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The National Courses to Restore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Moses
모세가 사탄세계인 애급(埃及)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로써 인도하여 홍해(紅海)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노정은, 장차 예수님이 이 죄악세계(罪惡世界)에서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을 이적과 기사로 인도하여 이 죄악세계의 고해(苦海)를 건너고 생명의 물이 마른 사막을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창조본연의 에덴으로 복귀케 될 그 노정을 미리 보여 준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Moses brought the Israelites out of Egypt, the satanic world, with miracles and signs, led them across the Red Sea, and had them wander through the wilderness before entering the promised land of Canaan. This foreshadowed the course on which Jesus would one day lead Christians, the Second Israel. With miracles and signs, Jesus would bring Christians out of lives of sin and lead them safely across the troubled sea of evil. He would take them through a desert devoid of life-giving water before guiding them into the Garden of Eden of God’s promise.
한편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된 것과 같이,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에서는 모세노정과 예수노정과의 세밀한 대조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것은 본절과 다음 절을 대조함으로써 소상히 밝혀질 것이다.
Just as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Moses was prolonged as three courses because of the Israelites’ faithlessness,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Jesus had to be undertaken three times because of the disbelief of John the Baptist and the Jewish people of that day. To avoid redundancy, a close comparison between Moses’ course and Jesus’ course will not be made here. Still, the parallels will become plain when one compares this section with the next.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2.2.1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1) 믿음의 기대
2.2.1.1 The Foundation of Faith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 간을 애급에서 고역(苦役)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수로 초래된 민족적인 탕감기간(蕩減期間)은 끝나게 되었었다. 여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領導)하여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이 되기 위하여는, 민족적 탕감기간인 400년을 다시 개인적으로 탕감함으로써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모세는 이 목적과 함께 타락 전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워야 했던 40수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후편 제3장 제2절 Ⅳ) 사탄세계의 중심인 바로궁중에 들어가 40년을 지내야 했던 것이다.
After four hundred years of slavery in Egypt, the indemnity period required of the Israelites due to Abraham’s mistake came to an end. In order for Moses to become the central figure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and be qualified to lead the Israelites out of Egypt, he as an individual had to inherit the four-hundred-year national indemnity period and complete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In addition, Moses had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number forty, which unfallen Adam should have fulfilled to establish his foundation of faith (cf. Periods 2.4). To achieve these purposes, Moses was brought into the Pharaoh’s palace, the center of the satanic world, and he spent forty years there (Acts 7:23).
그러므로 모세는 남 모르게 그의 유모(乳母)로 세워진 어머니로부터 선민의식(選民意識)에 불타는 교육을 받으면서 바로궁중생활 40년을 마친 후, 선민의 혈통에 대한 지조(志操)와 충절(忠節)을 변치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을 받기를 잠시 바로궁중에서 죄악의 낙(樂)을 누리는 것보다 기뻐하여 그 가운데서부터 뛰쳐나오게 되었던 것이다(히 11 : 24∼25). 이와 같이 모세는 바로궁중생활 40년으로써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였던 것이다.
While in the palace, Moses was educated by his mother, who, unknown to anyone, was hired to be his nurse. She secretly imparted to him the consciousness and pride of belonging to the chosen people. Despite the comforts of palace life, Moses maintained unshakable loyalty and fidelity to the lineage of Israel. After forty years, he left the palace, “choosing rather to share ill-treatment with the people of God than to enjoy the fleeting pleasures of sin” (Heb. 11:25). Hence, during the forty years of his life in the Pharaoh’s palace, Moses fulfilled the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and thereby restored the foundation of faith.
(2) 실체기대
2.2.1.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모세는 ‘믿음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동시에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게 되었었다. 이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부모의 입장인 동시에 자녀로서의 아벨의 입장에 있었던 모세에게 믿음으로 순종굴복(順從屈伏)하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음으로써 선(善)을 번식하게 되었더라면, 그때에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와 같이 모세를 따라 애급을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로 돌아가는 기간은 바로 그들이 이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 되는 것이었다.
Moses was in the dual position of parent and child. When he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he also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fo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The Israelites, who were in the position of Cain, were supposed to follow and obey Moses in faith. By inheriting God’s Will from Moses and multiplying goodness, they would fulfill the national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y the national foundation of substance. The Israelites were to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by following Moses from the time they left Egypt until they entered the blessed land of Canaan.
하나님은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이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모세는 자기의 동포가 애급인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불타는 동포애(同胞愛)를 이기지 못하여 그 애급인을 쳐죽였던 것이나(출 2 : 12), 실상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참경(慘景)을 보시고(출 3 : 7) 울분을 느끼신 그 심정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세를 중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모세를 따라서 사막을 횡단하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성공적으로 출발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사실을 결정짓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God commenc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course with Moses’ act of killing an Egyptian. Seeing one of his brethren being mistreated by an Egyptian taskmaster, Moses was incited by his burning love for his people; he struck and killed the man (Exod. 2:11-12). In a way, this was an expression of God’s heart of burning indignation as He looked down upon the affliction of His people (Exod. 3:7). At that moment, whether or not the Israelites united with Moses would determine if they could successfully begin the course to return to Canaan.
하나님이 택하신 모세가 이와 같이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인 것은, 첫째로 천사장(天使長)이 인간 시조를 타락시켰고 또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사탄이 장자(長子)의 입장에서 인류 죄악사(罪惡史)를 이루어 나오고 있으므로, 하늘편에서 장자의 입장에 있는 사탄편을 쳐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모세로 하여금 바로궁중에 대한 미련을 끊고 다시는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서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의 애국심을 보여 줌으로써 그를 믿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하나님이 애급인의 장자와 그 가축의 맏것을 전부 쳐 버렸 던 이유도 이러한 데 있었다.
When Moses killed the Egyptian, God used this act to achieve the following: First, the Archangel induced the first human ancestors to fall and Cain to kill Abel; these were the conditions by which Satan has controlled the progression of sinful history from the position of the eldest son. Therefore, before God could begin the providence to restore Canaan, someone on God’s side should fulfill the condition to restore this through indemnity by prevailing over someone on the side of Satan who stands in the position of the eldest son. Second, this act effectively cut off any lingering attachment Moses had to the Pharaoh’s palace and placed him in a situation where he could never return. Finally, by this act, God desired to induce the Israelites to trust Moses by showing them he was a patriotic Israelite. As we shall see, these were comparable to the reasons why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God struck all the firstborn among the Egyptians and their livestock.
모세의 이러한 행동을 목격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모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더 존경하고 더 믿고 모시며 따랐더라면, 그들은 모세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홍해(紅海)를 건너거나 시내광야를 도는 일이 없이 바로 블레셋으로 가는 곧은 길을 통하여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노정은 야곱의 하란 21년노정을 탕감하는 21일노정이 되었을 것이었다.
The Israelites, upon witnessing Moses’ act of killing the Egyptian, should have been deeply inspired by his love for Israel, as was God. Had they felt this way, they would have respected Moses, trusted him and followed him with ardor. Then, through Moses’ leadership, God would have brought them directly into the land of Canaan where they would have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In fact, they would not have had to cross the Red Sea or wander through the Sinai wilderness, but would have taken the straight route to Canaan by way of the land of the Philistines. In a twenty-one-day course, they would have restored Jacob’s twenty-one years in Haran.
출애굽기 13장 17절에는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보아서 하나님은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을 블레셋 땅의 곧은 길로 통하게 하려 하셨던 것인데,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출발조차도 해보지 못하고 말았고,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때는 제1차 때와 같이 그들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가나안 복귀의 도중에서 애급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여 홍해(紅海)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가도록 인도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다.
Later,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God had reason to distrust the Israelites because their previous failure to follow Moses had aborted the first national course. It is written: “When Pharaoh let the people go, God did not lead them by way of the land of the Philistines, although that was near; for God said, ‘Lest the people repent when they see war, and return to Egypt’” (Exod. 13:17). During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God led the people across the Red Sea and in a detour through the wilderness because He had reason to fear they might turn faithless and return to Egypt without completing their journey.
(3)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2.2.1.3 The Failure of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順從屈伏)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더라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이는 것을 보고 도리어 그를 오해하고 나쁘게 발설하였으므로, 바로는 이 소문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출 2 : 15). 이에 모세는 할수없이 바로의 눈을 피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 미디안광야로 도망하게 되었으므로 그 ‘실체기대’는 이루지 못하고 말았으며,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은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Had the Israelites (Cain) wholeheartedly obeyed Moses (Abel) and followed him to return to Canaan, they would have fulfilled the national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i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On the contrary, however, when they saw Moses strike and kill the Egyptian, they misunderstood him and spoke ill of him: When he went out the next day, behold, two Hebrews were struggling together; and he said to the man that did the wrong, “Why did you strike your fellow?” He answered, “Who made you a prince and a judge over us? Do you mean to kill me as you killed the Egyptian?” Then Moses was afraid, and thought, “Surely the thing is known.” When Pharaoh heard of it, he sought to kill Moses (Exod. 2:13-15). Moses was left with no choice but to escape from the Pharaoh. Reluctantly forsaking the Israelites, he fled into the wilderness of Midian. The foundation of substance was shattered, and the Israelites’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Moses would be repeated a second and eventually a third time.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2.2.2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1) 믿음의 기대
2.2.2.1 The Foundation of Faith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不信)으로 말미암아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모세가 그의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웠던 바로궁중 40년 기간은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모세가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을 출발하기 위하여는 사탄 침범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바로궁중생활 40년 기간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기간을 다시 찾아 세워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광야로 들어가 다시 40년 기간을 보내게 되었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40년 기간에는 이스라엘 민족도 모세를 불신한 죄로 더욱더 비참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When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due to the disbelief of the Israelites, Satan claimed the forty years of Moses’ life in Pharaoh’s palace during which he had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Hence, for Moses to beg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he had to lay anew the foundation of faith by completing another period of forty years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his lost forty years in the palace. This was the purpose of Moses’ forty-year exile in the wilderness of Midian (Acts 7:30). During this forty-year period, the Israelites’ lives in Egypt became even more miserable as the penalty for their disbelief in Moses.
모세는 미디안광야 40년으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새로이 세웠기 때문에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 : 7∼10)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Moses went through a second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during the forty years he spent in the wilderness of Midian. There he restored the foundation of faith needed to embark upo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God then appeared before Moses and said: I have seen the affliction of my people who are in Egypt, and have heard their cry because of their taskmasters; I know their sufferings, and I have come down to deliver them out of the hand of the Egyptians, and to bring them up out of that land to a good and broad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to the place of the Canaanites . . . and now, behold, the cry of the people of Israel has come to me, and I have seen the oppression with which the Egyptians oppress them. Come, I will send you to Pharaoh that you may bring forth my people, the sons of Israel, out of Egypt (Exod. 3:7-10).
(2) 실체기대
2.2.2.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모세는 미디안광야 40년으로써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재조성하여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다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였다. 따라서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경우와 같이,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는 모세를 절대로 믿고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여기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Once Moses restored the foundation of faith in the wilderness of Midian, he also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Accordingly, as in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if the Israelite people in the position of Cain had believed in and followed Moses with unquestioning faith and obedience, they would have entered the promised land, the land of milk and honey. In so doing, they would have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i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 하였을 때에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였던 것과 같은 목적으로,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때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3대 기적(三大奇蹟)과 10재앙(十災殃)의 권능을 주시어 애급인을 치게 하심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Go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Moses struck and killed an Egyptian. Similarly, to work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God granted Moses three signs and ten plagues with which to prevail over the Egyptians.
모세가 사탄편을 쳐야 하는 이유는 위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첫째 사탄이 침범한 장자(長子)의 입장을 탕감복귀하고, 둘째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애급에 대한 미련을 끊게 하고, 셋째 모세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던 것이다(출 4 : 1∼9).
The reasons God had Moses strike the satanic side were, as already elucidated: first,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position of the eldest son which Satan had defiled; second, to cut off the Israelites’ attachment to Egypt; third, to let the Israelites know that Moses was sent by God (Exod. 4:1).
그리고 모세가 애급인을 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수로 인한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 탕감기간을 다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30년이나 더 고역을 당함으로써(출 12 : 41), 그들의 탄식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어 하나님의 긍휼(矜恤)을 자아내게 되었었다는 사실이다(출 2 : 24∼25).
There was yet another reason why Moses could strike the Egyptians. Although the Israelites had already completed the due indemnity period of four hundred years as slaves in Egypt, they had suffered thirty additional years of affliction (Exod. 12:41). God heard their cries and groaning and answered them with compassion (Exod. 2:24-25).
3대 기적은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 있어서 무엇을 예시하셨던가?
The three signs which God provided for Moses and Aaron to perform foreshadowed the work of Jesus.
첫째 기적은,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보여 주신 대로(출 4 : 3∼9) 모세의 명령에 의하여 아론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던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이것을 본 바로도 그의 술객(術客)들을 불러 지팡이를 던지게 하자 그것들도 역시 뱀이 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변하여서 된 뱀이 그들의 것을 모두 삼켜 버렸다(출 7 : 10∼12).
The first sign was given when God commanded Moses to cast down his staff, and it became a serpent (Exod. 4:3-9). When Aaron later performed this sign before the Pharaoh at Moses’ command, the Pharaoh summoned his magicians and had them cast down their staffs, which also became serpents; but Aaron’s serpent devoured their serpents (Exod. 7:10-12).
