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의 세계는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말씀도, 기도도 궁극에는 사랑이다.
문선명 선생 말씀 명언
심정의 경지에서는 잘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못난 사람이 없다.
사랑의 근본은 부자지정(父子之情)의 종적인 사랑과 형제지정(兄弟之情)의 횡적인 사랑이다.
세상의 일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지만, 심정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안된다.
고통의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고 슬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늘은 덮어 내려오신 것이다.
상대기준(相對基準)이라는 말은 심정을 두고 한 말이다. 완성이라는 것도 바로 심정의 완성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아버지의 심정에 걸어 놓고서 생각하면 풀리지 않는 것이 없다.
완전한 사랑은 준 후에도 기억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자리이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할 때 느꼈던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적 내연(內緣)을 능가해야 기쁨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도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생애를 바쳐 싸우고 죽었으니, 우리도 예수의 심정을 대신하여 증거하고 싸우며 죽는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정에는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잃어버린 슬픔과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선지 선열들을 보내어 사탄과 싸우게 하신 역사적 슬픔이 있다.
예수께서 하늘의 애달픈 심정을 대신하여 서러워하던 것의 세 배 이상의 애달픈 마음을 가져라.
나는 너희들과 같지 않다는 심정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심정은 생명의 원천이다. 이것은 그대로 영계에 직결된다.
자기의 자식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자기의 쓰라림보다 하늘 아버지의 쓰라림이 어떠하겠는 가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자에게는 하늘도 꼭 너희들의 형님을 본받아라!’ 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유발(誘發)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정성들이는 것이며.
주기에 굶주린 자가 되자. 절대로 신세지지 말라.
여러분은 정성(精誠)을 다해 가지고 하나님의 신세를 지지 않고 오히려 신세를 끼쳐 드리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나가야 한다.
하늘 앞에 지성(至誠)을 드리는 것은 남으로부터 듣거나 배우거나 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소원의 일치와, 사정의 일치가 되어야 심정세계가 벌어진다. 심정의 원천이 될 자료(資料)를 가지자.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이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완전히 하나가 되면 그 중앙에 하나님이 임재(臨在)하신다.
항상 하늘 앞에 목메이는 때가 많아야 한다.
사랑 앞에는 높고 낮은 것이 없다.
인간이 최고의 것을 바라는 것은 본래 최고의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