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 1. The Period of the Reformation (1517-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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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종교개혁기(1517∼1648)

서기 1517년 독일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때부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 ·구종파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의 130년 기간종교개혁기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기간의 성격은 중세 봉건사회(中世封建社會)의 소산인 문예부흥(文藝復興)과 종교개혁으로써 형성된다. 하나님이 중세사회를 통하여 이루려 하셨던 섭리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었을 때, 이것을 새로운 섭리역사방향으로 전환시켜서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나아가는 중추적인 사명을 한 것이 바로 문예부흥(Renaissance)과 종교개혁이었다. 따라서 이에 관한 것을 알지 못하고는 이 시대에 대한 성격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중세 봉건사회의 소산이라면, 이 사회가 중세 인간들의 본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어서 그것들을 해산하게 하였는가?

The 130-year period of the Reformation began in 1517, when Martin Luther raised the banner of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Germany, and lasted until the wars of religion were settled by the Treaty of Westphalia in 1648. The character of this period was shaped by the Renaissance and the Reformation, both products of medieval feudal society. When the purpose of God’s providence through medieval society was not fulfilled, the direction of providential history shifted and God worked to establish anew the found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through the Renaissance and the Reformation. Therefore, we cannot understand the nature of this period without studying these two events. Let us begin by looking back at medieval society and examining what influences it exerted upon the original nature of the people of that age which led them to embark upon the Renaissance and the Protestant Reformation.

중세는 봉건제도와 로만 가톨릭의 세속적(世俗的)인 타락으로부터 오는 사회환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이 억압되어 그 자유로운 발전을 기할 수 없게 된 때였다. 원래 신앙은 각자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하나님 사이에 직접적으로 맺어지는 종적관계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과 승려들의 간섭과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그 규범은 당시 인간들의 신앙생활자유를 구속하였고, 그 엄격한 봉건계급제도(封建階級制度)는 인간의 자주적인 신앙활동을 속박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승려의 승관매매(僧官賣買)와 인민에 대한 착취로써 그들의 생활은 한층 더 사치와 향락으로 흘렀었다. 따라서 교황권(敎皇權)은 일반사회권력기관과 다름없이 비신앙적인 입장에 서게 되어 그들은 국민의 신앙생활을 지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In the late Middle Ages, man’s original mind was repressed, its free development blocked by the social environment of feudalism and the secularization and corruption of the Roman church. Faith is the path each person must walk in search of God. Faith should be nurtured through a direct vertical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each individual. Yet in that age, the papacy and the clergy, with their rituals and dogmas, constrained the people’s devotional life. Moreover, the rigid social stratification of feudalism did not allow for religious freedom. Meanwhile, religious offices were bought and sold. Bishops and priests often exploited their offices to lead lives of luxury and decadence. As a consequence, the papacy lost its sanctity and became no different than other institutions of worldly power. It lost the ability to guide the spiritual lives of the people.

이와 같이되어 중세 봉건시대(中世封建時代)의 사회환경인간이 그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경 가운데 구속되어 있었던 중세인(中世人)들은 본성적으로 그 환경을 타파하고 창조본성을 복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그 본성은 뚜렷이 내외 양면의 성향을 가지나타났던 것이니, 그의 창조원리적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In this way, the social environment of the late Middle Ages blocked the path through which the original nature of the people could be restored. Fettered by such circumstances, medieval Europeans were prompted by the impulses of their innermost hearts to break down their social environment to open the way for the restoration of their original nature. Our original nature may be divided into two aspects: internal and external. Let us examine this with reference to the Principle of Creation.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인간하나님이성성상(二性性相)에 대한 형상적인 실체대상(實體對象)이므로 하나님의 본성상(本性相)과 본형상(本形狀)을 닮았다. 그리고 그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수수작용(授受作用)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창조인간의 본성도 내외 양면의 욕망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러한 인간에 대한 복귀섭리(復歸攝理)를 하심에 있어서도 인간 본성의 양면의 추구에 대응하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As the substantial object partners to God in image, we resonate with His dual characteristics and bear the likeness of His original internal nature and original external form. The give and take between our internal nature and external form is the basis upon which we exist and thrive. Accordingly, our original nature seeks to fulfill two types of desires: internal and external. When God conducts the providence to restore us, He accommodates these two pursuits of our original nature.