그러면 이 기적(奇蹟)은 무엇을 예시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구주(救主)로 오셔서 사탄세계를 멸하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하나님 대신 신(神)으로 세워진 모세(출 7 : 1) 앞에서 기적을 나타냈던 그 지팡이는, 장차 하나님 앞에서 이렇듯 기적을 나타내실 권능적인 면에서의 예수님을 상징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또 지팡이는 대신 의지자며 대신 보호자로서 불의(不義)를 쳐서 바른 길잡이의 사명을 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전인류 앞에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오실 것을 보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사명적인 면에서의 예수님을 상징하기도 했던 것이다.
This sign symbolically foreshadowed that Jesus would come as the Savior and destroy the satanic world.The staff symbolized Jesus. Just as the staff displayed miraculous power in front of Moses, who represented God, Jesus was to come with such power and perform miracles before God Himself. Moreover, a staff provides protection and support for people to lean on; it smites injustice and leads people on the right path. Symbolizing Jesus, Moses’ staff disclosed the missions which Jesus was to accomplish at his coming.
그리고 예수님을 상징하는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또한 뱀의 역할도 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예수님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 : 14)라고 자기를 뱀으로 비유하셨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로우라(마 10 : 16)고도 하셨다. 이것은 원래 인간 조상이 악한 뱀에게 꼬임을 당하여 타락되었으니,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선한 지혜의 뱀으로 오셔서 악한 인간들을 꼬여 선으로 인도해야 되기 때문에, 제자들도 선한 뱀으로 오신 예수님의 지혜를 본받아 악인(惡人)들을 선도(善導)해야 된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다. 한편 또 모세의 뱀이 술객의 뱀을 삼켰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늘 뱀으로 오셔서 사탄 뱀을 삼켜 멸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The transformation of Moses’ staff into a serpent also symbolized the work of Jesus. Jesus likened himself to a serpent, saying,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John 3:14). He also said to his disciples, “Be wise as serpents” (Matt. 10:16). Jesus meant by this saying that he came as the good serpent of wisdom who entices and leads fallen people on the path of goodness. He was thus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all caused by the evil serpent who cunningly tempted the first human ancestors. Therefore, his disciples were to learn Jesus’ wisdom and guide the sinful people in the way of goodness. Moreover, when Moses’ serpent devoured the magicians’ serpents, it signified that Jesus would come as the heavenly serpent to swallow up and destroy Satan, the evil serpent.
둘째 기적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모세가 첫번 손을 품었을 때 그 손이 문둥병에 걸렸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그 손을 다시 품었을 때 그 병든 손이 깨끗이 나아 버렸던 것이다(출 4 : 6∼7). 이 기적은 장차 예수님이 후아담으로 오셔서 후해와의 신성(神性)이신 성신(전편 제7장 제4절 Ⅰ)과 더불어 속죄(贖罪)의 역사(役事)를 하시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The second sign was given when Moses, upon God’s command, put his hand into his bosom and it became leprous. Then God commanded him to put his hand into his bosom a second time, and it was healed (Exod. 4:6-7). This miracle foreshadowed symbolically that Jesus would come as the second Adam and, together with his would-be Bride (the second Eve, later manifested in the Holy Spirit) perform the work of redemption.
첫번 손을 품음으로써 고칠 수 없는 문둥병에 걸렸다는 것은, 처음에 천사장(天使長)이 해와를 품음으로써 인간이 구원받을 수 없는 입장으로 타락해 버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손을 다시 품어서 병이 깨끗해졌다는 것은, 인류의 부성신(父聖神) 되신 예수님이 오셔서 인류의 모성신(母聖神) 되신 성신(전편 제7장 제4절 Ⅰ)을 복귀하여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마 23 : 37) 전인류를 다시 품어 중생(重生)시킴으로써 완전복귀한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었다.
The first time Moses put his hand into his bosom and it became leprous symbolized the Archangel embracing Eve to his bosom, an act which tainted humanity with incurable sin. The second time Moses put his hand into his bosom and it was healed foreshadowed that Jesus, the True Father, would come and restore his Bride, the True Mother, and that they would embrace humanity to give them rebirth “as a hen gathers her brood under her wings” (Matt. 23:37). Restoration would then be complete.
셋째 기적은, 강물을 육지에 부어서 피가 되게 한 것이었다(출 4 : 9). 이것은 무기물(물)과 같은 생명 없는 존재가 유기물(피)과 같은 생명 있는 존재로 복귀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물은 타락되어 생명을 잃은 세상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계 17 : 15), 이 기적은 장차 예수와 성신이 오셔서 생명을 잃어버린 타락인간들을 생명 있는 자녀로 복귀시킨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었다.
To perform the third sign, God instructed Moses to pour water from the Nile on the ground and it would turn to blood (Exod. 4:9). The symbolism of this sign lies in water, an inorganic substance, being transformed into blood, the substance of life. Water is a biblical symbol for the fallen multitudes (Rev. 17:15) who have no life in them. Thus, this sign foreshadowed that Jesus and the Holy Spirit would come and resurrect fallen humanity, deprived of life, to become the living children of God.
위와 같은 3권능을 나타내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장차 예수님과 성신이 인류의 참부모로 오셔서 전인류를 자녀로 복귀하고, 사탄에게 빼앗겼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사위기대(四位基臺)를 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God had Moses and Aaron perform these three signs in order to fulfill symbolic indemnity conditions upon which Jesus and the Holy Spirit would later come to Israel as the True Parents. They would restore the original four position foundation which had been lost to Satan and give rebirth to all humanity as their children.
다음으로 모세가 하나님에게 자기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의 형 아론(출 4 : 14)과 아론의 누이가 되는 여선지(女先知) 미리암(출 15 : 20)을 주셨다. 이것은 장차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님(요 1 : 14)과 성신이 오셔서 타락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어버린 인간을 말씀의 실체로 복귀하실 것을 형상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론과 미리암이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입장인 모세의 뜻을 받들고 그의 대신으로 영도(領導)의 사명을 했던 것은, 장차 예수님과 성신(聖神)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대신 속죄(贖罪) 사명을 하실 것을 형상적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When Moses, who was not eloquent, asked God for someone to speak on his behalf, God provided Moses’ older brother Aaron (Exod. 4:14), and also Miriam the prophetess, Aaron’s sister (Exod. 15:20). This symbolically foreshadowed that Jesus and his would-be Bride, the incarnations of the Word (John 1:14), would come and restore human beings – who had lost the Word at the Fall – as the incarnations of the Word. In the course to restore Canaan, Aaron and Miriam were given the mission to uphold the will of Moses, who was in the position of God, and to exercise leadership on his behalf. In the future, Jesus and the Holy Spirit would uphold the Will of God in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and take on the mission to redeem our sin.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도중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 그때에 모세는 그의 처(妻) 십보라가 그의 아들을 할례(割禮)함으로써 죽음을 모면하였던 것이다 (출 4 : 24∼26). 모세는 할례로써 그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그의 가족이 살아났었고,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埃及)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도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할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보여 준 것이었다.
At God’s command, Moses went to meet the Pharaoh. On his way, the Lord appeared before him and tried to kill him. Moses’ life was saved when his wife Zipporah circumcised their son (Exod. 4:24-26). She helped Moses overcome the trial and saved their family. This circumcision made it possible for the Israelites to be liberated from Egypt. It foreshadowed that even when Jesus came, God’s work of salvation could not be accomplished unless the people underwent an internal circumcision.
그러면 할례는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간 조상은 사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음에 따라 양부(陽部)를 통하여 사망의 피를 받았았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 탕감조건(蕩減條件)으로 양부를 쳐서 피를 냄으로써 그 사망의 피를 뽑았다는 표시의 조건으로 할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할례의 근본 의의는 첫째로 사망의 피를 뽑는 표요, 둘째로는 남자의 주관성(主管性)을 다시 찾는 표이며, 셋째로는 본성(本性)의 자녀의 입장을 다시 찾는 약속의 표인 것이다. 그런데 할례의 종류에는 마음할례(신 10 : 16), 육신할례(창 17 : 10), 만물할례(레 19 : 23) 등 세 종류가 있다.
Let us examine the deeper significance of circumcision. When the first human ancestors fell through a sexual relationship with Satan, they inherited the blood of death through the male sexual organ. In the course for fallen people to be restored as God’s children, God established the rite of circumcision as a condition of indemnity: cutting the foreskin of the male sexual organ and letting blood flow from it. Circumcision signifies removing the blood of death. Circumcision is also a sign of the restoration of man’s right of dominion and a sign of promise that God will restore people as His true children. There are three types of circumcision: circumcision of the heart (Deut. 10:16), circumcision of the foreskin (Gen. 17:10), and circumcision of all things (Lev. 19:22-23).
다음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10재앙(十災殃)의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구출하셨으니(출 7 : 10∼12 : 36), 이것도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로써 하나님의 선민(選民)을 구원하실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야곱이 하란에서 21년 간의 고역(苦役)을 할 때에 라반이 응당 야곱에게 주어야 할 품삯을 주지 않고 열 번이나 그를 속였었다(창 31 : 7). 그렇기 때문에 야곱노정을 걷는 모세노정에 있어서도,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도에 넘는 고역을 시켰을 뿐 아니라 열 번이나 그들을 놓아 준다고 하면서 매번 속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탕감으로 10재앙을 내려 바로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Through the ten plagues, God had Moses liberate the Israelites from Egypt (Exod. 7:14-12:36). This, too, foreshadowed that in the future Jesus would come with miracles and signs to save God’s chosen people. When Jacob was suffering twenty-one years of hardship in Haran, Laban cheated Jacob ten times and did not give him his due wages (Gen. 31:7). Likewise, in Moses’ course, which was patterned after Jacob’s course, the Pharaoh not only continued to afflict the Israelites beyond the preordained time period, he also deceived them ten times with the false promise that he would release them. As recompense for this, God was entitled to strike the Pharaoh with the ten plagues.
그러면 이 재앙(災殃)들은 또 무엇을 예시(豫示)하셨는가를 알아보자.
Among them, the ninth and tenth plagues had particular significance.
애급편에는 3일 간의 어둠이 있었고 이스라엘에게는 3일 간의 광명이 있었으니,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사탄편은 흑암이요, 하늘편은 광명으로 분기(分岐)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For the ninth plague, God blanketed Egypt in thick darkness for three days, while in the places where the Israelites dwelt there was light (Exod. 10:21-23). This foreshadowed that when Jesus came, darkness would blanket Satan’s realm while light would shine upon God’s people, and the two sides would be separated.
다음으로 하나님은 애급(埃及)의 장자(長子)와 육축(育畜)의 맏것을 모조리 쳤으나 이스라엘은 양(羊)의 피로써 이것을 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탄편에 있어서의 장자는 가인의 입장이므로 이것을 쳐서 아벨의 입장인 차자(次子)로 하여금 장자의 입장을 복귀케 하기 위함이었다. 이 재앙도 역시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당초에 장자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섭리노정(攝理路程)을 먼저 출발한 사탄편은 망하고, 차자의 입장인 하늘편은 예수님의 피의 대속(代贖)으로 인하여 구원(救援)을 받는다는 것을 미리 보여 준 것이었다.
For the tenth plague, God killed all the firstborn among the Egyptians and their cattle, while instructing the Israelites to paint lamb’s blood on the lintel and door posts of their houses so that the angel of death would pass over them. The firstborn of the Egyptians, on the satanic side, were in the position of Cain. God struck them in order to restore the Israelites, in the position of the second son Abel, to the position of the eldest son. Satan had seized the position of the eldest son and thus took the lead in the course of history, leaving God in pursuit (cf. Parallels 7). This plague foreshadowed that at Jesus’ coming, the side of Satan would perish, while God’s side, in the position of the second son, would be saved by the redemption of Jesus’ blood.
모세는 또 애급에서 많은 재물을 취해 가지고 왔는데(출 12 : 35∼36), 이것도 장차 있을 예수님의 만물복귀(萬物復歸)를 미리 보여 준 것이었다.
Moses brought abundant wealth out of Egypt (Exod. 12:35-36). This foreshadowed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to take place at Jesus’ coming.
하나님은 재앙의 이적을 내리실 때마다 바로의 마음을 강퍅(剛愎)하게 하셨으니(출 10 : 27), 그 이유는 첫째 바로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시어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고(출 10 : 1∼2), 둘째로는 바로로 하여금 있는 힘을 다하여서 이스라엘 민족을 붙잡다가 할수없이 단념하게 하심으로써, 자기의 무력함을 깨닫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난 후에도 그들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바로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하여 애급에 대한 미련을 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After each plague, God hardened the Pharaoh’s heart (Exod. 4:21); (Exod. 10:27). There were several reasons for this. First, by repeatedly manifesting His powers, God wanted to show the Israelites that He was God (Exod. 10:1-2). Second, God wanted the Pharaoh to make his best efforts in holding on to the Israelites before forcing him to give them up; then the Pharaoh would realize how powerless he was and abandon any lingering attachment to the Israelites after they left. Third, God wanted the Israelites to cut off their attachment to Egypt by provoking in them strong feelings of hostility against the Pharaoh.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이는 것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도리어 불신하였기 때문에 이 노정은 출발도 해 보지 못한 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 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그 ‘출발을 위한 섭리’로서 보여 주신 3대 기적(三大奇蹟)과 10재앙(十災殃)을 보고, 모세야말로 하나님이 보내 주신 진정한 이스라엘의 영도자(領導者)라는 것을 믿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모세를 믿고 따르는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드디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었다.
