담에게 전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
- 죄를 번식하는 타락성’이 생겼다.
- 이러한 타락성들을 벗기 위하여.
-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을 사랑하여서 하나님의 입장과 같은 입장을 취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을 중보로 세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에게 순종굴복(順從屈伏)하여 그의 주관을 받는 입장에 섬으로써.
-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자기보다도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서 있는 아벨의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여 아벨로부터 선의 뜻을 전해 받음으로써.
- 만일 아담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웠더라면 그들은 이미 조성된 ‘믿음의 기대’ 위에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워.
-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천사장(天使長)이 인간을 타락케 하였던 타락성본성(墮落性本性)을 반복하게 되어.
- 아담가정이 세워야 했던 ‘실체기대’는 세워지지 않았다.
- 따라서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그리고 헌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믿음의 기대’는 ‘상징헌제(象徵獻祭)’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복귀되고, ‘실체기대’는 ‘실체헌제(實體獻祭)’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 그러므로 만물로써 ‘상징헌제(象徵獻祭)’를 드리는 첫째 목적은 하나님의 상징적 실체대상인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상징헌제’를 드리는 둘째의 목적은 실체 인간을 하나님 앞에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 ‘실체헌제(實體獻祭)’는 실체 인간을 복귀하기 위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 건’을 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가인적인 존재가 아벨적인 존재를 실체로 헌제하여 자녀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게 되면.
- 그것이 바로 아래에 해명되어 있는 바와 같이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으로도 세워지게 되기 때문에 ‘실체헌제’는.
- 그런데 아벨이 뜻맞는 헌제를 함으로써 아담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조건과 ‘실체헌제’를 드리기 위한 중심인물로서의 아벨의 입장은 세워졌었다.
-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 아서 그들은 천사장(天使長)이 해와를 타락시킨 것과 같은 입장에 다시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됨으로써 ‘실체헌제’에 실패하여 ‘.
- 실체기대’를 세우지 못하게 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실패는 결과적으로, 첫째 뜻 성사(成事)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
- 과 인간책임분담(人間責任分擔)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어떠하셨던가 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 원래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반드시 하나님의 책임분담과 인간의 책임분담이 합하여서만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가인이 아벨을 통하여 헌제(獻祭)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분담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헌제해야 된다는 것을 교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 둘째,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나 그 후 하나님이 아벨 대신 셋을 세워 새로운 섭리를 하신 것으로써.
-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인 것이고.
- 인간에 대한 그의 예정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 셋째, 가인과 아벨의 헌제로써 타락인간은 항상 아벨적인 존재를 찾아.
- 그에게 순종굴복해야만 하늘이 요구하는 뜻을 자기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루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그러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변할 수 없는 것으로서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 하나님은 아벨이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심정(心情)의 터전 위에서 그의 대신으로 셋을 세우셨다(창 4 : 25).
- 그리하여 그 후손에서 노아의 가정을 택하시사 아담가정의 대신으로 세우시어 새로운 복귀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 창세기 6장 13절에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홍수심판(洪水審判)을 하신 것을 보면.
- 그때도 말세(末世)였던 것이 분명하다.
-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中心人物)은 노아였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담으로 이루시려다 못 이루신 뜻을 대신 이루시기 위하여 아담으로부터 1600년을 지나 10대 만에 노아를 부르셨다.
- 노아는 제2 인간 조상이 된다.
- 120년 간이나 갖은 조롱과 비소를 받아 가며 하나님의 명령에만 절대 순종하여 평지도 아닌 산꼭대기에 방주(方舟)를 지었다.
- 노아는 이미 아벨이 ‘상징헌제(象徵獻祭)’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하늘을 대하여 충성(忠誠)했던 그 심정(心情)의 터 위에서 부름을 받았고.
- 아벨 대신 택함을 받은 셋(창 4 : 25)의 후손이었으며.
- 뿐만 아니라 그의 위인(爲人)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義人)이었기 때문에(창 6 : 9).
- 그는 방주를 지어 그것으로써 직접 하나님에게 ‘상징헌제’를 드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노아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條件物)은 방주(方舟)였다.
-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내주었던 천주(天宙)를 탕감복귀하기 위한 조건을 세워야 한다.
- 이와 같이 방주가 완성된 후에 하나님께서 40일 간의 홍수심판(洪水審判)을 하셨는데.
- 하나님만이 대하시어 섭리하실 수 있는 대상을 세우시기 위하여 사탄의 상대가 되어 있는 전인류를 멸하시는 홍수심판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 이러한 가운데서 노아가정은 심판 40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인 방주(方舟)를 뜻맞게 찾아 세워 그 기대(基臺)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노아는 방주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제물로 바쳐 ‘상징헌제(象徵獻祭)’에 성공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 다음엔 이 기대 위에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함이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헌제(實體獻祭)’에 성공하면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 노아가 ‘상징헌제(象徵獻祭)’에 성공한 후에 이 가정의 ‘실체헌제(實體獻祭)’가 뜻맞는 것으로 바쳐지기 위하여서는, 먼저 ‘실체헌제’의 중심이 되어야 할 차자(次子) 함이 아담가정의 ‘실체헌제’의 중심이었던 차자 아벨의 입장을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었다.