그런데 하나님은 원래 인간의 외적인 육신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으로 내적인 영인체창조하셨기 때문에(창 2 : 7), 재창조(再創造)를 위한 복귀섭리도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복귀해 들어가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미 후편 제1장에서 논한 바와 같이, 타락인간은 외적인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한 터전 위에 서야 내적인 ‘실체헌제(實體獻祭)’를 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성공함으로써만 보다 내적인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지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타락인간복귀하심에 있어서도 구약시대(舊約前時代)에는 헌제에 의하여 ‘종들의 종’의 입장(창 9 : 25)을,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율법(律法)으로써 종의 입장(레 25 : 55)을, 그리고 신약시대(新約時代)에는 믿음으로써 양자(養子)의 입장(롬 8 : 23)을, 성약시대(成約時代)에는 심정(心情)으로써 참자녀의 입장을 복귀하는 순서로 해 나오시는 것이다(후편 제2장 제3절 Ⅲ.2).

God created the physical self of the first humans before creating their spiritual self. (Gen. 2:7) Accordingly,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God recreates us by restoring first what is external and then what is internal. It was explained earlier (cf. Foundation 1.3) that we fallen people can make the substantial offering, which is internal, only after successfully completing the symbolic offering, which is external. After these are achieved, we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which is even more internal. The process of restoring fallen people’s relationship to God has also progressed from external to internal. God first restored people to the position of servant of servants (Gen. 9:25) in the period prior to the Old Testament Age by having them offer sacrifices. Next, He restored people to the position of servants (Lev. 25:55) in the Old Testament Age through the Mosaic Law. In the New Testament Age, God has restored us to the position of adopted children (Rom. 8:23) through our faith. Finally, in the Completed Testament Age, He will restore us to the position of true children through heart. (cf. Moses and Jesus 3.3.2)

과학에 의하여 먼저 외적인 사회환경복귀해 가면서, 종교를 세워서 내적인 인간의 심령(心靈)을 복귀하는 섭리를 해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천사인간창조된 순서를 보더라도 외적인 천사장이 먼저였고 내적인 인간이 나중이었다. 따라서 천사타락인간복귀함에 있어서도, 먼저 외적인 천사세계를 세우시어 역사(役事)케 하심으로써 인간육신중심한 외적인 실체세계(實體世界)를 복귀하신 다음, 이어서 영인체중심한 내적인 무형세계(無形世界)를 복귀하시는 순서로 섭리나오시는 것이다.

In the same way, God first worked to restore our external social environment through science and then worked to restore our spirituality through religion. In the order of creation, angels, who are external, were created before people, who are internal. In restoration, God first raises up the angelic world, which is external, and mobilizes it for restoring the external, physical world centering on the human body and then the internal, spirit world centering on the human spirit.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내적인 사명을 다해야 했던 교황들의 윤락(淪落)으로 말미암아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고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려는 중세 인간들은, 그 본성의 내외 양면의 추구에 의하여 중세적 지도정신을 가인 아벨 두 형의 사상에 대한 복고운동(復古運動)으로 분립하였던 것이니, 먼저는 가인형인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이요, 다음은 아벨형인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이었다. 그리하여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은 인본주의(人本主義)의 발현인 문예부흥(文藝復興)을 일으켰고,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은 신본주의(神本主義)의 부활을 위한 종교개혁(宗敎改革)을 일으켰던 것이다.

Medieval Europeans were to restore their original God-given nature by first severing their ties to Satan, who had defiled the society when the papacy failed its internal responsibility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and sank into immorality. As people pursued the recovery of the internal and external aspects of their original nature, the thought of the age branched out into two movements to recover the heritage of the past, which we distinguish in relative terms as Abel-type and Cain-type. The Cain-type movement began as a revival of Hellenism, the culture and philosophy of ancient Greece and Rome. It gave rise to the Renaissance, whose core value was humanism. The Abel-type movement began as a revival of the Hebraic heritage of Israel and the early Christian Church. It gave rise to the Protestant Reformation, whose core value was faith in God.