Go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Moses killed the Egyptian. However, this course was aborted when the people distrusted Moses. In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national course, God granted the Israelites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When the Israelites witnessed these miracles, they came to believe that Moses was truly sent by God as their leader. They believed and followed Moses, the Abel figure who had laid the national foundation of faith. Hence, the Israelites could embark upo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일시적으로 이와 같이 모세에게 순종굴복(順從屈伏)하였다고 해서 그것으로 곧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사탄이 침범하여 오랜 섭리의 기간을 사탄에게 내주었던 것이므로, 모세에 대하여 가인의 입장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기간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하여 이 광야노정의 전기간을 두고 순종과 굴복으로 모세를 믿고 따라가지 않고서는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하여 광야노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However,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required more of the Israelites than a short-lived trust in and obedience to Moses while he was working these miracles. Due to their previous failure to fulfill this condition, Satan had claimed the entire providential course to restore Canaan. Now the Israelites had to restore that course by remaining faithful and obedient to Moses for the duration of their journey. Only in this way would they fulfill the national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Until they had traversed the wilderness with unwavering faith in Moses and entered the land of Canaan, the national foundation of substance would not be established.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제2차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있어서는 그 1차 때보다도 더 큰 은사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으므로, 제2차 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이 세워야 할 탕감조건(蕩減條件)은 더 가중되었던 것이다. 즉 제1차 노정에 있어서는 그들이 모세를 믿고 따르기만 하였더라면, 블레셋의 곧은 길로 인도되어 야곱의 하란노정 기간 수인 21일 간이면 가나안 복지(福地)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제2차 노정에 있어서는 출애굽기 13장 17절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만일 그들이 블레셋 땅의 곧은 길로 인도되면 전쟁을 보고 두려워함으로써 제1차 노정 때와 같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애급 땅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시어, 하나님은 그들을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홍해(紅海)를 건너고 시내광야를 돌아 21개월 걸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을 취하게 하셨던 것이다.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conducted with greater grace than that of the first course. Yet, since the prolongation had been due to their disbelief, the indemnity condition which the Israelites would have to fulfill was correspondingly heavier. In the first course, if the Israelites had followed Moses, they would have been led along the direct route by way of the land of the Philistines and would have entered Canaan in twenty-one days – a period corresponding to Jacob’s twenty-one-year course in Haran. However, in the second course, God did not lead the people along the direct route. He was worried that when they encountered the warlike Philistines, they might again turn faithless and return to Egypt (Exod. 13:17). Instead, God led them across the Red Sea and through the wilderness in a long detour. God planned to bring them into Canaan after twenty-one months.
이와 같이 되어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21개월 광야노정(曠野路程)을 출발하게 되었다.
Thus, the Israelites began a twenty-one-month wilderness course under Moses’ leadership.
그러면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와같이, 이 노정이 어떻게 장차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본보기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Let us study this course and examine how it served as the model course for Jesus to lead humanity on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모세에게 굴복한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거기에서 희생(犧牲)을 드릴 것을 허락했을 때에, 모세는 그리함은 불가하나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출 8 : 26∼27)라는 말로써 바로를 속여 자유허여(自由許與)의 3일 간을 얻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나왔다.
When the Pharaoh grudgingly gave Moses permission for the Israelites to make sacrifices in Egypt, Moses demanded more, saying: It would not be right to do so; for we shall sacrifice to the Lord our God offerings abominable to the Egyptians. If we sacrifice offerings abominable to the Egyptians before their eyes, will they not stone us? We must go three days’ journey into the wilderness and sacrifice to the Lord our God as he will command us (Exod. 8:26-27).
이 3일 기간은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 헌제를 위하여 사탄 분립에 요(要)한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 후 이것은 섭리노정(攝理路程)을 출발할 때마다 사탄 분립에 필요한 탕감기간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야곱이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 할 때에도 라반을 속이고 하란을 떠나 사탄을 분립한 3일 기간이 있었다(창 31 : 19 ∼22). 이와 마찬가지로 모세에게도 그가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서는 바로를 속이고 자유행동을 취하여 사탄을 분립하는 3일 기간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후일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사탄 분립을 위한 부활 3일 기간이 있은 후에야 영적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출발을 하시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 것도 되었다.
Moses asked for three days’ leave with the intention to deceive the Pharaoh and lead the people out of Egypt altogether. This three-day period had the same significance as Abraham’s three-day journey to Mt. Moriah, which he needed in order to sever his ties to Satan before he could offer Isaac as a sacrifice. Since Abraham’s time, this has been the indemnity period require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at the outset of a providential course. When Jacob embarked upon th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re was a three-day period when he cut off ties to Satan by deceiving Laban and leaving Haran (Gen. 31:19-22). Likewise, at the outset of this national course, Moses asked for a leave of three days with the intention of deceiving the Pharaoh and liberating his people from bondage.Jesus, too, would begin the spiritual course of restoration only after passing through three days for the separation of Satan before his victorious resurrection.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장정(壯丁) 60만 명이 라암셋을 출발한 것은 정월 15일이었다(출 12 : 6∼ 37, 민 33 : 3).
The Israelites, who numbered some 600,000 according to the Bible, departed from Rameses on the fifteenth day of the first month by the Hebrew calendar (Exod. 12:37); (Num. 33:3).
이스라엘 민족이 3일 기간을 뜻맞게 세워 숙곳에 이른 후에는, 하늘이 은사를 내리시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셨다(출 13 : 21). 모세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낮(양)의 구름기둥은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으로 인도할 예수님을 표시하였고, 밤(음)의 불기둥은 여성신(女性神)으로서 그들을 인도할 성신(聖神)을 상징했던 것이다.
They upheld God’s Will throughout the three-day journey to their first campsite at Succoth. From that time forth, God granted them the grace of a pillar of cloud by day and a pillar of fire by night to guide their way (Exod. 13:21). The pillar of cloud which led the Israelites by day (yang) symbolized Jesus, who would one day lead the people of Israel in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pillar of fire by night (yin) symbolized the Holy Spirit, who would guide them as the feminine Spirit.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팡이로 홍해(紅海)를 갈라 세워 이것을 육지와 같이 건넜으나 그들의 뒤를 추격해 오던 애급의 병거는 다 수장(水葬)되어 버리고 말았었다(출 14 : 21∼28).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바로 앞에 선 모세는 하나님을 상징하였고(출 7 : 1),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이 기적은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 사탄은 예수님을 따라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걷는 신앙자들의 뒤를 추격할 것이지만, 지팡이의 사명자로 오시는 예수님이 철장(鐵杖)으로(계 2 : 27, 시 2 : 9) 그들 앞에 가로놓인 이 고해(苦海)의 세상을 치면 이 고해도 평탄한 길로 갈라질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갈 길은 열리고 추격하는 사탄은 멸망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At the shore of the Red Sea, upon God’s command, Moses stretched out his staff and parted the waters; then he led the Israelites across on dry ground. The Egyptians chasing them in chariots were drowned when the waters closed up and engulfed them (Exod. 14:21-28). As was explained earlier, Moses represented God before the Pharaoh (Exod. 7:1), and Moses’ staff symbolized Jesus, who would manifest God’s power in the future. Hence, this miracle foreshadowed what was to happen when Jesus came. Satan would pursue the faithful ones who followed Jesus in walking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but Jesus would raise the rod of iron and strike the troubled sea of this world. The waters would divide and reveal a smooth path upon which the believers would walk, while Satan in pursuit would perish.
전편 말세론(末世論)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철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7장 15절에는 이 죄악세상을 물로 비유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을 고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통념(通念)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너서 애급(埃及)을 떠난 후 제2월 15일에 신광야에 이르렀다(출 16 : 1). 이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이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만나와 메추리를 내려 먹이셨으니(출 16 : 13∼ 35),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인간의 생명의 요소인 예수님의 살(만나)과 피(메추리)를 모든 인간에게 주실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 4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너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The Israelites crossed the Red Sea and arrived at the wilderness of Sin on the fifteenth day of the second month. From then until the day they arrived at habitable land, God fed them with manna and quail (Exod. 16:13-35). The manna and quail signified the life-giving flesh and blood of Jesus, which God would provide during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us, Jesus said: Your fathers ate the manna in the wilderness, and they died. . . . I am the living bread which came down from heaven; if anyone eats of this bread, he will live forever . . . unless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ou have no life in you (John 6:49-53).
이스라엘 민족이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 장막(帳幕)을 쳤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시어 호렙산의 반석(磐石)을 쳐서 물을 내어 그들에게 먹이셨다(출 17 : 6).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으니, 이 행사는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생명수(生命水) 샘물로(요 4 : 14) 모든 사람을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When the Israelites left the wilderness of Sin and camped at Rephidim, there was no water for the people to drink. God commanded Moses to strike the rock at Horeb that water might spring forth from it. Moses did so and gave the people water which saved their lives (Exod. 17:6). St. Paul wrote, “The Rock was Christ” (I Cor. 10:4). Accordingly, the miracle of water from the rock foreshadowed that the Messiah would save all humanity with the water of life, of which Jesus said, “Whoever drinks of the water that I shall give him will never thirst” (John 4:14).
모세가 다음에 시내산에서 받게 되는 두 석판(石板)도 예수와 성신(聖神)을 상징하지만, 반석(磐石)은 석판의 뿌리가 되므로 이것은 또한 하나님도 상징한다. 모세가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을 쳐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 민족을 먹여 살린 터전이 있기 때문에, 이 터전 위에서 모세가 석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법궤(法櫃)와 성막(聖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The two tablets of stone Moses received on Mt. Sinai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the rock, which was the root of the tablets of stone, symbolized God. When Moses struck the rock and gave the people water, this laid the foundation upon which Moses could receive the tablets of stone and build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
여호수아가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손을 내리면 패하였다. 그러므로 아론과 훌은 돌을 쌓아 모세를 그 위에 앉히고, 그의 손이 내려지지 않도록 좌우에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싸운 여호수아는 아말렉 왕과 그 백성을 쳐서 승리하였다(출 17 : 10∼13). 이것도 장차 예수께서 오실 때에 되어질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었으니, 여호수아는 예수를 믿는 신앙자를, 아말렉은 사탄세계를, 그리고 아론과 훌은 예수님과 성신을 각각 상징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고 서 있는 그 앞에서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멸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님과 성신의 삼위신(三位神)을 모신 신앙자들은 그 앞에 오는 모든 사탄을 멸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하신 것이었다.
Joshua fought with the Amalekites at Rephidim. Whenever Moses held up his hands, the Israelites prevailed; whenever Moses let his hands drop, they suffered a reverse. Aaron and Hur had Moses sit on a pile of stones and held his hands up on the left and the right, thus enabling Joshua to vanquish the king of the Amalekites and his troops (Exod. 17:10-13). This also foreshadowed what would happen when Jesus came. Joshua symbolized the believers, the Amalekites symbolized the satanic world, and Aaron and Hur symbolized Jesus and the Holy Spirit. Aaron and Hur holding up Moses’ hands and enabling Joshua to vanquish the Amalekites foreshadowed that faithful people who worship the Trinity – God, Jesus and the Holy Spirit – will defeat every devil who confronts them.
(3) 성막을 중심한 복귀섭리
2.2.2.3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the Tabernacle
우리는 먼저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받게 된 경위를 알아야겠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말렉과 싸워서 승리한 후 제3월 초에 시내광야에 이르렀다(출 19 : 1). 여기에서 모세는 장로(長老) 70인을 거느리고 시내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뵈었다(출 24 : 9∼10). 하나님은 특별히 모세를 시내산정(山頂)으로 부르시사, 석판에 기록한 십계명(十誡命)을 받기 위하여 40주야의 금식(禁食)을 하라고 명하셨다(출 24 : 18). 모세는 시내산에서 금식을 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법궤와 성막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출 25∼31장). 그리고 40일 간의 금식이 끝났을 때 모세는 십계명을 기록한 두 석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것이다(출 31 : 18).
The Israelites received the tablets of stone,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Let us first examine how they received them. The Israelites arrived in the wilderness of Sinai at the beginning of the third month, after their victory over the Amalekites (Exod. 19:1). Moses then took seventy elders and climbed Mt. Sinai to meet God. Moses alone was called to the summit of Mt. Sinai, where God commanded him to fast for forty days to receive the Ten Commandments inscribed on the tablets of stone (Exod. 24:9-10, 18). During his fast, Moses received God’s instructions concerning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 (Exod. 25-31). When the forty-day fast was over, Moses received two tablets of stone, inscribed by the finger of God with the Ten Commandments (Exod. 31:18).
모세가 이 석판(石板)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들은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埃及)에서 인도한 신(神)이라고 섬기고 있었다(출 32 : 4). 이것을 본 모세는 대로(大怒)하여 손에 들었던 석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출 32 : 19).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처음 것과 같은 석판을 깎아 만들어 오면 거기에 다시 십계명의 말씀을 써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 34 : 1). 이 말씀을 받은 모세가 다시 40주야를 금식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의 석판에 다시 십계명을 기록하여 주셨다(출 34 : 28). 모세가 이 석판을 가지고 다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타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모세를 받들게 되어 법궤를 만들고 성막을 건축하였던 것이다(출 35∼40장).
When Moses came down from Mt. Sinai with the two tablets of stone and went before the Israelites, he found them worshipping a golden calf. During Moses’ absence, they had instructed Aaron to make it, and when he had fashioned it, they proclaimed that this was the god who had led them out of Egypt. Moses’ anger burned hot when he saw this. He threw down the tablets of stone and broke them at the foot of the mountain (Exod. 32:1-19). God appeared again to Moses and told him to carve another pair of stone tablets identical to the first pair, promising that He would inscribe the Ten Commandments on them again. Moses presented himself before God on the mountain and fasted for forty days a second time. God dictated the Ten Commandments to Moses, and Moses wrote them on the tablets (Exod. 34:1, 27-28). Moses took these tablets and went before the Israelites again. This time they honored Moses. In obedience to his directions, they built the Ark of the Covenant and constructed the Tabernacle (Exod. 35-40).
