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이라는 것은 사람을 알아만 가지고는 느낄 수 없다. 심정을 알려면 같이 사랑하고 살아 봐야 아는 것이다.
문선명 선생 말씀 명언
One Family Under God!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살아라.
낮 12시처럼 그림자 없는 삶을 살아라.
부모 앞에 효자의 한 마디 반항의 말은 불효자의 천 마디 반항의 말보다 상처가 크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자는 것이 인간 창조의 동기이다. 사랑은 지식을 초월해 있다.
하늘의 슬픔을 알고 출발하는 자리는 쓰러져도 죽지 않는다.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시켜 주는 것은 되지만,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체휼해야 한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 자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다려 주세요!’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줄은 내려 줄 수 있어도, 떨어져 내려간 곳까지 직접 가서 끌어내 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려 준 종교의 줄을 잡고 스스로 힘을 다하여 매달려야 한다. 그것이 심정이다. 그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냐에 따라서 거리가 가까워질 것이다.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천주가 없어지더라도 그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주인이 되려면 최고의 기준을 가지고 정성(精誠)을 들여야 합니다.
선은 맞고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죽이려던 사람들은 다 망했습니다. 악이 선을 지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은 패배의 서러움을 맛보지 않고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을 행함에 있어서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외적인 가치의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도 도의 절대적인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선지선열(先知先烈)들을 세웠습니다.
지상에서는 아직도 도의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그 기준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기도는 자기를 부정하고 간접적인 주체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나가는 것이 도(道)의 길입니다.
자기만이 행복된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주장하는 입장에 서려면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것은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내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내 것이 있습니까? 내 몸도 부모가 주셨습니다. 만약 자연이 내 것을 주장한다면 우리의 육신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과 개인의 심정이 직선상에 서야 한다.
우주의 근본은 인간이요, 인간의 근본은 생명이요, 생명의 근본은 사랑이요, 사랑의 근본은 하나님이다.
사무친 정(情)은 법(法)을 넘을 수 있다.
진리(眞理)의 말씀은 문을 여는 것, 그 다음에는 심정(心情)으로 길러 주어야 한다.
심정은 소망이며 목적이고, 사정(事情)은 생활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생활을 펼쳐 나가자.
기도할 때의 심정은 배고플 때 어린 아이가 젖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이 사무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