그러면 먼저 헬라사상과 히브리사상의 흐름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교류되어 이 시대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The trends of Hebraism and Hellenism had formed long ago and had encountered each other several times in the course of prior history.

기원전(紀元前) 2천년대에 에게해의 크레타도(島)를 중심하고 미노아문명권이 형성되었었다. 이 문명은 희랍(希臘)으로 흘러 기원전 11세기에 이르러 인본주의의 헬라사상(Hellenism)을 지도정신으로 하는 가인형의 헬라문명권을 형성하였고, 한편 이와 거의 동시대(同時代)에 서아시아에서는 신본주의의 히브리사상(Hebraism)을 지도정신으로 하는 아벨형의 히브리문명권을 형성하였으니, 이때가 바로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였었다.

From 2000 B.C., the Minoan civilization flourished on the island of Crete, succeeded by the Mycenaean civilization on the Greek mainland. By the eleventh century, these civilizations had created a Cain-type Hellenic civilization, whose guiding ideology was humanism.

당시의 이스라엘 왕들이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인민들과 함께 성전(聖殿)을 받듦으로써 이루어지는 ‘실체기대(實體基臺)’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메시아를 맞았더라면, 그때에 히브리문명권은 헬라문명권을 흡수하여 하나세계적인 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 못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바빌론으로 포로(捕虜) 되어 갔다가 귀환한 후 기원전 333년 희랍(希臘)에 속방(屬邦)된 때로부터 기원전 63년 헬라문명권 내에 있었던 로마에 속방되어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기간은, 히브리사상이 헬라사상에 지배를 당하는 입장에 처하였던 시대이다.

Around the same time in the Near East, the Abel-type Hebraic civilization was born, with Jewish monotheism as its guiding ideology. This was the period of the united kingdom. Had the kings of Israel in that period laid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and received him, this flourishing Hebraic civilization could have assimilated the waning Hellenic civilization to form one worldwide civilization. However, when the kings failed to fulfill the Will of God, this dispensation was not accomplished. Instead, after the Jews were taken into exile in Babylon, they returned only to be put under subjection to the Greeks in 333 B.C. and then to Rome in 63 B.C. Thus, during the centuries leading up to and including Jesus’ time, Hebraism was placed under the dominion of Hellenism.

전장(前章)에서 이미 논술한 바 있거니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신봉(信奉)하여 그를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라면 당시의 로마제국은 예수님을 중심한 메시아왕국이루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때에 히브리사상은 헬라사상을 흡수하여 하나세계적인 히브리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써 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히브리사상은 그대로 헬라사상의 지배하에 머물러 있게 되었었다.

Had the Jewish people honored Jesus and united under him, the Roman Empire would have become the messianic kingdom under the reign of Christ. Hebraism then would have assimilated Hellenism to form one worldwide Hebraic civilization. Instead, when Jesus was rejected and this providence was frustrated, Hebraism remained under subjection to Hellenism.

서기 313년에 이르러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基督敎)를 공인한 후부터는 점차 히브리사상이 헬라사상을 극복하기 시작하여, 서기 700년대에 이르러서는 희랍정교문명권(希臘正敎文明圈)과 서구문명권(西歐文明圈)을 형성하게 되었었다.

In 313 A.D., Emperor Constantine officially recognized Christianity by the Edict of Milan. From that time on, Hebraism gradually began to overcome Hellenism. By the beginning of the eighth century, it had formed two civilizations: Eastern Orthodoxy and Roman Catholic Christianity.