㉠. 석판 성막 법궤 등의 의의와 그 목적
2.2.2.3.1 The Significance and Purpose of the Tablets of Stone,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석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세가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을 받았다는 것은, 타락으로 인하여 제물로만 하나님을 대해 오던 복귀기대섭리시대(復歸基臺攝理時代)는 지나가고, 타락인간이 말씀을 복귀하여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에로 들어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후편 서론(緖論)에서 밝힌 바와 같이, 말씀으로 창조되었던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었더라면 그들은 말씀의 ‘완성실체’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됨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다.
What did the tablets of stone signify? When Moses received the tablets of stone inscribed with God’s Word, this signified the passing of the Age of the Providence to Lay the Foundation for Restoration, when fallen people could relate with God only through sacrifices, and the beginning of the Ag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hen they could relate with God through the revealed Word. It was previously explained that if Adam and Eve, who were created by the Word, had become perfect, they would have become the incarnations of the Word. Instead, they fell and lost the Word (cf. Restoration 1.2.1).
이제 모세가 ‘40일 사탄 분립기간’으로써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石板)을 찾았다는 것은, 사탄세계로부터 잃어버렸던 아담과 해와를 상징적인 말씀의 실체로 복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은 복귀한 아담과 해와의 상징체로서 장차 말씀의 실체로 오실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했던 것이다. 성경에 예수님을 흰 돌로 상징하였고(계 2 : 17), 또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전 10 : 4)라고 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두 석판은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기 때문에, 결국 이것들은 또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Moses received the two tablets inscribed with the Word at the end of a forty-day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This signified the symbolic restoration of Adam and Eve as incarnations of the Word. Accordingly, the two tablets symbolized restored Adam and Eve, and also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who were to come as the incarnations of the Word. Christ is symbolized in the Bible by a white stone (Rev. 2:17), and it is written, “the Rock was Christ” (I Cor. 10:4). As symbols of Jesus and his would-be Bride, the tablets of stone were also symbols of heaven and earth.
다음으로, 성막(聖幕)의 의의는 무엇이었던가?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聖殿)을 자기의 몸으로 비유하셨다(요 2 : 21). 그리고 또 예수님을 믿는 성도(聖徒)들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던 것이다(고전 3 : 16). 그러므로 성전은 예수님의 형상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모세를 중 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1차 가나안 복귀에 성공하였더라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곧 성전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제1차 노정은 출발조차도 해 보지 못하였고, 제2차 노정에서는 홍해(紅海)를 건너 광야에서 표류하게 되었으므로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그 대신 성막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은 예수님의 상징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명하실 때에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출 25 : 8)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Next, what did the Tabernacle symbolize? Jesus likened his body to the Temple in Jerusalem (John 2:19-21). We who believe in him are called God’s temples (I Cor. 3:16). The Temple was thus a representation of Jesus in image. If the Israelites had succeeded in the first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Moses’ leadership, then as soon as they entered the land of Canaan they would have built the Temple and prepared to receive the Messiah. Yet due to their disbelief, the first course was aborted at the start. In the second course, God led them in a roundabout way across the Red Sea and through the wilderness. God could not have them build the Temple, but instead had to settle for the Tabernacle, which could be moved from place to place, as its substitute. Like the Temple, the Tabernacle was a representation of Jesus, but in symbol. When God commanded Moses to build the Tabernacle, He said, “And let them make me a sanctuary, that I may dwell in their midst” (Exod. 25:8).
성막은 지성소(至聖所)와 성소(聖所)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지성소는 대제사장(大祭司長)만이 일년에 한 번씩 들어가 헌제(獻祭)를 하는 곳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법궤가 안치되어 있어서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곳이므로 이것은 예수님의 영인체(靈人體)를 상징한 것이었고, 성소는 보통 제사 때에 들어가는 곳으로서 이것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 것이었다. 따라서 지성소는 무형실체세계(無形實體世界)를, 성소는 유형실체세계(有形實體世界)를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위로부터 둘로 갈라졌다는 것은(마 27 : 51),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영적 구원섭리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영인체와 육신 또는 하늘과 땅이 서로 교통(交通)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The Tabernacle was divided into two parts: the holy place (sanctuary) and the most holy place (holy of holies). Only the high priest could enter the most holy place, and only once a year when making the sacrifice of the Day of Atonement. The most holy place was where the Ark of the Covenant was kept. Here was the place where God made Himself present. It symbolized the spirit of Jesus. The holy place contained a lampstand, an incense altar and a table for the bread of the Presence, which were tended daily by the priests. It symbolized the body of Jesus. Furthermore, the most holy place symbolized the spiritual world, while the holy place symbolized the physical world. When Jesus was crucified, the curtain between the holy place and the most holy plac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 (Matt. 27:51). This meant that Jesus’ crucifixion laid the basis for spiritual salvation, when the gate was opened between spirit and flesh, or between heaven and earth.
그러면 법궤(法櫃)는 무엇이었던가? 법궤는 지성소에 안치하는 언약궤(言約櫃)로서 그 속에는 예수님과 성신, 따라서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두 석판(石板)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거기에는 광야노정(曠野路程)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생명의 양식이었고, 또한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만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표상(表象)하는 금항아리에 담긴 것이 들어 있었으며, 또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었던 아론의 싹난 지팡이(히 9 : 4)가 거기에 들어 있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법궤는 크게는 천주(天宙)의, 작게는 성막(聖幕)의 축소체였던 것이다.
What did the Ark of the Covenant symbolize? Enshrined in the most holy place, the Ark contained the testimonies to God’s covenant. It contained the two tablets of stone, which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and heaven and earth. It also contained manna, the main staple of the Israelites during the wilderness course, which symbolized the body of Jesus. The manna was placed inside a golden urn, which symbolized the glory of God. The Ark of the Covenant also contained Aaron’s staff, which had demonstrated God’s power by budding and putting forth sprouts (Heb. 9:4). The Ark thus represented the cosmos and, at the same time, was a smaller representation of the Tabernacle.
그리고 법궤 위에는 속죄소(贖罪所)가 덮였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금으로 두 그룹을 쳐서 만들어 속죄소의 좌우에 덮으면, 두 그룹 사이에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 모든 말씀을 주시겠다고 하셨다(출 25 : 16∼22). 이것은 장차 두 석판으로 표시된 예수님과 성신이 오시어 역사(役事)하시게 됨으로써 속죄(贖罪)가 성립되면 그 속죄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동시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던 그룹(창 3 : 24)이 좌우로 갈라져서 누구든지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The mercy seat was placed on top of the Ark of the Covenant. Two cherubim made of hammered gold were placed on either end of the mercy seat, overshadowing it with their wings. God promised that He would personally appear above the mercy seat, between the cherubim, and there He would give guidance to the Israelites (Exod. 25:17-22). This foreshadowed that when Jesus and his Bride, symbolized by the tablets of stone, come and cleanse the people’s sins, God would appear over the mercy seat and open a path between the cherubim which had blocked the way to the tree of life in the Garden of Eden (Gen. 3:24). Everyone would then be able to come before Jesus, the tree of life, and receive the fullness of God’s Word.
그러면 하나님이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를 주신 목적은 어디 있는가?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수로 초래된 400년 탕감기간을 마치자 3대 기적과 10재앙으로 애급민족(埃及民族)을 치고, 추격해 오던 애급의 수많은 군사와 병거를 수장(水葬)하고서 홍해(紅海)를 건너 광야 길로 나섰다. 하나님의 뜻으로 보아서도 그러하지만, 이처럼 원수를 맺고 떠난 애급이었기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나안 복귀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하는 노정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출발을 위한 섭리’를 그처럼 기사(奇事)와 이적(異蹟)으로 하셨고, 또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환경 가운데로 몰아넣으셨던 것이다.
For what purpose did God give the tablets of stone,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When the Israelites set out for the wilderness after completing the four-hundred-year indemnity period incurred due to Abraham’s mistake in the offering, God struck the Egyptians with signs and plagues and drowned a host of Egyptian soldiers who tried to follow the Israelites across the Red Sea. The Israelites could not return to Egypt, not only because God’s Will forbade it, but because they had become bitter enemies of the Egyptians. They had no choice but to complete the journey to Canaan; God had driven them to the point of no return.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불신으로 흘러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최후에는 모세마저 불신의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는 터이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비록 사람은 변하여도 변할 수 없는 그 어떠한 신앙의 대상을 세워 놓으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즉 언제나 단 한 사람이라도 이것을 절대로 신봉(信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신앙의 대상을 마치 바통과 같이 이어받게 하면서 섭리(攝理)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려 하셨던 것이다.
Nevertheless, the Israelites repeatedly fell into faithlessness during their journey. In the end, there was danger that even Moses might act faithlessly. To cope with this situation, God set up an object of faith, one which would remain unchanged even though the people might change. As long as even one person revered the object with absolute faith, God could continue the providential Will through him. That person would inherit the mission to attend the object of faith, as a baton is handed from one runner to the next in a relay race.
그러면 이러한 신앙의 대상을 무엇으로 세워야 할 것이었던가? 석판이 들어 있는 법궤를 안치함으로써 메시아를 상징하였던 성막(聖幕)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지었다는 것은 벌써 메시아가 상징적으로 강림(降臨)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The Tabernacle, enshrining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lets of stone, was this object of faith. Since the Tabernacle represented the Messiah, when the Israelites built the Tabernacle, it signified that the Messiah had already come in a symbolic sense.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이 성막을 메시아와 같이 충성으로 받들어 가나안 복지(福地)로 복귀하면,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그때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더라도 모세 한 사람만이라도 남아서 그 성막을 지키면, 그 민족은 다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워 가지고 성막을 모시는 모세를 중심한 그 기대 위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설혹 모세마저 불신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민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모세를 대신하여 끝까지 성막을 지킨다면 또 그를 중심삼고 불신으로 돌아간 나머지 전민족을 복귀하는 섭리를 다시 하실 수 있는 것이었다.
The Israelites were to revere and honor the Tabernacle as if it were the Messiah and to return to the blessed land of Canaan under Moses’ leadership. Thus, they would establish the national foundation of substance. Even if all the Israelites were to fall into faithlessness along the way, as long as Moses continued to exalt the Tabernacle, the people would then be allowed to indemnify their faithlessness and be restored upon Moses’ intact foundation. Furthermore, if even Moses were to become faithless, as long as any single Israelite exalted the Tabernacle in Moses’ place, God could work through that person to restore all the people.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모세의 가정은 성막 대신이요, 모세는 석판과 법궤 대신이며, 또 모세의 가법(家法)은 천법(天法) 대신이 되었을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석판이나 법궤나 성막이 필요 없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聖殿)을 지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감에 따라 그들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이었다. 성막은 예수님과 성신(聖神)의 상징적인 표시체로서 성전을 지을 때까지 필요한 것이었고, 성전은 예수님과 성신의 형상적 표시체로서 실체성전(實體聖殿)이신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까지 필요했던 것이다.
If the Israelites had trusted Moses and entered Canaan in the first national course, Moses’ family would have served in the role of the Tabernacle, and Moses himself would have fulfilled the roles which were taken by the tablets of ston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Moses’ family would have become the bearer of the heavenly law. The Israelites could then have built the Temple in the land of Canaan without any need for the tablets, the Ark, or the Tabernacle. These were given as the means of salvation only after the people had become faithless. The Tabernacle, as the representation in symbol of Jesus and his would-be Bride, was needed only until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The Temple, as the representation in image of Jesus and his would-be Bride, was needed only until the Messiah’s coming as the Temple incarnate.
㉡. 성막을 위한 기대
2.2.2.3.2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상징적 메시아인 성막을 맞기 위하여서도 ‘성막을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는,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워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하여서 이 두 기대를 세울 수 있었던가?
Just as a foundation must be laid before we can receive the Messiah, a foundation had to be laid before the Israelites could build and exalt the Tabernacle, the symbolic representation of the Messiah. Needless to say, to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foundations of faith and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had to be laid. Let us investigate how the Israelites were to lay these two foundations under the leadership of Moses.
모세가 성막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금식기도(禁食祈禱)로써 ‘40일 사탄 분립기간’을 뜻맞게 세우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는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성막이상(聖幕理想)을 세워 나아가는 모세에게 믿음으로써 순종굴복(順從屈伏)하면 성막을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지고,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성막이라 함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석판과 법궤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었다.
