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다 귀한 것은 사랑이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선명 선생 말씀 명언
주관은 창조의 권한을 갖지 않고는 안 된다. 그런데 창조의 권한은 권력이나 경제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써 되었기 때문에 세계는 사랑으로써만 주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색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나 같은 분이다 하면 이건 쏙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냐? 인격적 신입니다. 지·정·의를 합한 내용을 갖춘 인격적 신입니다. 그런 인격적 신이 최고로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 인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여 둘이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실체가 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여 인류 앞에 사랑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왜 사람을 창조했느냐? 이 우주는 실체가 있으니 실체 주인인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관리 주도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아담을 중심으로 영육 양면의 세계, 무형실체세계(無形實體世界)와 유형실체세계(有形實體世界)를 주관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목적입니다.
사랑은 통일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통일시킬 수 있다.
예수는 사랑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랑했느냐 하고 묻는 자리에 섰고, 사랑하려야 할 수 없는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면 아담을 중심한 단일문화권(單一文化圈)이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민족이 각기 다른 문화와 문명을 형성해 온 것이 아니라, 아담을 중심으로 한 단일문화, 단일사상, 단일문명을 가진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자식들이 책임 못해서 죽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것을 보고 극복해야 할 하늘이 얼마나 불쌍하다는 것을 알고 슬픔을 위로해 드려야 한다.
원수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다. 원수의 입장에서 사랑으로 돌리게 될 때는 도리어 귀감이 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길이 있다.
심정이라는 것은 사람을 알아만 가지고는 느낄 수 없다. 심정을 알려면 같이 사랑하고 살아 봐야 아는 것이다.
One Family Under God!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살아라.
낮 12시처럼 그림자 없는 삶을 살아라.
부모 앞에 효자의 한 마디 반항의 말은 불효자의 천 마디 반항의 말보다 상처가 크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자는 것이 인간 창조의 동기이다. 사랑은 지식을 초월해 있다.
하늘의 슬픔을 알고 출발하는 자리는 쓰러져도 죽지 않는다.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시켜 주는 것은 되지만,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체휼해야 한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 자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다려 주세요!’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줄은 내려 줄 수 있어도, 떨어져 내려간 곳까지 직접 가서 끌어내 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려 준 종교의 줄을 잡고 스스로 힘을 다하여 매달려야 한다. 그것이 심정이다. 그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냐에 따라서 거리가 가까워질 것이다.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천주가 없어지더라도 그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주인이 되려면 최고의 기준을 가지고 정성(精誠)을 들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