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인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문선명 선생 말씀 명언
사랑의 실현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투입하면 전부 소모되지만 참사랑만은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더 번성하고 생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항상 하늘이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완전히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는 영원한 운동이 연결되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영생의 논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심정을 점령하는 날에는 몸은 풀어놔도 꼼짝 못한다. 하나님의 심정을 점령하자.
하나님은 만민을 미친 듯이 사랑하고 싶은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은 모든 사람을 미친 듯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참사랑을 위하는 길에는 영원히 싫은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에는 원수의 개념이 없습니다. 악의 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사랑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둘 다 소모하는데, 소모하고 얻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만 가지면 아무리 소모해도 좋다는 말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인류의 조상으로 온 분이 메사아이다.
영계는 사랑의 세계이기 때문에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것이다.
대상세계 창조는 사랑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투입했습니다. 투입한 그것이 자기에게 열매 맺히게 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열매 맺히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을 때 ‘이렇게 되어라. 저렇게 되어라.’ 하고 장난식으로 창조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에는 참된 생명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사랑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이상을 완전히 투입했습니다. 우리도 정성 안 들이고 피와 살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위해 있겠다고 운동을 시작한 것이 창조입니다.
죄를 인간이 지었기 때문에 죄를 청산하는 것도 인간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보다 너의 자녀를 더 사랑하라!’는 최후의 유언을 하는 조상이 최고이다.
사랑은 맹목적인 돌파력이 있다. 종교는 사랑의 길이기에 생사를 초월할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없으니 나를 다 세밀히 분석하고 꼼짝못하게 만들겠구만.’ 하나님이 나를 전지전능으로 지배만 하신다면 좋을 거 있어요?
하나님의 소원 성취는 심정의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사탄의 참소조건에 걸리지 않아야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로 세워 명령할 수 있다.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유일하며 불변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러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견지에서 참된 사랑,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의 기원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반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날 수십억이 되는 인류의 마음을 다 채워 줘야 할 하나님의 그 사랑의 양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건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라는 말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에게 필요한 단어다 이겁니다.
사랑이란 뭐냐? 돌아갈 수 있게 윤활작용(潤滑作用)과 궤도작용(軌道作用)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윤활역할(潤滑役割)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를 품고도 남습니다. 중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