Moses was to follow God’s instructions and la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by fasting and praying for forty days, a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Upon this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the Israelites were to faithfully obey and support Moses as he worked to realize the ideal of the Tabernacle. They would thus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The Tabernacle in this discussion includes the tablets of ston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 제1차 성막을 위한 기대
2.2.2.3.2.1 The First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인간은 6일 만에 창조된 말씀의 실체이다(요 1 : 3). 따라서 이와 같이 창조되었다가 타락된 인간을 복귀하시기 위한 재창조(再創造)의 말씀을 주시려는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는 사탄의 침범을 당한 창조기간(創造期間)의 6수를 성별(聖別)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6일 동안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으로 시내산을 덮으심으로써 성별하신 후, 제7일에 그 구름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셨다(출 24 : 16). 모세는 이때부터 40주야를 금식하였던 것이다(출 24 : 18). 그것은 이미 위에서 상론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紅海)를 건넌 후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40일 사탄 분립기간’을 세우게 하심으로써, 상징적 메시아인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Human beings were created on the sixth day to become the incarnations of the Word (John 1:3). Hence, to give the Word of re-creation to fallen people for their restoration, God first had to restore the number six, representing the period of creation defiled by Satan. For this reason, God sanctified Mt. Sinai by covering it with clouds of glory for six days, and on the seventh day He appeared and called Moses from amidst the clouds. From that moment, Moses began his fast of forty days and forty nights (Exod. 24:16-18). God directed Moses to set up a forty-day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in order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the symbolic Messiah. God saw that this was necessary because the Israelites had fallen into faithlessness after crossing the Red Sea (Exod. 16:1-12); (Exod. 17:2-4).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은, 그들이 일시적으로 모세를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聖殿)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때까지 계속하여 그러한 입장에 서 있어야만 그것이 성립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논한 바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막(聖幕)을 세우기 위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는 데 있어서도,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40일 사탄 분립기간’을 지나서 성막을 세울 때까지 그를 믿고 모시고 순종해야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금식기도(禁食祈禱)를 하는 기간에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서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이스라엘을 애급(埃及)에서 인도해 낸 신(神)이라고 섬겼던 것이다(출 32 : 4).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하여 세워야 했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룰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As mentioned above,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during the Israelites’ course to restore Canaan could not be fulfilled by their believing and following Moses only for the short time that he manifested God’s power. Rather, its fulfillment required that the people maintain such faith and obedience until they entered Canaan, built the Temple, and received the Messiah. Likewise, to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the Israelites should have faithfully obeyed Moses from the moment he climbed the mountain to undertake the forty-day fast until they had finished constructing the Tabernacle. However, while Moses was fasting and praying on the mountain, the people all fell into faithlessness and worshipped the golden calf. Consequentl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was not established.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주셨다. 그러나 인간 자신이 말씀의 터를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으로 그것을 찾아야 할 이 기간에 있어서만 은 하나님도 그들의 행동을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상(偶像)을 만들어 놓고 춤을 추는 백성들을 보자마자 대로(大怒)한 모세는 손에 들었던 두 석판(石板)을 산 아래로 던져서 깨뜨렸다(출 32 : 19). 그리하여 이것은 모세가 ‘40일 사탄 분립기간’으로 세웠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에 사탄이 침범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Since human beings themselves had lost the basis for the Word, it is their portion of responsibility to recover the basis upon which to receive it again. Hence, God does not intervene in people’s actions when they are working to restore the Word. For this reason, although God had led the Israelites with signs and miracles, He did not intervene when they sinned. When Moses saw the people worshipping the idol and dancing around it, he raged in anger. He threw down the tablets and shattered them (Exod. 32:19).
두 석판(石板)은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후아담과 후해와로서 복귀될 예수님과 성신(聖神)을 상징한다. 모세가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는 두 석판을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깨뜨렸다는 것은, 다음에 예수님이 오실 때도 만약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심으로써,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었다.
As a result, Satan invade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As was explained above, the two tablets of stone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who were to come as the restored second Adam and Eve. This event foreshadowed that if Jesus came and found the Jewish people faithless, he might have to die on the cross without completing his original God-given mission with his would-be Bride.
모세를 중심하고 행해진 이스라엘 민족의 이와 같은 불신은, 모세가 ‘40일 사탄 분립기간’을 세운 후,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에게 순종케 하심으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섭리를 좌절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시려는 섭리는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2차 또는 3차까지 연장되어 나아갔던 것이다.
The faithlessness of the Israelites at Mt. Sinai undermined God’s providence to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It nullified God’s arduous efforts to separate Satan from the people and cultivate their obedience to Moses. Due to their continued faithlessness, God’s providence to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had to be prolonged through a second and then a third attempt.
ⓑ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
2.2.2.3.2.2 The Secon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석판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불신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르비딤에서 석판의 뿌리 되는 반석(磐石)의 샘물을 마신 터전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출 17 : 6), 모세가 석판을 깨뜨린 후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석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어 오면 처음 석판에 써 주시었던 것과 같은 말씀을 다시 써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 34 : 1). 그러나 여기에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다시 찾아 세워 성막(聖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고서는 석판을 중심한 성막을 복귀할 수 없기 때문에, 모세는 다시 40주야를 금식한 후에 십계명(十誡命)의 말씀을 기록한 제2차 석판과 성막이상(聖幕理想)을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출 34 : 28).
The Israelites proved faithless in the dispensation to receive the tablets of stone, and hence to build the Tabernacle, but because they stood on the foundation of having drunk the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 – the symbolic root of the tablets – they were given a second chance. God appeared before Moses after he had broken the tablets and promised him another inscription of His Word. This time, God required that Moses himself carve the blank tablets upon which He would write the inscription. Furthermore, Moses could not restore the tablets of stone or build the Tabernacle around them without first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by fulfilling once again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Therefore, Moses had to fast forty more days before he could obtain the second pair of tablets with the inscription of the Ten Commandments (Exod. 34:28) and establish the Tabernacle as the object of faith. This time, the Israelites faithfully waited for Moses to return.
한번 깨뜨린 석판을 40주야의 금식기도로써 복귀하였다는 것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도 그를 믿는 성도들이 ‘40일 사탄 분립기대’로써 그를 맞을 수 있는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면, 그 기대 위에 재림(再臨)하셔서 구원섭리(救援攝理)를 다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Moses’ successful efforts to restore the broken tablets by forty days of fasting, and the Israelites’ faith in him, foreshadowed that Jesus, though crucified, could return and make a new beginning in his work of salvation if the believers devotedly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ceive him during the forty days of the Lord’s resurrection –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모세가 제2차로 석판을 중심한 성막이상을 복귀하던 ‘40일 사탄 분립기간’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은 모세의 지시를 따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성막을 건축하였던 것이니, 때는 제2년 정월(正月) 초하루였던 것이다(출 40 : 17). 이리하여 이스라엘 선민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이룸으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한 터전 위에서 성막을 건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By remaining faithful while Moses was fasting on the mountain, and then obeying his instructions to build the Tabernacle, the Israelites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This lai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and hence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he Tabernacle was built by the first day of the first month of the second year (Exod. 40:17).
그러나 위에서도 논한 바와 같이, 그들이 성막을 건축하는 것만으로는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실체기대(實體基臺)’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聖殿)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때까지 변치 않고 이 성막을 자기들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모시고 받들어야 하였던 것이다.
However, as was mentioned earlie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required much more than the mere construction of the Tabernacle. In fact, until they entered Canaan and built the Temple, the Israelites were supposed to honor the Tabernacle more than they valued their own lives; they were to keep the same faith until they received the Messiah.
제2년 2월 20일, 이스라엘 민족은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성막을 중심하고 시내광야에서 출발하였다(민 10 : 11∼12). 그러나 그들은 다시 불신으로 흘러 모세를 원망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어 불로써 진(陳) 끝을 사르기도 하셨다(민 11 : 1). 이스라엘 민족은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통곡하며, 만나 외에는 생선도 외도 수박도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며 애급 땅을 그리워하였다(민 11 : 4∼6).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세우고 나아가야 할 ‘성막을 위한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게 되어,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는 다시 제3차로의 연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On the twentieth day of the second month of the second year, the Israelites set out from the wilderness of Sinai, arrayed in formation around the Tabernacle and led by the pillar of cloud (Num. 10:11-12). Yet before long, they began to complain about their hardships and murmur against Moses. Even after God destroyed their camp in His burning wrath, the Israelites did not repent. They continued to complain, lamenting that they had nothing to eat but manna. They were resentful toward Moses and longed for the meat, fruit, vegetables and luxuries of Egypt (Num. 11:1-6). Thus, the Israelites failed to maintain the secon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and it was invaded by Satan. The providence to restore this foundation was prolonged to a third attempt.
ⓒ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
2.2.2.3.2.3 The Thir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들을 중심한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모세의 변함 없는 믿음과 충성으로 말미암아 그 성막은 여전히 모세를 중심한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서 있었고, 또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르비딤에서 성막의 중심인 석판(石板)의 뿌리 되는 반석(磐石)의 샘물을 마신(출 17 : 6) 터전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우고, 성막을 중심한 모세에게 순종굴복하면 그들은 또다시 제3차의 ‘성막을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위한 조건으로서 주신 것이 40일 정탐기간(偵探期間)이었던 것이다.
Although Satan defiled the secon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Moses’ faith and devotion to the Tabernacle remained unchanging. Therefore, the Tabernacle stood firmly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Moses had laid, while the Israelites still stood upon the foundation of having drunk the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 (Exod. 17:6). The rock, we recall, was the root of the tablets of stone, which was at the center of the Tabernacle. Upon this foundation, the Israelites were allowed to attempt yet another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By obeying Moses, who still honored the Tabernacle, they were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in their third attempt.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of Canaan was given as the condition to achieve this.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각 지파로부터 족장(族長) 한 사람씩을 모은 12명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어(민 13 : 1) 40일 동안을 정탐하게 하셨다(민 13 : 25). 그러나 정탐에서 돌아온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신적인 보고를 하였다. 즉 그 땅의 거민(居民)은 강하고 성읍(城邑)이 견고할 뿐 아니라(민 13 : 28),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長大)하여 자기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더라(민 13 : 32∼33)고 하면서, 이스라엘은 그 성과 그 백성을 공격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원망하고 통곡하면서 새로이 한 장관을 세워 애급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떠들었다.
God had Moses choose a leader from each of the twelve tribes of Israel and send them to spy out the land of Canaan for forty days (Num. 13:1, 25). When they returned, all the spies except Joshua and Caleb presented faithless reports: The people who dwell in the land are strong, and the cities are fortified and very large . . . [it] is a land that devours its inhabitants; and all the people that we saw in it are men of great stature . . . and we seemed to ourselves like grasshoppers, and so we seemed to them (Num. 13:28, 32-33). They concluded that the Israelites could not capture Canaan’s fortified cities or defeat its people. Upon hearing this report, the Israelites again murmured against Moses. They called for another leader who would take them back to Egypt.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 백성들은 이미 그 보호자가 떠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밥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반면에 자기들은 여호와가 보호자시니 두려워 말고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자고 외쳤던 것이다(민 14 : 9).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도리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하였다(민 14 : 10). 이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시어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민 14 : 11)고 하시면서,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민 14 : 31∼ 34)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Only Joshua and Caleb called for the people not to be afraid but to attack the Canaanites in obedience to God’s command: Do not rebel against the Lord; and do not fear the people of the land, for they are bread for us; their protection is removed from them, and the Lord is with us; do not fear them (Num. 14:9). The Israelites did not accept this exhortation and attempted to stone Joshua and Caleb. At that moment, the glory of the Lord appeared to all the people, and God said to Moses: How long will this people despise me? And how long will they not believe in me, in spite of all the signs which I have wrought among them? (Num. 14:11). But your little ones, who you said would become a prey, I will bring in, and they shall know the land which you have despised. But as for you, your dead bodies shall fall in this wilderness. And your children shall be shepherds in the wilderness forty years, and shall suffer for your faithlessness, until the last of your dead bodies lies in the wilderness.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days in which you spied out the land, forty days, for every day a year, you shall bear your iniquity, forty years, and you shall know my displeasure (Num. 14:31-34).
이와 같이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도 복귀할 수 없게 되어, 제2차 21개월 광야노정(曠野路程)은 제3차 40년 광야노정으로 연장되었다.
As a result of their lack of faith, the thir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ended in failure. Their twenty-one-month course in the wilderness was extended to forty years.
(4)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2.2.2.4. The Failure of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성막을 위한 기대’가 3차나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墮落性)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은 세울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제2차로 세우려던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하지 못하게 되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Due to the Israelites’ faithlessness,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was invaded by Satan three times. Therefore, the national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was not fulfilled, an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not laid. Consequently, the entir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God’s providence was prolonged to a third national course.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2.2.3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1) 믿음의 기대
2.2.3.1 The Foundation of Faith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이 실패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이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웠던 미디안광야 40년 기간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偵探) 40일 기간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함으로써 날을 해로 환산하여 광야를 표류하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오는 40년 기간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제2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제3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이 광야 40년 기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聖幕)을 모시고 표류하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다시 돌아온 모세는,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민족적인 실체헌제(實體獻祭)를 위한 아벨의 입장도 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Because the Israelites turned faint-hearted upon hearing the report of the faithless spies,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The forty years Moses had spent in the wilderness of Midian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were invaded by Satan. As a result of the failure of the mission to spy out the land, the people had to wander in the wilderness for forty years, one year for each day of the forty-day spy mission, until they returned to Kadesh-barnea. For Moses, this forty-year period was to separate Satan, who had invaded the previous foundation of faith, and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hird course. Moses honored the Tabernacle with faith and loyalty throughout the entire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By the time he returned to Kadesh-barnea, he had complete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Accordingly, he also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fo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2) 실체기대
2.2.3.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 40일 노정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하고 불신과 반역(反逆)으로써 실패하였으므로 ‘성막을 위한 기대’는 여전히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제2차 노정을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성막을 충성으로 받들고 모셨던 모세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는 여전히 남아져 있었기 때문에, 이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표류(曠野漂流)의 40년 기간을 불변의 신앙으로 성막을 받들고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 정탐 40일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기대를 세우면, 그때에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조성되는 동시에 ‘성막을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과 순종으로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받들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그때에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있어서의 ‘실체기대’는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second course ended in failure when, due to the people’s persistent disbelief, Satan defile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However, at least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remained, preserved by Moses’ continued devotion. If, upon this foundation, the Israelites had faithfully followed Moses through the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thus establishing the basis for the separation of Satan, they would have set up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and complete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If they had then honored and obeyed Moses and entered Canaan in faith, they would have complete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따라서 광야 40년 표류 기간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제3차 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워 가지고 제2차 노정에서 그들이 모세를 받들고 성막을 건축하던 입장으로 돌아감으로써 제3차 노정의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기 위한 기간이었다.
