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 2. The Number of Generations or Years in the Periods of the Age of the Providence to Lay the Foundation for Restoration
Ⅰ.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며 또 어떻게 연장되는가
2.1 Why and How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s Prolonged
우리는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음으로써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려는 섭리가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으로 연장되어 예수님 때까지 이르렀고, 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이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다시 그의 재림기(再臨期)까지 연장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논술하였다.
God’s providence for humankind to lay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receive the Messiah, and attain the ultimate goal of restoration was prolonged from Adam’s day through the days of Noah, Abraham, Moses and finally to Jesus’ day. When Jesus was killed without accomplishing his ultimate purpose due to the people’s disbelie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as prolonged again until the time of the Second Coming.
그러면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는가? 이것은 예정론(豫定論)에 의하여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한번 세우신 뜻은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을 중심한 그 뜻 성사(成事)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責任分擔)에 그 인물의 책임분담이 합해져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뜻 성사의 사명을 띤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시대를 달리하여 다른 사람을 그 대신으로 세워서라도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복귀섭리는 연장되어 나아간다.
Why has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been prolonged? This question can only be answered with an understanding of the principle of predestination. According to this principle, since God absolutely predestines His Will, He surely will realize it one day. However, whether God’s Will is fulfilled through any particular individual is conditional upon the fulfillment of his portion of responsibility, which is in addition to God’s portion of responsibility. Accordingly, when the Will is not fulfilled because the responsible person fails, God will choose another person in a different era to take his place. God will continue His work until its complete fulfillment, prolonging the providence in the process.
다음으로 우리는 복귀섭리(復歸攝理)는 어떻게 연장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를 닮은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양상(存在樣相)이나 그 운동이나 또는 그 성장과정 등 모두가 3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여 원형운동(圓形運動)을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정(正)·분(分)·합(合)의 3단계의 작용에 의하여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이룸으로써 3점을 통과해야 되는 것 이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복귀해 나아가는 섭리는 말씀에 의한 재창조(再創造)의 섭리이기 때문에, 이 복귀섭리가 연장됨에 있어서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3단계까지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Let us next examine how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has been prolonged.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Creation, God is a being of the number three. All things created in His likeness manifest themselves through a three-stage process with respect to their mode of existence, movement and growth. For any entity to fulfill the purpose of creation by establishing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with its spherical motion, it must go through the three stages of origin-division-union action and engage in interaction with three object partners to achieve the three object purpose. The providence to restore the purpose of creation is one of re-creation based on the Word. Therefore, whenever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s prolonged, it may extend to as many as three stages. On the basis of the Principle of Creation, up to three attempts are allowed.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실체헌제(實體獻祭)’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象徵獻祭)’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이삭을 거쳐 야곱에까지 연장되었으며, 또 모세나 예수님을 중심한 가나안 복귀노정도 각각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전 건축(聖殿建築)의 이상(理想)은 사울왕의 잘못으로 인하여 다윗왕 솔로몬왕에까지 연장되었고, 또 첫 아담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은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쳐 그의 재림기(再臨期)까지 3차로 연장되어 가는 것이다.
For example, when in Adam’s family Cain and Abel failed to make the substantial offering, the dispensation was repeated in the families of Noah and Abraham, and fulfilled on the third attempt. When Abraham made his mistake in the symbolic offering, the dispensation was prolonged through Isaac and fulfilled by Jacob. The courses to restore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Moses and Jesus each were extended to three courses. When King Saul failed to build the Temple, this dispensation was prolonged through two more kings: David and Solomon. God’s ideal of creation, which was not realized with Adam, has awaited a second and a third providence for its realization: through Jesus, the second Adam, and then through Christ at the Second Advent.
우리의 격언에 ‘초부득삼(初不得三)’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현실생활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Common proverbs, such as the Korean saying “If not accomplished at the first attempt, it surely will be done at the third,” exemplify this aspect of the Principle expressed as everyday wisdom.
Ⅱ. 종적인 탕감조건과 횡적인 탕감복귀
2.2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and Horizontal Restoration through Indemnity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뜻을 담당한 중심인물(中心人物)은, 자기가 세워질 때까지의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있어서 자기와 동일한 사명을 담당했던 인물들이 세우려 했던 모든 탕감조건(蕩減條件)들을 자기를 중심하고 일시에 탕감복귀(蕩減復歸)하지 않으면 그들의 사명을 계승 완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물이 또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그가 세우려 했던 탕감조건들은 모두 그 다음에 그의 대신 사명자(使命者)로 오는 인물이 세워야 할 탕감조건으로 넘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귀섭리노정에서 그 섭리를 담당했던 인물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가중되어 내려온 조건들을 종적(縱的)인 탕감조건이라 하고,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어떤 특정한 사명자를 중심하고 일시에 탕감복귀하는 것을 횡적(橫的)인 탕감복귀라고 한다.