- 그러나 노아 때는 함이 아니고 노아 자신이 ‘상징헌제’를 하였기 때문에.
- 함이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입장에 서기 위하여는 ‘상징헌제’에 성공한 노아와 심정적으로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함으로 하여금 노아와 심정적으로 일체적인 입장에 서게 하시기 위하여 어떠한 섭리(攝理)를 하셨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 창세기 9장 20절 내지 26절에 씌어 있는 기록을 보면, 함은 그의 부친 노아가 장막(帳 幕) 안에서 나체(裸體)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럽게 여겼을 뿐 아니라,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그 형제 셈과 야벳을 선동(煽動)하였다.
- 창조된 아담과 해와가 서로 얼마나 가깝고 허물할 것이 없는 사이였으며, 또한 얼마나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었던가 하는 것은, 창세기 2장 25절에 그들이 서로 나체로 있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墮落)한 후에 스스로 하체(下體)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 이와 같이 함이 그 부친의 나체를 부끄러워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그 행동은 범죄가 된 것이다.
- 이렇게 되어 함은 ‘실체헌제’를 하기 위한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였고.
- 따라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룰 수 없었으므로.
-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도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中心人物)은 바로 아브라함이었다.
- 따라서 아브라함은 노아의 노정을 위하여 세워졌다가 함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던 모든 조건들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노아를 중심한 뜻을 계승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아브라함은 노아의 대신이요 따라서 아담의 대신이기 때문에 복귀(復歸)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축복(祝福)하셨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에게도 자녀를 번식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축복하셨던 것이다(창 12 : 2).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둘기와 양과 암소로써 제사(祭祀)를 드릴 것을 명하셨던 것이니.
- 이것들은 바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條件物)들이었던 것이다(창 15 : 9).
-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하여는, 원래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려 하셨던 노아와 그 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헌제를 중심하고 복귀하려 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조건물(條件物)을.
- 나아가 그는 또 노아가정이 방주를 중심하고 복귀하려 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조건물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물로 바쳐야 했었다.
- 이 세 가지의 상징제물은 3단계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천주(天宙)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 즉 그중의 비둘기는 소생(蘇生)을 상징하였던 것이다.
- 다음으로 양(羊)은 장성(長成)을 상징한다.
- 다음으로 암소는 완성(完成)을 상징하였다.
- 그리고 또 소생(蘇生)·장성(長成)·완성(完成)의 3단계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양과 암소를 한 제단에 벌여 놓고 헌제한 것은.
- 아담의 입장인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소생 아담, 장성 노아, 완성 아브라함의, 뜻으로 본 3대에 걸쳐서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려던 종적인 섭리를 일시에 횡적으로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 아브라함은 쪼개야 할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에 솔개가 내렸었고.
- 결국 그것은 사탄의 소유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준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 이러한 ‘상징헌제’의 실수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그 ‘상징헌제’로써 탕감복귀하려던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그 결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異邦)인 애급에서 400년 간 고역(苦役)을 하게 되었던 것이니.
- 다시 이삭을 거쳐 야곱까지 3대에 걸친 연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패는 노아의 방주(方舟)를 중심한 ‘상징헌제’와 가인 아벨을 중심한 ‘상징헌제’ 등의 실패를 반복한 것이 되어 버렸다.
- 아브라함이 ‘상징헌제(象徵獻祭)’에 실패한 후 다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燔祭)로 드리라고 명하시어(창 22 : 2).
- 그로써 ‘상징헌제’의 실패를 탕감복귀하시려는 새로운 섭리를 하셨다.
- 예정론(豫定論)에 의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뜻을 위하여 예정되었던 인물이 그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 장본인을 다시 세워 쓰실 수 없게 되어 있다.
-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그 헌제로써 찾아 세우려던 모든 뜻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다시 세우시어 이삭 헌제로써 그의 ‘상징헌제’의 실패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려는 섭리를 하실 수 있었던 것인가?
- 첫째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담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1차였고,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2차였으며,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3차였다.
- 그런데 3수는 완성수(후편 제3장 제2절 Ⅳ )이기 때문에,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시려는 섭리가 연장되기 제3차 만이었던 아브라함 때에는 이 섭리를 완성해야 할 원리적인 조건이 있었던 것이다.
- 둘째로는, 위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헌제를 드리는 아브라함의 입장은 곧 아담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사탄은 아담과 그의 자식 가인에게 침범함으로써 2대에 걸쳐 그들을 빼앗아 갔었기 때문에.