For Moses, the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was the period required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hird national course. For the Israelites, the goal for this period was to accomplish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third course. They were to do this by establishing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hereby returning to the state of grace which they had enjoyed in the second course when they first constructed the Tabernacle under Moses’ direction.
㉠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
2.2.3.2.1 The Foundation of Substance Centered on Moses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받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는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그 ‘출발을 위한 섭리’로서 나타내셨던 3대 기적(三大奇蹟)을 불신하는 입장에 섰었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40일 시련기간을 거치게 하신 후에,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3대 은사(三大恩賜)를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또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하려 하였을 때 라반이 야곱을 열 번이나 속였던 것을(창 31 : 7) 탕감복귀하기 위 하여 10재앙(十災殃)을 내리셨던 것인데, 이스라엘이 또 이것을 불신하는 입장에 섰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십계명(十誡命)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The tablets,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became necessary in the second course only because the Israelites lost faith in the wilderness. Soon after they crossed the Red Sea, they forgot the three signs which God had granted when conducting the dispensation to start. To restore this through indemnity, God tested the people through a forty-day period while Moses was on the mountain. He then gave them three manifestations of divine grace: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 Moreover, God had granted the ten plagues, which were to restore Laban’s ten deceptions of Jacob in Haran. Yet when the Israelites lost faith even after witnessing these, God attempted to restore the ten plagues through indemnity by giving the Ten Commandments.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심으로써 3대 은사와 십계명을 지키게 되면, 그들은 제2차 노정에서 3대 기적과 10재앙으로 애급(埃及)을 출발하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과 순종으로 모세를 따라 광야 40년의 탕감기간을 마치고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온 후 모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시고 받들었더라면, 그들은 제2차 노정에서 3대 기적과 10재앙으로 애급을 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의 목적을 이루었던 입장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If the Israelites had renewed their faith by honoring the three manifestations of divine grace and obeying the Ten Commandments, they would have returned to the state of grace they had enjoyed when they left Egypt under the power of these miracles. Accordingly, in the third course the Israelites should have completed the forty-year indemnity period by following Moses in faith and obedience through the wilderness. After they returned to Kadesh-barnea, they should have stood with Moses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and exalted the tablets, the Tabernacle and the Ark. Had they done so, they would have stood in the position they had enjoyed at the completion of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course, when God struck the Egyptians with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그런데 석판은 법궤의 축소체요, 법궤는 성막의 축소체이므로 결국 석판은 성막의 축소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법궤나 성막은 석판이나 그의 뿌리 되는 반석(磐石)으로써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가데스바네아를 출발하는 것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을 받들고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그때에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짐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The tablets were a smaller representation of the Ark; the Ark was a smaller representation of the Tabernacle; hence, the tablets were a smaller representation of the Tabernacle. The Ark and the Tabernacle may thus be represented by the tablets or their root, the rock. Therefore,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to begin at Kadesh-barnea upon completing a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Henceforth, had the Israelites honored the Tabernacle with faith and devotion and followed Moses into Canaan, they would have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required fo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in the third national course.
그러면 하나님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어떻게 이루려 하셨던가? 광야 40년 기간을 뜻 앞에 세우지 못하고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을(민 20 : 4∼5)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회중(會衆) 앞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여 가지고 그들에게 마시게 하셨다(민 20 : 8).
How did God intend to conduct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During the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the Israelites again fell into complaint and faithlessness. To save them, God instructed Moses to strike the rock with his staff that it might yield water and give drink to the people (Num. 20:4-5, 8).
만일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한 번 쳐서 샘물을 내어 먹임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권능을 새로이 깨달아 그를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라면, 그들은 모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서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모세를 믿고 순종하여 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갔더라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게 됨으로써, 제3차 노정의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Moses should have struck the rock only once. The awe-struck Israelites then should have united with him, thereby standing with him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In this way, they would have fulfill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그러나 모세는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는 백성을 보자 격분하여 치밀어 오르는 혈기(血氣)를 누르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 : 12)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However, when Moses heard the people murmuring against him and complaining that they had no water to drink, he raged in uncontrolled anger and struck the rock twice. Whereupon God said to him: Because you did not believe in me, to sanctify me in the eyes of the people of Israel, therefore you shall not bring this assembly into the land which I have given them (Num. 20:12).
모세는 이와 같이 한 번 쳐야 할 반석(磐石)을 두 번 침으로써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도 이루지 못하게 되어, 드디어 약속받은 가나안 복지(福地)를 눈앞에 바라보면서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민 20 : 24, 민 27 : 12∼14).
By striking the rock twice when he should have struck it only once, Moses undermin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As a consequence, he was not permitted to enter the promised land. He could only gaze upon it from a distance at the end of his life (Num. 27:12-14).
우리는 이제 반석을 한 번 쳐야 하는 이유와, 두 번 친 것이 어떻게 되어 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겠다.
Let us investigate why Moses should have struck the rock just once, and why his striking it twice constituted a sin.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서는 예수님을 흰 돌로 상징하였고, 한편 또 고린도전서 10장 4절을 보면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런데 타락론(墮落論)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생명나무로 오신 분이시므로(계 22 : 14), 반석은 곧 생명나무이기도 하다. 한편 창세기 2장 9절의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있어서의 장래(將來)할 완성한 아담을 상징한 것으로서, 이 생명나무도 또한 반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반석은 그 완성한 아담을 상징하기도 한다.
The rock is a symbol for Jesus Christ (I Cor. 10:4); (Rev. 2:17). Since Christ came as the tree of life (Rev. 22:14); (cf. Fall 1.1.1), the rock may also be seen as the tree of life. The tree of life is also a symbol for perfected Adam in the Garden of Eden; hence the rock symbolized Adam in perfection.
그런데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장차 반석이 될 그 아담을 쳐서 타락시켰다. 따라서 아담은 생명나무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창 3 : 24), 그는 또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수(生命水) 샘물을 영원히 그 자손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반석도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모세가 지팡이로 치기 이전, 샘물을 내지 못하던 반석(磐石)은 바로 타락된 아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사탄이 장차 생명수를 낼 수 있는 반석으로 성장하고 있던 아담을 한 번 쳐서 타락시킴으로써 그를 ‘샘물을 내지 못하는 반석’으로서의 아담이 되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샘물을 내지 못하는 아담의 표시체인 반석을 한 번 쳐서 샘물을 내게 함으로써, ‘샘물을 낼 수 있는 반석’으로서의 아담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려 하셨던 것이다.
In the Garden of Eden, Adam should have matured to become the ideal represented by the rock. Yet when Satan struck him and caused him to fall, Adam could not become the tree of life or the rock which could give his descendants the water of eternal life. Therefore, the waterless rock, before Moses struck it the first time, symbolized fallen Adam. To indemnify Satan’s act of striking Adam and preventing him from becoming the rock which could give the water of life, God had Moses strike the rock once. When he hit the rock once and it yielded water, Moses fulfilled an indemnity condition to restore Adam as the water-giving rock.
그러므로 모세가 한 번 쳐서 생명수 샘물을 내게 된 반석은 바로 생명나무로 오셔서 타락한 인간에게 생명수 샘물을 주실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 : 14)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The rock, struck once, symbolized Jesus who was to come and give fallen humanity the water of life. Therefore, Jesus said: Whoever drinks of the water that I shall give him will never thirst; the water that I shall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John 4:14).
따라서 모세가 반석을 한 번 치는 것은 타락된 제1 아담을 완성한 제2 아담 예수님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허락된 것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하늘편에서 한 번 쳐서 샘물을 내게 된 반석을 또 한 번 친 행동은 장차 복귀한 반석으로 오셔서 만민에게 생명수 샘물을 먹여 주실 예수님을 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것을 목격한 모세가 혈기(血氣)로써 반석을 두 번 친 행동은,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반석의 실체 되시는 예수님 앞에 사탄이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조건을 성립시킨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죄가 되었던 것이다.
Thus, God intended that Moses strike the rock once as an indemnity condition for fallen Adam to be restored in the person of the second, perfected Adam – Jesus. However, when Moses struck the rock the second time, after it had already brought forth water, it represented the possibility that Jesus might be struck. In other words, Moses’ act of striking the rock twice in anger at the faithlessness of the Israelites set up the condition that when Jesus came, if the Jewish people were to turn faithless, Satan would have grounds to confront Jesus, the fulfillment of the rock. This is why Moses’ act constituted a sin.
모세가 석판(石板)을 한 번 깨뜨린 것은 복귀할 수 있었으나, 반석을 두 번 친 실수는 복귀할 수 없었으니 그 이유는 어디 있었던 것인가?
Although Moses’ act of breaking the tablets of stone could be restored, his mistake of striking the rock the second time could not be restored. Why is this so?
복귀섭리(復歸攝理)로 보아 석판과 반석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십계명(十誡命)이 기록된 석판은 모세의 율법(律法)의 중심이요, 따라서 구약성서(舊約聖書)의 중심이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이 석판이상(石板理想)을 믿음으로써 그 시대의 구원권 내(救援圈內)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석판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외적인 표시체임을 알 수 있다.
In the context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tablets of stone and the rock were related as external and internal. The tablets of stone, inscribed with the Ten Commandments, were the core of the Mosaic Law and the heart of the Old Testament. The Israelites could receive the salvation available in the Old Testament Age by upholding the ideals contained in the tablets. In this sense, the tablets of stone were an external representation of Jesus who was to come.
그런데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반석(磐石)은 곧 그리스도라고 하신 말씀대로 반석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동시에 석판(石板)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그것은 석판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뿌리 곧 하나님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판을 외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반석은 내적인 것이다. 또 석판을 몸으로 비유한다면 반석은 마음에 해당하며, 석판을 성소(聖所)라고 한다면 반석은 지성소(至聖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석판을 땅이라고 한다면 반석은 하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석은 석판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내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The rock, on the other hand, not only symbolized Christ; as the root of the tablets of stone, it also symbolized God, the origin of Christ. The tablets of stone were external; the rock was internal. If we liken the tablets to the body, the rock corresponds to the mind; if we liken the tablets to the holy place, the rock corresponds to the most holy place; if we liken the tablets to the earth, the rock corresponds to heaven. In short, as an internal representation of Christ, the rock had greater value than the tablets of stone.
이와 같이 석판은 예수님에 대한 외적인 표시체였으므로,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상징하는 모세 앞에(출 4 : 16, 출 7 : 1) 예수님의 외적인 표시체로 세워졌던 아론을 상징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었기 때문에(출 32 : 4), 아론이 깨어짐에 따라 석판도 깨어지게 되었었다. 그러나 아론이 르비딤에서 반석 샘물을 마신 터전 위에서(출 17 : 6) 회개함으로써 소생(蘇生)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론을 상징하는 석판도 반석 샘물의 내적인 터전 위에서 다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움으로써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은 그리스도와 그의 뿌리 되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친 행동은 만회할 수 없었던 것이다.
As an external representation of Jesus, the tablets of stone also symbolized Aaron. Aaron was an external representative of Jesus as he stood before Moses, the representative of God (Exod. 4:16); (Exod. 7:1). When the Israelites pressured Aaron to make the golden calf (Exod. 32:4), Aaron himself lost faith, and this led to the breaking of the tablets. Nevertheless, Aaron could be revived because he repented while still standing upon the foundation of having drunk the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 (Exod. 17:6). When he did so, the tablets of stone symbolizing Aaron could also be refashioned and restored based on the internal foundation of the water from the rock. However, since the rock – the root of the tablets of stone – symbolized not only Jesus but also God, his origin, striking the rock the second time could not be undone.
그러면 모세의 반석 2타(磐石二打)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던가?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쳤던 것은 불신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혈기(血氣)를 참지 못한 결과였기 때문에(시 106 : 32∼33), 이 행동은 결국 사탄의 입장에서 행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반석으로 이루시려던 ‘출발을 위한 섭리’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What were the consequences of striking the rock twice? Moses struck the rock the second time because he was overcome by uncontrolled rage at the people’s faithlessness (Ps. 106:32-33). He acted under the influence of Satan, even on Satan’s behalf. Consequently, the dispensation to start which God had intended to carry out based on the rock was defiled by Satan.
이렇듯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외적인 행동은 사탄의 행동으로 돌아갔으나, 내적인 실제에 있어서는 그 반석에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을 먹여 살렸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급(埃及)에서 나온 외적인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이 예정하신 가나안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모세도 120세를 일기로 소망의 땅을 눈앞에 바라보면서 죽고 말았다(신 34 : 4∼5). 그러나 여호수아가 모세의 대신으로(민 27 : 18∼20) 반석 샘물을 마시고 성막을 받드는 광야노정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인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민 32 : 11∼12).