To inherit and complete the missions of his predecessors in providential history, a central figure responsible for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must fulfill, in a short time, all the indemnity conditions which his predecessors tried to fulfill. If this central figure also fails in his mission, all the indemnity conditions he tried to fulfill are passed down to the next person entrusted with the same responsibility. The conditions which accumulate in the course of providential history due to central figures’ failures to complete their responsibility are called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The task of the central figure to fulfill all these conditions in a short time is called horizontal restoration through indemnity.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는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이 세우려 했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3제물(三祭物)을 한 제단에 놓고 일시에 헌제(獻祭)한 것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의 3단계로 연장되어 내려온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아브라함의 헌제를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3제물은 일찍이 아담과 노아가 세우려다 못 세운 여러 조건들과 또 아브라함이 중심이 되어 세우려 하였던 모든 조건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For example, Abraham had to restore horizontally through indemnity all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which Adam’s family and Noah’s family before him had tried to fulfill. In offering the three sacrifices at one time on the same altar, Abraham was to restore horizontally through indemnity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accumulated during the three dispensations of the prolonged providence. The three offerings represented all the conditions which Adam and Noah could not fulfill, as well as those which Abraham had to fulfill as the new central figure.
그리고 야곱은 노아로부터 그 자신에 이르는 12대(代)의 종적인 탕감조건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조건을 세워야 했기 때문에, 12자식(子息)을 세워 12지파(支派)에로 번식시켜 나아갔었다.
Jacob, in his course, had to fulfill in a short time a condition to horizontally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accumulated through the twelve generations since Noah. For this purpose, he was given twelve sons from whom descended the twelve tribes of Israel.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역시 4천년 섭리역사노정(攝理歷史路程)에서 복귀섭리를 담당했던 수많은 선지자(先知者)들이 남겨 놓은 종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들을 그 자신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셔야 했던 것이다.
Jesus employed this method to restore horizontally through indemnity all the accumulated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left unfulfilled by the forefathers, prophets and kings who had led the providence during the four thousand years of biblical history until his time.
예를 들면 예수님이 12제자(弟子)와 70문도(門徒)를 세우신 것은, 12자식과 70가족을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야곱의 노정과 12지파(支派)와 70장로(長老)를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모세노정 등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예수님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禁食祈禱)를 하신 것은,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데 필요했던 ‘40일 사탄 분립’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예수님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For instance, Jesus chose twelve disciples and seventy followers in order to restore in a short time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which had accumulated from Jacob’s course, in which God had worked with Jacob’s twelve sons and seventy kinsmen, and from Moses’ course, in which God had worked with the twelve tribes of Israel and seventy elders. Moreover, Jesus fasted for forty days to restore horizontally all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in the form of dispensation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which were required for the foundation of faith.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복귀섭리(復歸攝理)를 담당한 인물은 단순히 그 한 개체로서만이 아니고 그에 앞서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 간 모든 선지선열(先知先烈)들의 재현체(再現體)이며, 또한 그들의 역사적인 결실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In this sense, we can understand that each central figure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stands not only for himself as an individual, but represents all the forefathers, prophets and sages who had the same mission in the past. He bears within him the fruits of their labors in history.
Ⅲ.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복귀
2.3 Horizontal Restoration through Indemnity Carried Out Vertically
다음으로는 종(縱)으로 된 횡적(橫的)인 탕감복귀(蕩減復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Sometimes horizontal restoration is achieved through a vertical dispensation which may span several generations.
이미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상술(詳述)한 바이지만, 아브라함 때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에 있어서 제3차에 해당하는 때였다. 따라서 그때에는 기필코 그 뜻을 이루어야 할 원리적(原理的)인 조건하(條件下)에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의 실수로 말미암아 중첩(重疊)되어 왔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들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 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This was the case with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Abraham’s family. By making an acceptable symbolic offering, Abraham was supposed to restore horizontally through indemnity all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which had accumulated due to the mistakes of Adam’s family and Noah’s family.His mistake in the offering caused yet another failure and delay in the providence. As was explained above, since this was the third attempt in the providence to restore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the Principle required that his family accomplish God’s Will without fail.
그러나 아브라함은 ‘상징헌제(象徵獻祭)’에서 실수하였기 때문에 그 사명을 다음으로 연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이미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시고, 또 그로부터 종적으로 연장되는 복귀섭리도 연장되지 않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자리에 세우셔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이미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상론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각각 그 개체는 서로 다르지만 뜻을 중심하고 보면 완전한 일체로서 탕감조건을 세우도록 섭리하셨다.