- 탕감복귀원 칙(蕩減復歸原則)에 의하여 하늘편에서도 아브라함과 그 자식의 2대에 걸쳐서 빼앗아 올 수 있는 섭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그렇듯 ‘상징헌제’에 실수하였지만, 하나님은 아벨이나 노아가 ‘상징헌제’에 성공한 역사적인 심정의 기대를 조건으로 그를 다시 세워 한 번 더 헌제를 하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삭 헌제(獻祭)를 어떻게 하였는가?
-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 : 12)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나 그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과 충성에서 나온 행동은.
- 벌써 그로 하여금 이삭을 죽였다는 입장에 서게 하였기 때문에 이삭으로부터 사탄을 분리하게 할 수 있었다.
-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는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상징헌제’의 실패로 침범했던 사탄을 분립하였고, 더 나아가서 뜻을 중심하고 이삭과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이었다.
-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에게로 옮겨진 후.
- 이것은 그대로 이삭을 중심하고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워진 ‘상징헌제(象徵獻祭)’가 된 것이었다.
- 이와 같이 이삭은 아브라함의 사명을 인계하고 그를 대신한 입장에서 ‘상징헌제’에 성공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던 것이다.
- 그러므로 이삭을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려면.
- 여기에서 또다시 그의 자식 에서와 야곱을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분립하여 놓고 ‘.
- 실체헌제(實體獻祭)’를 함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 에서와 야곱이 ‘실체헌제’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는 먼저 야곱이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 첫째로, 야곱은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개인적으로 복귀하는 싸움에서 승리의 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 그런데 장자의 기업을 복귀해야 할 사명을 띠고 복중에서부터 부름을 받은 야곱은 차자의 입장에서 지혜롭게 떡과 팥죽으로써 에서로부터 그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던 것이다(창 25 : 34).
- 둘째로, 야곱은 사탄세계인 하란으로 들어가.
- 21년 간을 고역(苦役)하면서 가정과 재물을 중심하고 장자의 기업을 복귀하는 싸움에서 승리해 가지고.
- 셋째로, 야곱은 하란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얍복강에서 천사(天使)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 실체로써 천사에 대한 주관성(主管性)을 복귀하였던 것이다.
- 야곱은 이와 같이 하여 드디어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함으로써 ‘.
- 이로써 에서와 야곱은 하나님이 아벨의 헌제를 받으셨을 때의 가인과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였기 때문에.
-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려면.
- 에서는 야곱을 사랑하고, 그를 중보(仲保)로 세우며, 그의 주관을 받는 입장에서 순종굴복(順從屈伏)하여 축복을 받은 야곱으로부터 선(善)을 이어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는 입장에 서야만 했던 것이다.
-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 이와 같이 에서와 야곱이 ‘실체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일찍이 아담가정으로부터 ‘실체기대(實體基臺)’를 탕감복귀하여 나온 종적인 역사노정을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노정 중 이삭가정에서 비로소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
- 이때에 비로소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는 응당 이때에 강림(降臨)하셔야 될 것이었다.
- 그러나 아브라함 때에는 이미 타락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한 민족을 형성하여 아브라함가정에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 그러므로 이 기대가 사탄세계와 대결할 수 있는 민족적인 판도 위에 세워진 후에야 비로소 메시아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이삭가정을 중심하고 세워진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결과적으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 위한 탕감노정(蕩減路程)의 출발기대(出發基臺)가 되었던 것이다.
- 이와 같이 이삭을 중심한 섭리는 또 야곱을 중심한 섭리노정(攝理路程)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마치 아브라함과 이삭이 개체는 다르지만 뜻으로 볼 때 한 몸이었던 것과 같이, 야곱은 이삭가정을 중심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운 ‘실체기대(實體基臺)’의 중심인물로서 아브라함이 지은 죄를 담당하고.
- 장차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 가지고 이삭의 뜻을 민족적으로 이루어야 할 탕감노정을 출발하였기 때문에.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서로 개체는 다르나 뜻으로 보면 모두 한 몸이었던 것이다.
-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 : 6)고 한 말씀은.
- 바로 이러한 섭리노정에 입각해 볼 때, 그들은 3대이면서도 뜻으로 보면 하나의 ‘뜻’을 공동으로 이룩한 선조들로서 1대와 같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 에서로부터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빼앗는 개인적인 싸움에서 성공하였고.
- 사탄세계인 하란으로 들어가 그의 외숙부(外叔父) 라반으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가정적으로 빼앗는 21년 간의 싸움에 성공하였다.
- 또 천사(天使)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인간 조상이 타락된 이후 타락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천사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워.
-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음으로써 선민(選民) 형성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 야곱은 이러한 노정을 걸어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 비로소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웠으므로.
- 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전형노정(典型路程)을 성공적으로 걷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