중세사회(中世社會)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이었던 교황과 국왕들이 타락되지 않았더라면, 그때에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히브리사상은 헬라사상을 완전히 흡수 융합하여 세계하나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그들의 윤락(淪落)으로 인하여 히브리사상을 중심한 중세적 지도정신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이에서 하나님사탄 분립의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치 아담에게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시기 위하여 그를 가인아벨로 분립하셨던 것과 같이, 이때에도 그 지도정신을 두 사상으로 재분립(再分立)하는 섭리를 하셨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가인형의 헬라사상 복고운동(復古運動)과 아벨형의 히브리사상 복고운동이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마침내 각각 문예부흥(文藝復興)과 종교개혁(宗敎改革)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Had the popes and emperors who were responsible for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in the Carolingian period not become faithless, the found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would have been established at that time. Hebraism would have completely assimilated Hellenism to form one worldwide civilization. Instead, their faithlessness and immorality allowed Satan to corrupt the guiding medieval ideology, which was founded upon Hebraism. As a consequence, God had to conduct a new dispensation for the separation of Satan. Just as God had divided fallen Adam into Cain and Abel to separate Satan, God divided the prevailing ideology of the Middle Ages into two trends of thought: the movements to revive Cain-type Hellenism and Abel-type Hebraism. These bore fruit in the Renaissance and the Reformation, respectively.

그런데 이 시대에는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주도이념으로 하여 문예부흥이 일어남에 따라서 헬라사상이 히브리사상을 지배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에 있어유대민족이 희랍(希臘)에 속방(屬邦)됨으로써, 헬라사상이 히브리사상을 지배하던 시대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마치 가인아벨에게 굴복함으로써만 아담에게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하여 메시아를 맞기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가인형인 헬라사상이 아벨형인 히브리사상에 완전굴복함으로써 비로소 중세적 지도정신에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하여 재림주(再臨主)님을 맞기 위한 ‘실체기대’가 세계적으로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The Hellenic trend of thought, revived by the humanism of the Renaissance, soon took a dominant position over the Hebraic trend. This period was thus to restore through parallel indemnity conditions that phase in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 when the Jewish people were under the dominion of the Greeks and Hebraism was under subjection to Hellenism. We recall that only by Cain submitting to Abel could Satan be separated from Adam, thereby laying the foundation of substance necessary for receiving the Messiah in Adam’s family. Likewise, only by Cain-type Hellenism submitting to Abel-type Hebraism could Satan be separated from the prevailing spirit of the age. Then the foundation of substance necessary for receiving Christ at the Second Advent could be established worldwide.

The Period of the Reformation



Ⅰ. 문예부흥(Renaissance)

1.1 The Renaissance

중세 사회인들의 본성(本性)의 외적인 추구에 의하여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이 제기되었고,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문예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이다. 그러면 그 본성의 외적인 추구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되어 인간이 그것을 추구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It was explained above that the Renaissance grew out of the external pursuits of the original nature. What values were the medieval people pursuing? Why and how did they pursue these values?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인간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그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하여 완수함으로써만 완성되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유추구하게 된다. 또 인간자유의지로써 자기책임분담을 완수하여 하나님일체이루개성완성함으로써 인격절대적인 자주성(自主性)을 갖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 인격의 자주성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개성완성한 인간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계시(啓示)를 받지 않아도 그의 이지(理智)와 이성(理性)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고 생활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또한 본성적으로 이지와 이성을 추구하게 된다. 인간은 또 자연계(自然界)를 주관하도록 창조되었으므로, 과학으로써 그 속에 숨겨진 원리를 찾아 현실생활환경을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연현실과학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Creation, we are created to attain perfection by fulfilling our given responsibility of our own free will, without God’s direct assistance. We are then to attain oneness with God and acquire true autonomy. Therefore, it is the calling of our original nature to pursue freedom and autonomy. A person of perfect character understands the Will of God and puts it into practice through his own insight and reason, without the need to rely on revelations from God. Hence, it is only natural that we pursue reason and understanding. We also are endowed with the God-given right to master the natural world, to tame and cultivate it in order to create a pleasant living environment, by investigating the hidden laws of nature through science. Hence, we value the natural world, pursue science, and esteem the practical life.