Therefore, in spite of his failure, God sought a way to regard Abraham as if he had not made the mistake, but had restored horizontally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without any prolongation. To this end, God set up a special dispensation: He had Abraham, Isaac and Jacob fulfill the necessary indemnity conditions while regarding these three individuals as one person with respect to His Will.
이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뜻으로 보면 완전히 일체가 되었었기 때문에 야곱의 성공은 곧 이삭의 성공이었고, 또 그것은 곧 아브라함의 성공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중심한 뜻은 종적으로 이삭과 야곱으로 연장되었으나, 결국 뜻을 중심하고 보면 그것은 연장되지 않고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이 되었던 것이다.
Therefore, despite this vertical prolongation through three generations, Jacob’s victory and Isaac’s victory became Abraham’s own victory, as if achieved in his generation without any delay (cf. Foundation 3.1.2.3, Foundation 3.3).
그러므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뜻을 중심한 면에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 과 같이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 뜻은 아브라함 1대(一代)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출애굽기 3장 6절에 하나님을 일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이러한 견지에서 그들 3대(三代)는 일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The oneness of these three generations is signified by God’s appellation of Himself as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Exod. 3:6).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그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패로 말미암아 그 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종적으로 이삭과 야곱의 3대로 연장해 가면서 세운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결국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1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셨기 때문에, 이것을 종(縱)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橫的 蕩減復歸)라고 하는 것이다.
Thus, God could credit Abraham with having fulfilled, in his own generation, the horizontal indemnity conditions which he had failed to complete, by completing them vertically through the generations of Isaac and Jacob. This type of restoration is called horizontal restoration through indemnity carried out vertically.
Ⅳ.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
2.4 Numerical Indemnity Periods for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우리는 이미 후편 서론(緖論)에서,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中心人物)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면 그를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蕩減期間)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을 논술한 바 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A central figure has to fulfill one or more numerical indemnity periods in order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cf. Restoration 1.2.1). Let us examine the reasons for this.
하나님은 수리적(數理的)으로도 존재하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을 중심한 피조세계(被造世界)는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수리적인 전개에 의한 실체대상(實體對象)인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被造物)의 평면적인 원리를 찾아 나아가는 과학의 발달이 수리적인 연구에 의하여서만 가능한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된 인간 시조는 수리적인 성장기간(成長期間)을 거친 후에야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수리적인 완성실체(完成實體)가 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God exists upon His Principle, which has a numerical aspect. The universe, with human beings at its center, was created based on numerical principles to be the unfolding of the dual characteristics of the invisible God as His substantial object partner. This is the reason science, which seeks to discover the external laws governing the universe, progresses through research conducted with the aid of mathematics. The first human ancestors were to become complete by passing through a growing period characterized by certain numbers, thus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In their perfection, they were to embody the quality of these numbers.
이러한 피조세계(被造世界)가 사탄의 주관권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것을 상징하는 어떠한 조건물(條件物)을 세워 놓고, 사탄의 침범을 당한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數理的)인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We must investigate these matters because restoration of the foundation of faith requires not only that we offer an object for the condition, symbolizing the universe in bondage to Satan, but also that we pass through a numerical period of indemnity to restore the numbers defiled by Satan.
그러면 원래 타락 전 인간 시조(始祖)는 어떠한 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서 어떠한 수리적인 완성실체가 되었어야 했던가?
Based upon what numbers were the first human ancestors, prior to the Fall, to lay the foundation of faith? What numbers were they to have embodied in their perfection?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무릇 모든 존재물 가운데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미완성기에 있었던 아담과 해와도 사위기대 조성에 의하여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위기대는 그 각 위(位)가 각각 성장기간의 3단계를 거치어 도합 12수의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완성함으로써, 12대상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We learned in the Principle of Creation that no entity can exist or thrive without first forming a four position foundation. Accordingly, Adam and Eve in their immaturity had to each form a four position foundation for their existence. Each position in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is to pass through the three stages of the growing period, making a total of twelve. Furthermore, each position in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accomplishes the three object purpose by taking three object partners, making a total of twelve object partners and fulfilling the twelve object purpose.
따라서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기간이었던 성장기간은 바로 12수 완성기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 시조는 12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12대상 목적을 완성함으로써 12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 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12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12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Hence, the growing period during which Adam was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was a period for fulfilling the number twelve. While in their immaturity, the first human ancestors were to lay the foundation of faith based on the number twelve, and in perfection they were to attain the twelve object purpose and thus embody the quality of the number twelve. Due to their fall, Satan defiled this number. Therefore, a central figure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must pass through a period of indemnity to restore the number twelve in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Only on that basis can he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restoration of the perfect embodiment of the quality of the number twelve.