Although externally Moses’ act of striking the rock a second time proved to be a satanic act, still in a deeper, internal sense he gave drink to the people with the water which flowed from it and saved their lives. This reaffirmed the prophecy God had given earlier (Num. 14:28-34) that the external Israelites, those who were adults when they left Egypt, could not enter Canaan as was promised, except for Joshua and Caleb. Moses, too, would die without fulfilling his long-cherished dream of entering the promised land (Deut. 34:4-5). On the other hand, the internal Israelites, those who were children at the time of the Exodus from Egypt or were born during the wilderness course when the people drank water from the rock and honored the Tabernacle, would enter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Joshua (Num. 32:11-12), who succeeded Moses (Num. 27:18-20).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행동이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 반석에서는 샘물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 거기에서 샘물이 나올 수 있었던가?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는 일찍이 르비딤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반석을 쳐서 샘물을 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시게 함으로써 반석 샘물의 터전을 마련한 바 있었던 것이다(출 17 : 6). 그리고 이 터전 위에서 세워진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는, 다른 모든 이스라엘인이 불신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40일 금식기도(禁食祈禱)로써 세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것을 굳게 지켜 온 모세 한 사람의 믿음에 의하여,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까지 계승되어 왔었다. 그 후에 모세마저 불신의 입장으로 돌아갔지만 하늘을 대한 그의 심정은 불변이었고, 또 여호수아가 그의 정탐(偵探) 40일로써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불변의 신앙으로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르비딤에서 세웠던 반석(磐石) 샘물의 터전도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그대로 남아졌었던 것이다.
Since Moses’ act of striking the rock twice allowed Satan to invade, we would not expect the rock to have yielded water. How, then, was it possible for water to flow from it? Moses had already brought forth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 (Exod. 17:6)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thus laying the foundation to bring forth water from the rock. The tablets of stone,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erected upon this foundation were sustained into the third national course, despite the people’s faithlessness, by Moses’ unwavering devotion. He firmly maintaine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which he had laid during his forty-day fast. Although Moses’ faith faltered in a moment of anger, his heart toward God remained unchanging. Furthermore, Joshua had lai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hrough his absolute faith during the forty days of spying, and he continued to uphold the tablets, the Tabernacle and the Ark from that time forth.Thus, the foundation to bring forth water from the rock, which had been established at Rephidim, remained intact centered on Joshua.
이와 같이 모세의 외적인 불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제2차 반석이 외적으로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나, 그의 내적인 불변의 심정과 여호수아의 믿음과 충성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내적으로는 샘물을 내어 마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In sum, although the second dispensation based on the rock was invaded by Satan externally due to Moses’ outward act of faithlessness, it remained sound internally. The rock brought forth water for the people due to Moses’ and Joshua’s internal attitude of unswerving faith and devotion.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결과적으로 사탄의 입장에서 친 것이 되어 그 돌은 사탄이 소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돌의 실체로 오셨던 예수님은, 그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자, 일찍이 저들이 광야(曠野)에서 잃어버렸던 이 돌을 몸소 찾으시려고 광야로 가셨었기 때문에, 사탄으로부터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제일 먼저 받으셨던 것이다.
When Moses struck the rock the second time, he in effect struck it from the position of Satan. Satan, therefore, took possession of the stone. Accordingly, when in Jesus’ time the people disbelieved, Jesus, as the fulfillment of the stone, had to personally enter the wilderness and recover the stone. This is the reason behind his first temptation, when Satan challenged him to turn the stone into bread.
모세가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외적으로는 혈기(血氣)를 내어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광야에서 죽었으나, 내적으로는 그의 불변의 심정으로 인하여 반석의 샘물을 내어 먹였기 때문에 영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장차 반석의 실체 되시는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되면 예수님도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받아 십자가에 달리시게 됨으로써 영육(靈肉) 아우른 세계적 가나안 복귀는 완수하지 못하시고, 부활(復活)하심으로써 영적으로만 그것을 완수하게 되시리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Due to the faithlessness of the Israelites, Moses became enraged and struck the rock twice. This gave Satan a lien on his body, which bound Moses to die outside the promised land. However, he was able to enter Canaan in spirit because he had brought forth water from the rock by virtue of his indomitable faith. This foreshadowed what could happen when Jesus came as the true manifestation of the rock. If the Jewish people disbelieved, Jesus’ body would also suffer attack by Satan, even to the extent of being hung on the cross. He would die before completing the restoration of Canaan worldwide. Nevertheless, he would still be able to accomplish the spiritual portion of restoration through his resurrection.
모세가 반석(磐石)을 두 번 친 후, 하나님은 불신(不信)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에게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물어 죽이게 하셨다(민 21 : 6).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여,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만은 구원을 받도록 하셨다(민 21 : 9). 이 불뱀은 해와를 타락시킨 옛 뱀 곧 사탄을 상징하였고(계 12 : 9), 장대 끝에 매단 구리뱀은 장차 하늘 뱀으로 오실 예수님을 상징했던 것이다(요 3 : 14).
Shortly after this episode, the Israelites again complained along the way, and God sent fiery serpents which bit and killed many of them. When they repented, God had Moses make a bronze serpent and set it on a pole, that anyone might look at it and be saved (Num. 21:6-9). The fiery serpents symbolized Satan, the ancient serpent (Rev. 12:9) who had caused Eve to fall; the bronze serpent set on the pole symbolized Jesus, who was to come as the heavenly serpent.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갔을 때는 그들을 사탄 뱀에게 내주셨다가 그들이 회개하고 신앙을 돌이킬 때는 다시 구리뱀으로 살려 주셨던 것과 같이, 후일 예수님 때에 있어서도 유대 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그들을 사탄에게 내주시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것과, 그때에 예수님은 인류를 살리시기 위하여 부득이 하늘 뱀으로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시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과, 또 불신을 회개하고 그의 십자가로 인한 구속(救贖)을 믿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해 주시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 : 14)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사실은 실상 예수님을 중심한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십자가로 인한 영적인 노정으로 출발하게 한 원인(遠因)이 되었던 것이다.
This foreshadowed what might happen in Jesus’ time, as he said: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John 3:14). Although God let the Israelites fall prey to the satanic serpent when they became faithless, He saved their lives with the bronze serpent when they repented and renewed their faith. Likewise, in Jesus’ time, if the people were to disbelieve, God would have to leave them vulnerable to Satan’s attack, and Jesus would have to be hung on the cross as the heavenly serpent to save humanity. Whoever then repented of his faithlessness and believed in the redemption by the cross would be saved. Indeed, the episode of the fiery serpents was a remote cause of Jesus’ walking the path of the crucifixion to begin the course of spiritual salvation.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쳤을 때, 하나님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민 20 : 12). 이에 모세는 하나님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여 달라고 간곡한 애원(哀願)의 기도를 올렸으나(신 3 : 25), 그는 종내 가나안 땅을 눈앞에 바라보면서 죽고 말았다. 이렇게 되어 그가 죽은 뒤에 시체를 장사(葬事)하였으나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신 34 : 6).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는 십자가에 달리시게 될 것이고, 또 할 수만 있으면 죽음의 잔을 면하고 세계 가나안 복귀를 이루게 하여 달라고 애원의 기도를 하실 것이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될 것과, 한편 그의 시체도 장사한 후에 간 곳을 아는 사람이 없게 될 것 등을 예시(豫示) 하신 것이다.
When the Israelites were faithless and Moses struck the rock twice, God declared that Moses would not be permitted to enter the land of Canaan (Num. 20:12). Although Moses desperately prayed to God and begged God to allow him to enter Canaan (Deut. 3:25), he was denied entrance and died outside its borders. After his death, his body was buried in a valley in the land of Moab, but no one knew the place of its burial (Deut. 34:6). This also foreshadowed what might happen to Jesus: if the people were to reject him, he would be crucified. Even though he might pray desperately to avoid this fate and realize the Kingdom of Heaven – as he in fact did in the Garden of Gethsemane when he prayed, “let this cup pass from me” – he would die unable to accomplish this goal. Furthermore, after his death no one would know the whereabouts of his body.
㉡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
2.2.3.2.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Centered on Joshua
모세가 반석(磐石)을 두 번 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가나안으로 복귀하려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민 20 : 1∼13) 사탄이 외적으로는 침범했지만, 르비딤 반석 샘물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는 그대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에게 먹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위에서도 밝혀 온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섭리(攝理)에 대한 또 하나의 노정을 보여 주었다. 즉 이스라엘 민족 중 사탄세계인 애급(埃及)에서 출생하여 광야노정에서 불신으로 돌아갔던 외적인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탐(偵探) 40일을 믿음으로 세웠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반석 샘물을 마시고 성막(聖幕)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만이 모세 대신의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민 32 : 11∼12).
When at Kadesh-barnea Moses struck the rock twice,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journey to Canaan, which was to have been based on the rock, was not brought to pass. Although Satan invaded externally, nevertheless the foundation which Moses had laid internally when he had brought forth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 remained intact, and he could bring forth water from the rock at Kadesh-barnea for the people to drink. This set the pattern for what would follow. The external Israelites born in Egypt, who became faithless in the wilderness, all perished except for Joshua and Caleb, who had shown firm faith during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Num. 32:11-12). The internal Israelites, the younger generation who were born and raised in the wilderness when the people drank water from the rock and were upholding the Tabernacle, entered the land of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Joshua.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면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 27 : 18∼20)고 하셨다.
God instructed Moses to commission Joshua in his stead: Take Joshua the son of Nun, a man in whom is the spirit, and lay your hand upon him; cause him to stand before Eleazar the priest and all the congregation, and you shall commission him in their sight. You shall invest him with some of your authority, that all the congregation of the people of Israel may obey (Num. 27:18-20).
여호수아는 정탐(偵探) 40일 기간에 불신으로 돌아갔던 온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모세가 세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굳게 서서 변함없는 믿음과 충절(忠節)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고 끝까지 그것을 받들었던 오직 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와 같이 비록 모세는 불신으로 돌아갔으나,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는 여전히 여호수아가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의 대신으로 세우시고, 그 내적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여 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게 하심으로써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고, 이 섭리에 의하여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써 거기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제3차 노정의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When the people were beset with fear upon hearing the reports of the spies, only Joshua and Caleb remaied firm in their faith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Moses had laid through the Tabernacle and would honor it to the end. Although Moses’ faith faltered later on,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and the Tabernacle all remained intact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which Joshua laid.Therefore, Go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course anew, this time based on the water from the rock, by elevating Joshua to Moses’ place and having the internal Israelites obey him and stand with him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On this basis, they were to enter the land of Canaan, where they were to fulfill the national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In this way, God intended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substance centered on Joshua in the third national course (Deut. 3:28).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여호수아)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건너가서 네(모세)가 볼 땅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신 3 : 28)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도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 1 : 5∼6)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생활 40년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찾아 세웠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령하셨던 것과 같이(출 3 : 8∼10), 하나님은 광야에서 표류(漂流)하는 40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찾아 세운 여호수아를 모세 대신으로 부르시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 1 : 2)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When Moses had satisfactorily accomplished the period of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of Midian, God appeared before him and commanded him to guide the Israelites to the land of Canaan, the land of milk and honey (Exod. 3:8-10). Likewise, when Joshua accomplished with faith and devotion the period of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God personally called him to serve in the position of Moses, commanding: Moses my servant is dead; now therefore arise, go over this Jordan, you and all this people, into the land which I am giving to them, to the people of Israel. . . . As I was with Moses, so I will be with you; I will not fail you or forsake you.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for you shall cause this people to inherit the land which I swore to their fathers to give them (Josh. 1:2, 5-6).
하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有司)들을 불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러한 뜻을 전하였을 때(수 1 : 10),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수 1 : 16∼18)라고 대답하면서, 그들은 죽기를 맹세하고 여호수아를 따라갈 것을 결의하였었다. 이와 같이 모세의 사명을 대신하고 나선 여호수아는 초림(初臨) 때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러 재림(再臨)하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따라서 모세노정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여호수아의 노정은, 예수님의 영적 복귀의 노정을 영육(靈肉) 아울러 탕감복귀해야 할 그의 재림노정(再臨路程)에 대한 표시적인 노정이 되는 것이다.
Upon receiving this direction from God, Joshua summoned the officers of the people and conveyed God’s instructions to them (Josh. 1:10). They replied: All that you have commanded us we will do, and wherever you send us we will go…. Whoever rebels against your commandment and disobeys your words, whatever you command him, shall be put to death. Only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Josh. 1:16-18). They pledged with their lives to follow Joshua. In succeeding Moses’ mission to restore Canaan, Joshua prefigured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ho will come to complete the mission which Jesus left unfinished. Just as Joshua’s course was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Moses’ course, the course of Christ at the Second Advent must restore through indemnity, both physically and spiritually, Jesus’ course of spiritual restoration.
모세가 제2차 노정에서 가나안 땅에 정탐(偵探)으로 보냈던 열두 사람이 있었다(민 13 : 1∼2). 그들 중 오직 충성으로 그 사명을 완수한 두 사람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여호수아는 다시 두 사람의 정탐을 여리고성으로 보냈다(수 2 : 1). 그리하여 여리고성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두 정탐인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수 2 : 24)라고 믿음으로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두 그 정탐인(偵探人)의 말을 믿었으므로, 이것으로써 과거에 40일 정탐을 뜻맞게 세우지 못한 선조들의 죄를 탕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Moses sent twelve spies to Canaan (Num. 13:1-2). Upon the foundation of heart laid by the two spies who had faithfully completed their mission, Joshua sent two men to spy out the fortified city of Jericho (Josh. 2:1). When they returned from Jericho, the two spies made a faithful report: “Truly the Lord has given all the land into our hands; and moreover all the inhabitants of the land are fainthearted because of us” (Josh. 2:24). The younger generation of Israelites raised in the wilderness all believed the spies’ words, and this faith indemnified the sins of their parents, who had not properly completed the previous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이와 같이 내적 이스라엘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선 여호수아에게 순종할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 기대(基臺)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제2차 노정에서 3대 기적(三大奇蹟)과 10재앙(十災殃)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던 모세를 중심한 그들의 선조들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이 홍해(紅海)를 건너기 전에 3일노정을 찾아 세웠던 것과 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3일노정을 찾아 세웠던 것이다(수 3 : 2).