그런데 중세 사회인들은 그 봉건제도(封建制度)에 의한 사회환경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본성이 억압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본성의 외적인 욕망에 의하여 위와 같은 것들을 더욱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중세인(中世人)들은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 이래 동방(東方)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헬라사상의 고전(古典)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헬라의 고대정신이 바로 인간자유인격의 자주성과 이지와 이성의 존엄성과 자연을 숭상하현실에 치중하며 과학을 세우는 것 등 인간 본성의 외적인 추구에 의한 것이어서, 이것들이 그대로 중세인의 본성적인 욕망에 부합되었으므로 헬라사상의 복고운동(復古運動)은 불길같이 일어나 드디어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대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In medieval feudal society, the original human nature had long been repressed. Hence, people were all the more ardent in their pursuit of these values, which arose from the external promptings of their original nature. They began to probe into the classical heritage of Hellenism, which they imported from the Muslims as a result of expanded contacts with the East after the Crusades. The classical Greeks and Romans had pursued the external aspirations of the original human nature. They valued freedom, autonomy, reason, the natural world and the practical life. They developed the sciences to a considerable degree. Since these were in full accord with the desire of the original nature in medieval man, the movement to revive the ancient heritage of Hellenism caught fire. Renaissance humanism thus rose to prominence.

르네상스는 불란서어(佛蘭西語)로서 ‘재생(再生)’ 또는 ‘부흥(復興)’이라는 뜻이다. 이 르네상스는 14세기 경부터 헬라사상에 관한 고전 연구의 본산인 이태리(伊太利)에서 태동되었었다. 이 인본주의(人本主義) 운동은 처음에는 중세인으로 하여금 그리이스의 고대로 돌아가 그 정신을 모방케 하려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었으나, 더 나아가 이 운동은 그 고전문화(古典文化)를 재생하여 중세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개혁운동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또 이것은 비단 문화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사회 전반에 걸친 혁신운동으로 확대되어 사실상 근대사회형성하는 외적인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 본성의 외적인 욕망추구하는 시대적인 사조(思潮)였던 인본주의(혹은 인문주의)로 말미암아 봉건사회(封建社會) 전반에 대한 외적인 혁신운동으로 전개된 현상을 르네상스(문예부흥)라고 부른다.

The Renaissance came to life in fourteenth-century Italy, which was the center of the study of the classical Hellenic heritage. Though it began as a movement imitating the thought and life of ancient Greece and Rome, it soon developed into a wider movement which transformed the medieval way of life. It expanded beyond the sphere of culture to encompass every aspect of society, including politics, economic life and religion. In fact, it became the external driving force for the construction of the modern world.

The Renaissance



Ⅱ. 종교개혁

1.2 The Reformation

중세사회(中世社會)에 있어서의 교황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는 교황과 승려의 세속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룰 수 없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중세인들이 인본주의를 부르짖게 됨에 따라 인간자유를 구속하는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규범에 반항하게 되었고, 인간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봉건계급제도(封建階級制度)와 교황권(敎皇權)에 대항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또 인간의 이성(理性)과 이지(理智)를 무시하고, 무엇이든지 교황에 예속시키는 데서만 해결된다생각하는 고루한 신앙생활에 반발하게 되었으며, 자연현실과학을 무시하는 둔세적(遁世的), 타계적(他界的), 금욕적(禁慾的)인 신앙태도를 배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마침내 중세 기독교인들은 교황정치(敎皇政治)에 반항하게 되었다.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centering on the medieval papacy did not bear fruit due to the secularization and decadence of the Church leadership. Consequently, as the people advocated humanism, they also rebelled against the ritualism and rules of the Church which were constraining their free devotion. They fought against the stratified feudal system and papal authority which deprived them of autonomy. They protested the medieval view that faith required unquestioning obedience to the dictates of the Church in all areas of life, which denied them the right to worship God according to the dictates of conscience based on their own reading of the Bible. They also questioned the other-worldly and ascetic monastic ideal which devalued the natural world, science and the practical affairs of life. Out of these grievances, many medieval Christians revolted against the rule of the papacy.

이와 같이 중세 사회인들이 그 본성(本性)의 외적인 욕망추구함에 따라서 억압되었던 그 본성의 내적인 욕망추구하게 되어, 드디어 사도(使徒)들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기에 열렬했던 초대 기독정신(基督精神)에로의 복고(復古)를 부르짖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중세에 있어서의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이다.

Accordingly, as medieval Europeans sought to realize the external aspirations of their original nature, they also began to pursue its repressed internal aspirations. They called for the revival of the spirit of early Christianity, when believers zealously lived for the Will of God, guided by the words of Jesus and the apostles.