예를 들면, 노아가 방주(方舟)를 짓는 기간 120년, 모세를 중심한 가나안 복귀섭리기간 120년, 아브라함이 소명(召命)된 후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울 때까지의 120년, 또 이 기간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있어서의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 120년과 신약시대(新約時代)에 있어서의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 120년 등은 모두 이 12수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Some examples of the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twelve are: the 120 years it took Noah to build the ark, the 120 years of the providence to restore Canaan under Moses’ leadership, and the 120 years from when Abraham was called by God until Jacob purchased the birthright from Esau for some bread and lentils. As we will discuss below, this last period was to be restored by the 120-year period of the united kingdom in the Old Testament Age, and in the New Testament Age by the corresponding 120-year period of the Christian empire under Charlemagne and his sons.
다음으로 타락 전 미완성기의 아담과 해와는 성장기간의 3단계를 거쳐 제4단계인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直接主管圈內)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완성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믿음의 기대’를 세워 나아가던 성장기간은 4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둘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 시조는 4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사위기대를 완성함으로써 4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 또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中心人物)은 4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4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The maturation process during which Adam and Eve were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also required a period to fulfill the number four. They were to pass through the three stages of the growing period and enter the realm of God’s direct dominion, which is the fourth stage. At that point, they would have completed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By thus fulfilling the number four, the first human ancestors were to become its perfect embodiments. Due to the Fall, this number was defiled by Satan. Therefore, central figures in the providence must complete an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ur in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Only on that basis can they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restoration of the perfect embodiment of the quality of the number four.
이미 후편 제1장 제2절 Ⅰ의 2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 노아의 방주를 중심한 심판 40일을 비롯한 모세의 금식 40일, 가나안 정탐기간(偵探期間) 40일, 예수님의 금식(禁食) 40일과 부활(復活) 40일 등은 모두 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4수 복귀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이었던 것이다.
It was already explained that indemnity periods to restore the number four are necessary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cf. Foundation 2.1.2). Examples include: Noah’s forty-day flood judgment, Moses’ forty-day fasts,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of Canaan, Jesus’ forty-day fast, and the forty days of the ministry of the resurrected Jesus.
그리고 또 성장기간(成長期間)은 21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셋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 시조는 21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함으로써 21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 또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중심인물은 21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21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The growing period is also the period to fulfill the number twenty-one. The first human ancestors were to have become the perfect embodiments of the number twenty-one by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through a period based on the number twenty-one and then realizing the purpose of creation. However, due to the Fall, this number was defiled by Satan. Hence, central figures in history must complete an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twenty-one in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그러면 그러면 어찌하여 성장기간(成長期間)이 21수 완성기간이 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Only on that basis can they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restoration of the perfect embodiment of the quality of the number twenty-one.
21수의 뜻을 알려면 먼저 3수와 4수와 7수에 대한 원리적인 뜻을 알아야 한다.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중화적 주체(中和的 主體)이신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다. 그리고 피조물(被造物)의 완성은 곧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개체가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마음과 몸이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해야 하고, 부부로서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남성과 여성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해야 하며, 또 피조세계(被造世界)가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인간과 만물세계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이 이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는 성장기의 3기간을 거쳐서 삼대상목적(三對象目的)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써 3수를 하늘수 또는 완성수라고 부른다.
To understand the significance of the number twenty-one, we should first understand the significance of the numbers three, four and seven in the Principle. God, whose dual characteristics exist in harmonious oneness, is a Being of the number three. The creation is perfected when it attains oneness with God in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Thus, for an individual to become perfect, he must form within himself a four position foundation in which the mind and body form a trinity, the center of which is God. For a man and a woman to become a perfect husband and wife, they must build a four position foundation in which they form a trinity with God as their center. For the universe to reach its perfection, it must form a four position foundation in which human beings and the natural world form a trinity with God as their center. Furthermore, for created beings to realize a four position foundation by becoming one centered on God, they must first pass through the three stages of the growing period and complete the three object purpose. For these reasons, the number three is the number of Heaven, or the number of perfection.
이렇듯 어떠한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 하여 삼위일체를 이룰 때에, 그 개성체는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여 동서남북의 4방성을 갖춘 피조물(被造物)로서의 위치를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4수를 땅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When a subject partner and an object partner form a trinity by becoming one centering on God, the resulting union is an individual embodiment of truth which completes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Having thus secured the status of God’s creation, it comes to have position and extension in the four directions: north, south, east and west. In this sense, the number four is the number of the earth.
