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의 문을 거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은 도둑입니다.
정성에 대한 인용문
문선명, 한학자의 말씀 중에서
이렇게 세계에 대해서 남겨질 수 있는 정성의 터전을 지니고 나가면 자신과 후손의 명성이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성의 줄을 끊을 수 있는 천법은 없습니다.
앞으로 참다운 아들딸들이 들여야 할 정성은 무엇이냐? 현실적인 생활 무대에서의 정성이 아니라 소망의 정성, 영광의 정성, 충성의 정성, 모심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남이 정성들인 물건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 앞에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눈물이 감돌고 피비린내가 나고 피골이 상접하는 역경 가운데서 들이는 그 하루의 정성은 편안한 때의 십년, 백년을 탕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복귀노정에서 이 민족 앞에 제시된 모든 여건들을 여러분 자체의 실적으로 여겨 나왔는지 모르지만, 그 모든 실적을 합하고 뭉쳐서 하늘 앞에 정성어린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상을 구하려 하신다면 그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되느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인간의 본심은 더 큰 정성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양심의 표준입니다.
그리고 정성들였다, 충성했다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정성이란 명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일편단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를 위주로 하는 데서가 아니라 반드시 상대를 위하는 데서 정성의 요건이 성립되고, 정성이란 명사가 성립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정성은 나를 위주로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즉 가정이면 가정, 사회면 사회, 국가면 국가 등 더 큰 상대를 위해 들여야만 정성이란 명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정성은 누구에게 빌려 주었다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세상에 어떤 역사적인 결실을 남기고, 혹은 그 시대에 있어서 남다른 실적을 거두어 후대의 표본으로 남기고, 또 후손들이 본받을 수 있는 모체로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성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정성의 자리에서 자신을 갖추어 전체 앞에 보여 주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심입니다.
하나님이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 계셔야 한다.
개인의 눈물은 개인에게 그치지만, 중심자의 눈물은 역사와 더불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민족이 잘못해도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한다.
선생님을 하늘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일을 했다.
선생님은 천 년 후의 일을 위하여 기도한다.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줄은 내려 줄 수 있어도, 떨어져 내려간 곳까지 직접 가서 끌어내 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려 준 종교의 줄을 잡고 스스로 힘을 다하여 매달려야 한다. 그것이 심정이다. 그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냐에 따라서 거리가 가까워질 것이다.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천주가 없어지더라도 그는 남아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