그리하여 14세기에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신학교수 위클리프(Wycliffe 1324∼1384)는 성서를 영역(英譯)하여, 신앙기준을 교황이나 승려에게 둘 것이 아니고 성서 자체에다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교회의 제도나 의식이나 규범은 성경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증언하면서 승려의 윤락(淪落)과 그들의 민중에 대한 착취 및 권력 남용을 통박하였다.

This medieval movement to revive Hebraism began with John Wycliffe (1324-1384), a professor of theology at Oxford University, who translated the Bible into English. He asserted that neither the papacy nor the priesthood could determine the standard of faith, but only the Bible itself. Demonstrating that many of the dogmas, ceremonies and rules of the Church had no basis in Scripture, he denounced the priesthood for its decadence, exploitation of the people and abuse of power.

이와 같이 종교개혁운동(宗敎改革運動)은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에 의하여 교황의 위신이 떨어진 후 14세기부터 이미 영국에서 태동되었고, 15세기 말엽에는 이태리(伊太利)에서도 이 운동이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하여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1517년 교황 레오 10세가 성베드로사원의 건축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사후(死後)에 구원(救援)을 받는 속죄(贖罪)의 표라고 선전하면서 면죄부(免罪符)를 팔게 되자, 이 폐해에 대한 반대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결국 독일에서 비텐베르크대학의 신학교수로 있던 마르틴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운동은 폭발되었다. 그리하여 이 혁명동의 불길은 점차로 증대되어 불란서(佛蘭西)에서는 칼빈, 스위스에서는 쯔빙글리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전되어 갔고, 그것은 영국, 화란(和蘭) 등 제국(諸國)으로 확대되었다.

The Protestant Reformation thus had roots in fourteenth-century England, when papal dignity was at a low point. Similar movements for reform also arose in fifteenth-century Bohemia and Italy, but they were crushed and their leaders executed. To raise funds to build St. Peter’s Basilica, Pope Leo X began selling indulgences, which Catholic doctrine affirmed would remit the penalty for sin due in the next life. When this indulgence was proclaimed in Germany in 1517, a movement to protest this abuse ignited a fuse which exploded in the Protestant Reformation under the leadership of Martin Luther (1483-1546), a professor of biblical theology at the University of Wittenberg. The flames of the Reformation grew strong and soon spread to Switzerland under the leadership of Huldrych Zwingli (1484-1531), to France as led by John Calvin (1509-1564), and into such nations as England and the Netherlands.

이와 같이 되어 신교운동(新敎運動)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국제간의 싸움은 백여년 간이나 계속되어 오다가, 마침내 독일을 중심하고 일어났던 30년전쟁(三十年戰爭)이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인하여 끝나면서 신·구종파의 싸움은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결과 북구(北歐)는 게르만 민족중심한 신교(新敎)의 승리로 돌아갔고, 남구(南歐)는 라틴 민족중심한 구교(舊敎)의 판도로서 남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The wars of religion which swirled around the Protestant movements continued for more than one hundred years until 1648, when the Treaty of Westphalia ended the Thirty Years’ War. Protestantism triumphed in Northern Europe, while among the peoples of Southern Europe the Roman Catholic church solidified its influence.

이 30년전쟁은 독일을 중심하고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교도 간에 일어났던 싸움이었다. 그러나전쟁은 단순한 종교전쟁(宗敎戰爭)에 그치지 않고 독일제국의 존폐(存廢)를 결(決)하는 정치적인 내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전쟁을 종식시킨 베스트팔렌강화회의(講和會議)는 신·구교파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는 종교회의(宗敎會議)인 동시에 독일, 불란서(佛蘭西), 서반아(西班牙), 스웨덴 등 제국간(諸國間)의 영토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인 국제회의(國際會議)이기도 하였다.

The Thirty Years’ War between Protestants and Catholics was fought on the soil of Germany. However, this conflict was not simply a religious war. More than that, it was a civil and political conflict to decide the fate of the German states. The Treaty of Westphalia, which concluded this war, was both a religious settlement which established an accommodation between the Protestants and Catholics and a political settlement which resolved international territorial disputes among such nations as Austria, France, Sweden and Spain.

The Re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