이와 같이 피조물이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진 존재로서 완성되면, 하늘수와 땅수를 합한 7수 완성의 실체가 된다. 천지창조(天地創造)의 전기간이 7일이 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창조의 전기간을 한 기간으로 볼 때에는 7수 완성기간이 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완성되는 한 기간을 7수 완성기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기간(成長期間)을 형성하는 3기간을 각각 소생단계(蘇生段階)가 완성되는 한 기간, 장성단계(長成段階)가 완성되는 한 기간, 완성단계(完成段階)가 완성되는 한 기간으로 본다면, 그 기간들도 역시 각각 7수 완성기간이 되므로 전성장기간(全成長期間)은 21수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When a created being passes through the three stages of the growing period and builds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it becomes perfectly established in the qualitative dimensions of time and space, respectively. Thus, every creation becomes the perfect embodiment of the number seven, which is the sum of the number of Heaven and the number of earth. This is the reason why the Bible recounts th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as having taken seven days. Just as the period of creation fulfills the number seven, any period for attaining completion may be regarded as a period to fulfill the number seven. Looking at the three stages of the growing period in this manner, the period to complete the formation stage, the period to complete the growth stage, and the period to complete the completion stage are each periods which fulfill the number seven. In total, the entire growing period may be regarded as a period to fulfill the number twenty-one.
이제 ‘믿음의 기대’를 위한 중심인물(中心人物)들이 세웠던 21수 탕감기간(蕩減期間)의 예를 들면, 노아 홍수(洪水)의 기간에 하나님이 3단계의 섭리를 예시(豫示)하시기 위하여 노아로 하여금 3차에 걸쳐 비둘기를 내보내게 하셨는데, 그 간격을 각각 7일간으로 하심으로써 뜻으로 본 그 전기간은 21일간이 되었던 것이다(창 7 : 4, 창 8 : 10, 창 8 : 12). 그리고 야곱이 가정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세우기 위하여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섭리의 기간을 세울 때에도 역시 7년씩 3차에 걸친 21년을 요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야곱의 이러한 21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으로서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바빌론 포로(捕虜) 및 귀환기간(歸還期間) 210년이 있었고, 신약시대(新約時代)에는 교황 포로 및 귀환기간 210년이 있었던 것이다.
Examples of indemnity periods of the number twenty-one include the following: After the flood, God had Noah send out a dove three times to foreshadow His providence, which was to be carried out in three stages. The dove was sent out in seven-day intervals; hence the entire period adds up to twenty-one days (Gen. 7:4); (Gen. 8:10, 12). When Jacob walked the family course to restore Canaan, he labored in exile in Haran before returning home to Canaan, enduring three seven-year periods which add up to twenty-one years. In the Old Testament Age, there was the 210-year period of the Israelites’ exile in Babylon and their return to Israel, which was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is twenty-one-year course of Jacob. In the New Testament Age, there was the 210-year period from the papal captivity in Avignon to the eve of the Reformation, which was also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twenty-one-year course of Jacob.
성장기간(成長期間)은 또한 40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넷째로, 타락 전 미 완성기에 있었던 인간 시조는 40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함으로써 40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중심인물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40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The growing period is also the period to fulfill the number forty. The first human ancestors were to perfectly embody the quality of the number forty by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based on the number forty and then realizing the purpose of creation. Satan’s attack at the Fall defiled this number. Hence, the central figures in the providence must fulfill an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rty in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Only on that basis can they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restoration of the perfect embodiment of the quality of the number forty.
그러면 어찌하여 성장기간(成長期間)이 40수 완성기간이 되는가를 알아보자.
To understand how the number forty is fulfilled in the growing period, we must first study the significance of the number ten.
이것을 알기 위하여는 먼저 10수에 대한 의의를 알아야 한다. 성장기간 3단계의 각 기간이 다시 각각 3단계로 구분되면 모두 9단계가 된다. 9수의 원리적 근거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무형(無形)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수리적 전개에 의하여 그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분립된 피조물은, 성장기간의 9단계를 지나서 제 10단계인 하나님의 직접주관권(直接主管圈)으로 돌아가 그와 일체를 이룰 때 비로소 창조목적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10수를 귀일수(歸一數)라고 한다. 하나님이 아담 이후 10대 만에 노아를 찾아 세우셨던 것은, 아담을 중심하고 이루시려다가 못 이루신 뜻을 노아를 중심하고 복귀하여 하나님에게로 재귀일(再歸一)하게 하시기 위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If we divide each of the three stages of the growing period into three sub-stages, we arrive at a total of nine levels. Herein lies the significance of the number nine in the Principle. As a numerical unfolding of the dual characteristics of the invisible God, each of God’s creations passes through the nine levels of the growing period. Each then fulfills its purpose of creation when it becomes one with God in the realm of His direct dominion, which constitutes the tenth level. For this reason, we call the number ten the number of unity. God set up the ten generations after Adam to fulfill the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ten before he called upon Noah. By this condition, God wanted to have Noah complete the Will which Adam had left unfinished, and then have him become one with God.
