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나가는 것이 도(道)의 길입니다.
문선명 선생 말씀 명언
자기만이 행복된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주장하는 입장에 서려면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것은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내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내 것이 있습니까? 내 몸도 부모가 주셨습니다. 만약 자연이 내 것을 주장한다면 우리의 육신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과 개인의 심정이 직선상에 서야 한다.
우주의 근본은 인간이요, 인간의 근본은 생명이요, 생명의 근본은 사랑이요, 사랑의 근본은 하나님이다.
사무친 정(情)은 법(法)을 넘을 수 있다.
진리(眞理)의 말씀은 문을 여는 것, 그 다음에는 심정(心情)으로 길러 주어야 한다.
심정은 소망이며 목적이고, 사정(事情)은 생활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생활을 펼쳐 나가자.
기도할 때의 심정은 배고플 때 어린 아이가 젖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이 사무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단에 나서는 것이다. 설교는 준비가 아니라 심정이 문제이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마음의 터를 인계받아 나가자.
하늘이 대할 수 있는 참신하고 자극적인 맛을 풍기는 심정적인 재료를 항상 제시하라.
이제부터 하나님의 진모(眞貌)를 알기에 힘쓰라. 그다음에는 `‘아버지!’ 하고 부르기만 해도 통곡하는 선생님을 배워라.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함은 일의 성패(成敗)의 문제로서가 아니고 그 심정적 동기가 어떠한가를 보고 대한다. 즉 자기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가 중요하다.
말씀시대나 실체시대는 대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심정시대는 대신이 없다.
때가 요구하는 심정 앞에 먼저 선 자가 그 심정을 잃으면 늦게 들어오더라도 그 심정기준이 된 자를 불러 쓸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성품을 흡수할 수 있는 소성(素性)을 갖추어야 한다.
통일 신도가 가져야 할 오직 하나의 소유관념은 하나님의 심정이다.
향수(鄕愁)와 같은 심정의 역사를 꾸며 놓자.
정에는 종(縱)(부모), 횡(橫)(부부), 좌우(左右)(형제)의 관계가 있다.
선한 사람은 자연을 보나, 사람을 만나나, 어디를 가나, 어느 때나 심정으로 덮어 줄 수 있는 자다.
심정을 떠나서는 생명이 없다. 심정의 골짜기의 길은 고통스럽고 처참한 길이다. 심정의 골짜기는 파고들면 들수록 눈물이요, 또 자기는 없어진다.
애천(愛天), 애인(愛人), 애국(愛國).
사랑의 주인공, 심정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자. 아무리 위인(偉人)이 나온다고 하여도 인류의 심정을 정복 못하면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