Having pledged with their lives to obey Joshua, who stood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he internal Israelites could stand with him on that foundation. By restoring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water from the rock, they assumed the same position as their parents had when, under Moses’ leadership, they had participated in the dispensation to start at the Exodus from Egypt when God provided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Just as the Israelites under Moses’ leadership had passed through a three-day course before they crossed the Red Sea, the Israelites under Joshua’s leadership passed through a three-day course before they crossed the Jordan River (Josh. 3:2).
한편 제2차 노정에 있어서 3일노정을 지난 이스라엘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홍해까지 인도하였던 것과 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그들이 3일노정을 마친 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표상된 예수님과 성신(聖神)의 상징적 실체인 법궤가 그들을 요단강까지 인도하였던 것이다(수 3 : 3, 수 3 : 8).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after the three-day course was completed, the pillar of cloud and the pillar of fire led the Israelites to the Red Sea. Similarly, after the Israelites under Joshua’s leadership completed the three-day course, the Ark of the Covenant led them to the Jordan River (Josh. 3:3, 6). The tablets lying at the center of the Ark, and the pillars of cloud and fire both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그리고 모세를 인도하던 지팡이에 의해서 홍해가 갈라졌듯이, 여호수아를 인도하던 법궤가 요단강의 물 위에 서자 언덕에 넘치던 요단강의 흐름이 갈라져서(수 3 : 16), 따라온 이스라엘은 육지와 같이 강을 건너게 되었다(수 3 : 17). 지팡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의 표시체였고, 두 석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 법궤는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인 실체였었다. 그러므로 법궤 앞에서 요단강의 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민족이 평탄하게 가나안 땅으로 복귀하 였다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과 성신 앞에 물로 표시된 이 죄악세상(계 17 : 15)이 선악으로 분립되어 심판을 받은 후, 모든 성도들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게 될 것을 보여 준 것이다.
Moses used his staff to guide the way and split the Red Sea in two. Likewise, Joshua placed the Ark of the Covenant in front of the troops to guide their way. When the priests bearing the Ark of the Covenant entered the Jordan River, its waters parted, opening the way for the people following the Ark to walk on the riverbed (Josh. 3:16-17). Moses’ staff symbolized Jesus; similarly, the Ark containing the tablets of stone, manna and Aaron’s staff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Therefore, the parting of the Jordan River before the Ark, which allowed the Israelites to enter the land of Canaan safely, foreshadowed what would happen in the presence of Jesus and his Bride: sinful humanity, symbolized by water (Rev. 17:15), would be divided between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and face the judgment. All faithful believers would then complete the restoration of Canaan worldwide.
이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 곳에 두라(수 4 : 2∼3)고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정월(正月) 10일에 요단강에서 올라와서, 여리고의 동편 지경(地境)인 길갈에 진을 치고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거기에 세웠었다(수 4 : 20).
Upon reaching the Jordan River, God commanded Joshua, saying: Take twelve men from the people, from each tribe a man, and command them, “Take twelve stones from here out of the midst of the Jordan, from the very place where the priests’ feet stood, and carry them over with you, and lay them down in the place where you lodge tonight” (Josh. 4:2-3). And thus the people did: The people came up out of the Jordan on the tenth day of the first month, and they encamped in Gilgal, on the east border of Jericho. And those twelve stones, which they took out of the Jordan, Joshua set up in Gilgal (Josh. 4:19-20).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예시(豫示)한 것인가?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상징한다. 따라서 12지파를 대표한 열두 사람이 법궤로 인하여 물이 갈라진 요단강 가운데서 열두 돌을 받들었다고 하는 것은, 장차 12지파의 대표형으로 부름을 받을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 죄악세상이 선악(善惡)으로 갈라질 때, 그곳에서 예수님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었다.
What did this foreshadow? As was discussed earlier, the stone symbolized Jesus. Accordingly, when the twelve leaders representing the twelve tribes each carried a stone from the middle of the Jordan River after its waters had been divided by the Ark, it foreshadowed what the twelve disciples of Jesus, representing the twelve tribes, should do at his coming: uphold him at the very place where his Word judges this sinful world and divides it into good and evil.
그들이 열두 돌을 받들어다가 가나안 땅의 안정된 진(陣)에 한데 모아 놓았을 때, 여호수아는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수 4 : 24)고 말하였다. 이것은 장차 돌로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는 열두 제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 곳에서 하나로 뭉쳐야만,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여 하나님의 전능(全能)하심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예시한 것이었다.
After they took the twelve stones and set them up in the camp at Gilgal in the land of Canaan, Joshua said, “So that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may know that the hand of the Lord is mighty; that you may fear the Lord your God for ever” (Josh. 4:24). This foreshadowed that the twelve disciples of Jesus should become one in heart; only then could they complete the restoration of Canaan worldwide, that all the people of the world might praise the power of God eternally.
야곱이 가는 곳마다 돌단을 쌓았던 것과 같이, 야곱의 열두 아들의 후손인 열두 지파(支派)의 대표들도 열두 돌을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祈禱)의 제단을 쌓아 앞으로 성전(聖殿)을 건축할 것을 보여 주었던 것이니,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弟子)가 힘을 합하여 예수님을 성전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후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되지 못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 : 19)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과연 12제자는 하나되지 못하였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므로, 성전 된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로써 헐렸다가 3일 만에 부활(復活)하시어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모은 후에야 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어 영적인 성전으로 모시게 되었고, 또 재림(再臨)하신 후에야 실체성전(實體聖殿)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Just as Jacob built a stone altar wherever he went, the representatives of the twelve tribes, descendants of the twelve sons of Jacob, gathered together the twelve stones and built an altar in praise of God. They were eventually to construct the Temple. This foreshadowed that the twelve disciples of Jesus should join together and honor Jesus as the Temple. For this reason, when his disciples were not uniting, Jesus said, “Destroy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raise it up” (John 2:19). The twelve disciples in fact failed to unite with each other, and one of them, Judas Iscariot, even sold Jesus to his foes. Only after Jesus suffered crucifixion and resurrected after three days was he able to bring together his scattered disciples. The disciples then honored the resurrected Jesus as the spiritual Temple. Only at his Second Coming will his followers be able to serve him as the incarnate Temple.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埃及)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제2차 노정을 출발할 때 그 해 정월(正月) 14일의 유월절(逾越節)을 지나고 진군하였던 것과 같이(출 12 : 17∼18), 길갈에 진을 쳤던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그 해 정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굳게 닫힌 여리고의 성벽을 향해 진군을 하였다. 땅의 소산(所産)을 먹기 시작하자 40년 간이나 내려 주시던 만나도 그쳤으므로 그때부터는 인간의 땀으로 된 곡식으로 생활해야만 되었으며, 사탄 도성의 최후의 관문을 뚫는 데 있어서도 인간으로서 할 책임을 다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4만의 병사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따라 일곱 제사장(祭司長)이 일곱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고, 또 그 뒤에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이 멘 법궤(수 3 : 3)가 따랐으며, 최후선에는 이스라엘 전군(全軍)이 연달아 진군하였던 것이다(수 6 : 8∼9).
When the Israelites left Egypt and set out for the land of Canaan, they observed the feast of Passover on the fourteenth day of the first month (Exod. 12:17-18). Likewise, the Israelites under Joshua’s leadership, who encamped at Gilgal, observed the feast of Passover on the fourteenth day of the first month of that year. Afterward, they set out for the city of Jericho. When they began to live on the produce of the land, God stopped giving the manna which He had been providing for forty years. From that time forth, they were to make a living with their own sweat. Furthermore, until they had overthrown every last satanic city, they had to strive to the utmost to fulfill their responsibility.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행군으로 하루에 한 번씩 6일이나 성(城)을 돌았어도 그 성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그들은 인내(忍耐)와 복종(服從)으로 사탄의 침범을 당한 6일의 창조기간(創造期間)을 탕감복귀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순종으로 6일을 찾아 세운 후, 제7일에 일곱 나팔을 부는 7인의 제사장(祭司長)이 성벽을 일곱 번 돌면서 7회의 나팔소리를 끝내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향하여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호령하자 백성들이 이에 응하여 일제히 큰소리로 외치니 그 성이 곧 붕괴되었다(수 6장).
As they approached Jericho, in accordance with God’s command, the Israelites put forty thousand soldiers at the forefront while seven priests blew seven trumpets as they marched behind the soldiers. Following behind them was the Ark of the Covenant carried by the Levitical priests, and the rest of the Israelite army marched at the rear. The Israelites marched around the fortified city in this formation once a day for six days, but this caused no change in the city. With patience and obedience, the people were restoring through indemnity the six-day period of creation which had been invaded by Satan. After they faithfully endured through six days, on the seventh day the seven priests circled the city walls seven times, blowing the seven trumpets, and Joshua said to the people: “Shout; for the Lord has given you the city” (Josh. 6:16). The people raised a great shout and the city walls tumbled down.
이러한 노정은 장차 예수님의 권능(權能)과 그의 성도(聖徒)들에 의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사탄의 장벽이 무너질 것을 보여 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성벽은 다시 쌓아서는 아니 될 것이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수 6 : 26)고 말하였던 것이다.
The conquest of Jericho (Josh. 6) foreshadowed that by the power of Christ and the work of his followers, the satanic barrier between Heaven and earth will crumble. Once dismantled, this wall will never be erected again. Thus, Joshua proclaimed: Cursed before the Lord be the man that rises up and rebuilds this city, Jericho. At the cost of his firstborn shall he lay its foundation, and at the cost of his youngest son shall he set up its gates (Josh. 6:26).
이리하여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적을 공격하게 된 여호수아는 벧호론 싸움에서의 19왕과 메롬 격전에서의 12왕을 합하여 모두 31왕을 멸하였으니(수 12 : 9∼24), 이것도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異邦)의 왕들을 전부 굴복시키시고 그 백성들을 포섭하여 통일된 지상천국을 건설하실 것을 미리 보여 준 것이었다.
Joshua then launched attacks on the enemy with insurmountable force. He defeated thirty-one kings altogether (Josh. 12:9-24). This foreshadowed that Christ will come as the King of Kings to build the unified Kingdom of Heaven on earth by bringing all gentile kings to complete surrender and winning the hearts of their people.
(3) 메시아를 위한 기대
2.2.3.3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이스라엘 민족은 정탐(偵探) 40일의 사탄 분립기간을 세우지 못하여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실패하고, 이 기간을 재탕감(再蕩減)하기 위하여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유리(流離)하고 다시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왔다.
We have learned that the Israelites failed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they could not fulfill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as a condition to separate Satan. To pay indemnity for this failure, during the third national course they wandered in the wilderness for forty years.
이때의 모세는 제3차 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에 따르는 모세의 반석 2타(磐石二打)로 말미암아 이 두 기대는 모두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埃及)에서 떠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섬멸(殲滅)되었으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가 세웠던 제2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정탐 40일의 사탄 분립기간을 믿음과 충성으로 찾아 세웠기 때문에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으나,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은 모세를 대신한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충성을 다하여 법궤를 모시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무찌르고 소망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During this period, Moses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hird course, and the Israelites stood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Yet Satan defiled these two foundations due to the people’s faithlessness and Moses’ mistake of striking the rock twice. Consequently, the older generation of Israelites, except for Joshua and Caleb, perished in the wilderness. Joshua and Caleb had faithfully fulfilled the forty-day spy mission while standing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econd course an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which Moses had laid. They thereby establishe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he younger generation of Israelites crossed the Jordan River while bearing the Ark of the Covenant with utmost faith under the leadership of Joshua, who succeeded Moses. Then, destroying the fortified city of Jericho, they entered Canaan, the promised land.
이렇게 되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됨으로써 아브라함 때에 이루어졌던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는 그의 제물 실수로 인하여 400년 애급고역(埃及苦役)의 탕감노정(蕩減路程)을 지나서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Based on this victory, they lai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in the third national course and established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for this course – albeit as a people without sovereignty.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had been fulfilled in the days of Abraham. His descendants passed through a four-hundred-year course of indemnity as slaves in Egypt before they could enter Canaan and there complete the nation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그러나 이미 후편 제1장 제3절 Ⅲ에서 상론(詳論)한 바와 같이, 그때는 이미 타락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하고 애급왕국(埃及王國) 등의 굳건한 왕국을 건설하여 하늘편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는 세워졌을지라도 그 터전 위에 사탄에 대결할 수 있는 하늘편의 왕국이 건설되기까지는 메시아가 강림(降臨)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간 내적 이스라엘도 또다시 불신으로 흘러 이 섭리는 다시 연장을 거듭하여 예수님 때까지 밀려 나왔던 것이다.
This required more than merely entering and conquering Canaan. As was discussed earlier in detail (cf. Foundation 3.3), fallen people had already founded powerful nations such as Egypt, led by satanic rulers who opposed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refore, even though the nation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was established under Joshua’s leadership, it would be necessary to build a sovereign kingdom from which the Messiah could confront the satanic nations of the world. However, once the younger generation of Israelites entered Canaan, they also became faithless. Hence, God’s providence was prolonged again, and would suffer repeated setbacks until the time of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