그런데 아담과 해와를 중심한 사위기대(四位基臺)는, 그 각 위(位)가 각각 성장기간의 10단계를 거치어 도합 40수의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완성함으로써 40수 완성실체기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기간은 40수 완성기간이기도 한 것이다.
In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which Adam and Eve should have established, each position was to pass through the ten levels in their course to maturity, fulfilling in total the number forty. Thus, the course of their maturation was a period to fulfill the number forty, and their four position foundation would have become the perfect embodiment of the number forty.
이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역사노정에서 이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워졌던 40수 탕감기간의 예를 들어 보면, 노아 때에 방주(方舟)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 기간, 모세의 바로궁중 40년, 미디안광야 40년, 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曠野) 40년 등이 그것이다.
Some examples of indemnity periods of the number forty set up to restore this foundation include: the forty days from the time Noah’s ark came to rest on Mt. Ararat until he sent out the dove, the forty years of Moses’ life in the Pharaoh’s palace, his forty-year exile in the wilderness of Midian, and the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during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여기에서 우리는 탕감복귀섭리노정(蕩減復歸攝理路程)에 있어서의 40수는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타락인간(墮落人間)이 4수를 탕감복귀할 때 귀일수(歸一數)인 10수가 승(乘)해져서 된 40수이고, 또 하나는 바로 위에서 논술한 바 타락 전 아담이 세워야 했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40수이다.
We can deduce that there are two types of periods of the number forty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One type is an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ur; in restoration, it is multiplied by the number ten, the number of unity, to form forty. The second type is the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rty itself, which Adam should have fulfilled before the Fall, as was just described.
그런데 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 40년은 모세의 바로궁중 40년과 미디안광야 40년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기간인 동시에 정탐(偵探) 40일, 따라서 모세의 금식(禁食) 40일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40년 기간은 위에서 논한 바 서로 성격을 달리한 두 40수를 동시에 탕감복귀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중심인물이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동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The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for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set up to restore both these types of periods of forty at the same time. It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rty-day spy mission and Moses’ forty-day fast, which were periods to restore the number four. It also restored through indemnity Moses’ forty years in the Pharaoh’s palace and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of Midian, which were periods to restore the number forty. Such a phenomenon occurs when the central figure for the foundation of faith is restoring through indemnity horizontally all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in the history of the providence.
그리고 이 40수를 탕감복귀하는 섭리가 연장될 때에는 그것이 10단계 원칙에 의한 탕감기간(蕩減期間)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40수는 10배수 배가원칙(倍加原則)에 따라 400수 또는 4000수로 연장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애급 고역(埃及苦役) 400년,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4000년 등이 그것이다.
When such a dispensation to horizontally restore periods of the number forty is again prolonged, it can be extended by a rule of multiplication by ten, because the required period of indemnity may have to be expanded through ten stages. Thus, a period of forty years may be expanded to four hundred or even four thousand years. Examples include: the four-hundred-year period from Noah to Abraham, the four hundred years of slavery in Egypt and the four thousand biblical years from Adam to Jesus.
우리는 이제 위에서 논술한 바에 의하여,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중심인물(中心人物)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수리적(數理的)인 탕감기간(蕩減期間)들을 세워야 하는가를 종합해 보기로 하자.
Let us summarize the numerical periods of indemnity a central figure in the providence must fulfill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Had the first human ancestors not fallen, they would have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based on significant numbers, including twelve, four, twenty-one and forty.
원래 인간 시조(始祖)가 타락하지 않고 12수, 4수, 21수, 40수 등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서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함으로써 이러한 수들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 모든 것들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復歸攝理歷史路程)에 있어서 이것들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12수, 4수, 21수, 40수 등을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으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여 이러한 수들의 완성실체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When they then accomplished the purpose of creation, they would have become the perfect embodiments of the quality of these numbers. Yet due to their fall, all these numbers were claimed by Satan. Therefore, the central figures in providential history must fulfill numerical periods of indemnity to restore the numbers twelve, four, twenty-one and forty before they can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Only on that basis can they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restoration of the perfect embodiment of the quality of these numbers.
Ⅴ. 대수를 중심한 동시성의 시대
2.5 The Parallel Periods Determined by the Number of Generations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10대 1600년 만에 노아를 택하시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중심인물로 세우셨다. 우리는 여기에서 1600년과 10대는 어떠한 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서의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
According to the Bible, God chose Noah to shoulder the providence ten generations and sixteen hundred years after Adam. Let us examine what significant numbers were restored by the sixteen hundred years and the ten generations.
우리는 바로 위에서 10수는 귀일수(歸一數)라는 것과 성장기간(成長期間)은 이 10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논하였다. 그러므로 인간 시조는 이 10수 완성기간을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 수행에 의하여 통과함으로써 10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이것들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한 중심인물을 찾아 세워 가지고 하나님에게 재귀일(再歸一)시키는 10수 완성실체의 복귀섭리(復歸攝理)를 하기 위하여는, 그 중심인물로 하여금 1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기 위하여, 아담으로부터 10대 만에 노아를 부르시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로 세우셨던 것이다.
The number ten is the number of unity with God. The course of growth to maturity requires a period to fulfill the number ten, through which Adam and Eve were to become the perfect embodiments of the number ten. When this number was defiled by Satan due to their Fall, God sought a central figure in order to restore this number and begin His work to unite the people with Himself by restoring them as perfect embodiments of the quality of the number ten. For this purpose, God would require the central figure to complete an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ten. This is why God called Noah ten generations after Adam.
우리는 또 인간 시조가 40수 완성의 성장기간을 다 거쳐야만 40수 완성실체가 될 수 있었다는 것도 바로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탕감복귀를 위한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여,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세워야 했던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으면, 40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중심인물로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위기대의 각 위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16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이 되어야 하고, 이것을 귀일수로서의 10대에 걸쳐서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160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10대 1600년 만에 노아를 택하셨던 것은 타락인간이 바로 이러한 160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It was discussed earlier that the first human ancestors were to pass through a course to maturity which fulfilled the number forty and thereby become perfect embodiments of the number forty. For fallen people to become the central figures who will pave the way for the restoration of perfect embodiments of the number forty, they must establish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necessary for restoration and then fulfill an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rty. Each position of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should fulfill the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rty, yielding an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160. Moreover, since fallen people were to fulfill this number through ten generations – ten signifying unity with God – they had to complete an indemnity period of the number sixteen hundred. This is the reason the period from Adam to Noah was sixteen hundred years, by biblical reckoning.
하나님은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간 후 10대 400년 만에 다시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中心人物)로 세우셨다. 따라서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시대는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시대를 대수(代數)를 중심하고 탕감복귀하는 동시성의 시대였다.
After the failur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Noah’s family, God waited four hundred years, until another ten generations had elapsed, before calling Abraham to carry the burden of the providence. Set according to the number of generations, the period from Noah to Abraham was parallel to the period from Adam to Noah, and was to restore that earlier period through indemnity.
이 시대가 어찌하여 400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이미 후편 제1장 제3절의 Ⅰ에서 논술하였다. 하나님이 노아로 하여금 40일 심판기간(審判期間)을 세우게 하셨던 것은 10대와 1600년에 의한 수리적인 탕감복귀의 전목적(全目的)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함의 실수로 인하여 이 40일 심판기간이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로 하여금 또 이것을 복귀하는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세우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 이후 각 대(代)마다 160수 복귀를 위한 탕감기간을 세우는 섭리를 하시어 이것이 노아 때까지 10대를 계속하여 내려오게 되었던 것과 같이, 그와 동시성의 시대인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10대도 각 대를 심판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써 세워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It was discussed earlier why this period was made four hundred years (cf. Foundation 3.1.1). God had Noah endure the forty-day flood judgment for the purpose of accomplishing the goal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hich He had pursued by setting up the ten generations and sixteen hundred years. When this forty-day flood judgment was defiled by Satan due to Ham’s mistake, God had to work through another central figure to restore it. From Adam to Noah, God worked to fulfill indemnity periods to restore the number 160 in each of ten generations. In the parallel period of ten generations from Noah to Abraham, God set each generation as the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rty, which is derived from the flood judgment.
그런데 1대의 탕감기간을 40일로써 세울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偵探) 40일의 실수를 광야 표류(曠野漂流) 40년 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하였던 것과 같은(민 14 : 34) 탕감법칙(蕩減法則)에 의하여 심판 40일의 실수를 40년 기간으로써 탕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40년으로써 1대의 탕감기간으로 세우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1대를 40년 탕감기간으로써 세우게 하시는 섭리가 10대에 걸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전탕감기간(全蕩減期間)은 400년을 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The failure of the forty-day flood judgment had to be restored through a period of the number forty. Since the restoration of each subsequent generation had to span its entire length, it could not be fulfilled in only forty days. Hence, God set the indemnity period to be fulfilled by each generation as forty years. A day of the flood was indemnified by a year, just as in Moses’ time when the failure of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was restored through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Num. 14:34). Since the dispensation in which each generation was set as a forty-year indemnity period continued through ten generations, the entire span of the indemnity period came to be four hundred years.
Ⅵ.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시대
2.6 Providential Periods of Horizontal Restoration through Indemnity Carried Out Vertically
위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복귀섭리(復歸攝理)를 담당한 중심인물은 종적인 탕감조건을 모두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섭리역사가 연장될수록 복귀섭리를 담당하는 후대(後代)의 인물이 세워야 할 횡적인 탕감조건은 점점 가중되어 가는 것이다.
As explained earlier, each central figure of the providence is called to restore horizontally all th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accumulated up to his time. Hence, the longer providential history is prolonged, the heavier the indemnity conditions will be for the central figures of later generations to fulfill horizontally.
그런데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복귀섭리를 처음으로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종적인 탕감조건은 아직 생기지 않았었다. 따라서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가인과 아벨이 ‘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하는 것과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順從屈伏)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헌제(實體獻祭)’를 하는 것으로써 단순하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도 그들이 상징과 실체의 두 헌제를 하는 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Adam’s family, there were as yet no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because the providence had just begun. Therefore,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could have been laid quite simply by Cain and Abel properly making the symbolic offerings and the substantial offering. It would have merely required that once Abel had made his offering in a manner acceptable to God, Cain should have obeyed and followed Abel to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In regard to the numerical indemnity periods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these could have been completed in the short time necessary for making the symbolic and substantial offerings.
그러므로 아담 이후의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들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바로 위에서 논한 바 12, 4, 21, 40 등의 각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은, 아담가정의 헌제(獻祭) 실패로 말미암아 복귀섭리(復歸攝理)의 기간이 연장됨으로써 그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이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아는 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될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로서 방주(方舟) 짓는 기간 120년, 홍수심판(洪水審判) 기간 40일, 비둘기를 3차 내보내기 위하여 세웠던 7일씩 3차를 합한 21일 기간(창 7 : 4, 창 8 : 10, 창 8 : 12),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 기간 등을 찾아 세워야 했던 것이다(창 8 : 6).
However, whe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as prolonged due to the failure of Adam’s family,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began to accumulate in the form of various numerical indemnity periods. Therefore, in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the central figures since Adam’s day have had to complete numerical indemnity periods to restore such numbers as twelve, four, twenty-one and forty. In the case of Noah, he was supposed to restore in his time all of these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he had to go through several numerical indemnity periods: 120 years to build the ark, forty days of the flood judgment, twenty-one days during which he sent out the dove three times at seven-day intervals, and the forty-day period from the time the ark came to rest on Mt. Ararat until he sent out the dove.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노아가 찾아 세웠던 이러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어, 그것들은 다시 종적(縱的)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지게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기간들을 다시 ‘상징헌제’로써 일시에 횡적(橫的)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역시 ‘상징헌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기간들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였었다. 그러므로 이 기간들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써 복귀하기 위하여 뜻 성사를 이삭과 야곱에로 연장시켜 가면서 12, 4, 21, 40의 각 수에 해당하는 탕감기간들을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Noah faithfully fulfilled these numerical indemnity periods, but due to Ham’s mistake they were invaded by Satan. Consequently, they were again left behind as vertical indemnity conditions. Abraham had the opportunity to restore them all at once through his symbolic offering. However, because Abraham failed in his offering, the indemnity periods could not be restored horizontally. They then had to be restored vertically: by prolonging the fulfillment of His Will through Isaac and Jacob, God worked to fulfill in succession indemnity periods to restore the numbers twelve, four, twenty-one and forty.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있어서, 그가 하란에서 떠난 후 야곱이 떡과 팥죽으로써 에서로부터 장자(長子)의 기업(基業)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 그리고 그때로부터 야곱이 이삭에게 장자 기업의 축복을 받고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창 28 : 10∼14)까지의 40년, 또 그때로부터 하란에서의 고역(苦役)을 마치고 처자(妻子)와 재물(財物)을 취해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21년(창 31 : 41),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 팔려간 요셉을 찾아서 애급(埃及)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40년 등은 모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들이었다. 이와 같이 되어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 기간의 연수(年數)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In the providence in Abraham’s family, the following indemnity periods, which should have been fulfilled horizontally, were instead carried out in vertical succession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120 years from the time Abraham left Haran until Jacob purchased the birthright from Esau with bread and a pottage of lentils; forty years from that time until Jacob was given the blessing of the eldest son by his father Isaac and received God’s blessing on his way to Haran (Gen. 27:1-29); (Gen. 28:10-14); twenty-one years from that time until he completed his toil in Haran and returned to Canaan with his family and wealth (Gen. 31:41); and forty years from the time Jacob returned to Canaan until his family entered Egypt at Joseph’s invitation. In this way, the indemnity conditions which could not be restored horizontally were completed as extended vertical periods of fixed lengt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