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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연장시대

7일 · 원리의 워크숍
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연장시대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데 있으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서 그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어 가는 것이다.
  •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데 있으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서 그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어 가는 것이다.
  • 그러므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를 반복하여 온 복귀섭리의 노정은 결국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려는 섭리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 이러한 관점에서 각 섭리시대의 대비적인 성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의 섭리를 이루어 나온 중심민족은 이스라엘 선민이었다.
  •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의 섭리를 이루어 나온 중심민족은 이스라엘 선민이었다.
  •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사는 이 시대에 있어서의 복귀섭리역사의 사료(史料)가 되는 것이다.
  •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의 섭리를 이루어 나온 중심민족은 기독교 신도들이었다.
  • 따라서 기독교사가 이 시대의 복귀섭리역사의 사료가 되는 것이다.
  • 이러한 의미에서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을 제1 이스라엘이라고 한다면, 신약시대(新約時代)의 기독교 신도들은 제2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제1절

애급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사탄 분립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으므로, 이 400년 기간을 다시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한 애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에는 야곱과 그의 12자식을 중심한…
  •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사탄 분립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으므로, 이 400년 기간을 다시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한 애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에는 야곱과 그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애급(埃及)으로 들어간 이래
  • 그 후손들이 400년 동안 애급인들에게 처참한 학대를 받았었다.
  •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 및 기독교신도들이 로마제국에서 400년 동안
  • 처참한 박해를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애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에는 야곱과 그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애급(埃及)으로 들어간 이래 그 후손들이 400년 동안 애급인들에게 처참한 학대를 받았었다.
  • 애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에는 야곱과 그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애급(埃及)으로 들어간 이래 그 후손들이 400년 동안 애급인들에게 처참한 학대를 받았었다.
  • 로마제국 박해시대(迫害時代)에는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를 비롯한 여러 세대의 기독교신도들이 400년 동안 로마제국에서 처참한 박해를 당하였다.
애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에 있어서는 제1 이스라엘 선민들이 할례(割禮)를 하고, 희생(犧牲)을 드리며, 애급을 떠날 때에는 안식일(安息日)을 지킴으로써 스스로를 정결케 하였다.
  • 애급고역시대(埃及苦役時代)에 있어서는 제1 이스라엘 선민들이 할례(割禮)를 하고, 희생(犧牲)을 드리며, 애급을 떠날 때에는 안식일(安息日)을 지킴으로써 스스로를 정결케 하였다.
  • 로마제국 박해시대에는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신도들이 세례(洗禮)와 성만찬(聖晩餐)의 성례(聖禮)를 행하고,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며, 안식일(安息日)을 지킴으로써 정결한 생활을 하였다.
모세는 제1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다.
  • 모세는 제1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다.
  • 모세는 3대 기적(三代奇蹟)과 10재앙(十災殃)의 권능으로 바로를 굴복시켰다.
  • 이와 같이 로마제국 박해시대에 있어서도, 제2 이스라엘 선민들에 대한 4세기 동안의 박해가 끝난 후에 예수님은 심령적인 기적과 권능으로써 많은 신도를 불러일으키셨고,
  • 더 나아가 콘스탄티누스대제를 감화시켜서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게 하셨으며,
  •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서는 그처럼 극심한 박해를 하던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제정하게 하셨었다.
  • 이리하여 기독교인들은 사탄세계에서 영적으로 가나안에 복귀하게 되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十誡命)과 말씀을 받음으로써 구약성서의 중심을 세웠고,
  •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十誡命)과 말씀을 받음으로써 구약성서의 중심을 세웠고,
  •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를 받듦으로써 제1 이스라엘 선민들이 메시아를 맞기 위한 뜻을 세워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 이와 마찬가지로 제2 이스라엘 선민들은 로마제국 박해시대가 끝난 후에 구약시대의 십계명과 성막이상(聖幕理想)을 영적으로 이루기 위한 말씀으로서 사도(使徒)들의 기록을 모아 신약성서를 결정하고,
  • 그 말씀을 중심한 교회를 이룩하여 가지고 재림주(再臨主)를 맞기 위한 터전을 넓혀 나오게 된 것이다.
제2절

사사시대와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

이스라엘 선민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삼손과 엘리와 사무엘을 비롯한 15사사가 400년 동안 이스라엘 지파들을 다스렸다. 이 시대를 사사시대(士師時代)라고 한다.
  • 이스라엘 선민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삼손과 엘리와 사무엘을 비롯한 15사사가 400년 동안 이스라엘 지파들을 다스렸다. 이 시대를 사사시대(士師時代)라고 한다.
  • 이러한 사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신약시대(新約時代)의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敎區長制基督敎會時代)에 있어서도,
  • 역시 교구장들은 기독교 신도들을 영도(領導)하는 면에 있어 사사의 그것에 해당하는 직분을 띠고 있었다.
그들 사사는 다음 시대에 있어 분담된 예언자(豫言者)와 제사장(祭司長)과 국왕(國王)의 사명을 겸임하고 있었다.
  • 그들 사사는 다음 시대에 있어 분담된 예언자(豫言者)와 제사장(祭司長)과 국왕(國王)의 사명을 겸임하고 있었다.
  • 그러므로 유대교의 봉건사회(封建社會)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 교구장들은 기독교 신도들을 영도(領導)하는 면에 있어 사사의 그것에 해당하는 직분을 띠고 있었다.
  • 이 시대의 기독교 사회도 이러한 교구장들을 중심한 봉건사회였다.
사사시대에 있어서는, 사탄세계인 애급(埃及)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거기에서 출생한 그들의 후손들만이 오직 남아진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복지(福地)에 들어간 후에,
  • 사사시대에 있어서는, 사탄세계인 애급(埃及)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거기에서 출생한 그들의 후손들만이 오직 남아진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복지(福地)에 들어간 후에,
  • 각 지파에게 분배된 새 땅에서
  • 사사를 중심하고 새로운 선민(選民)을 형성하여 이스라엘 봉건사회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 마찬가지로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敎區長制基督敎會時代)에 있어서도 기독교는 사탄세계인 로마제국에서 해방된 후,
  • 4세기에 몽고족(蒙古族)의 일파인 훈족의 서침(西侵)에 의하여 서구로 이동된 게르만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 서구의 새 땅에서 게르만 민족을 새로운 선민으로 세워
  • 기독교봉건사회(基督敎封建社會)의 기틀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제3절

통일왕국시대와 기독왕국시대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에 들어서면서 사사(士師)의 직분은 예언자(豫言者)와 제사장(祭司長)과 국왕(國王)의 직분으로 나뉘게 되었다.
  •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에 들어서면서 사사(士師)의 직분은 예언자(豫言者)와 제사장(祭司長)과 국왕(國王)의 직분으로 나뉘게 되었다.
  •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예언자(豫言者)와 성막이나 성전을 받드는 제사장(祭司長)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國王)이 정립(鼎立)하여
  •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각자의 지도적인 사명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에 있어서도,
  • 교구장이 제2 이스라엘을 영도해 나아가던 시대는 지나고,
  • 예언자에 해당되는 수도원(修道院)과 제사장에 해당되는 교황(敎皇)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이
  •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제2 이스라엘을 지도해 나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 당시의 기독교는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의 5대 교구(敎區)로 분립되어 있었다.
  • 그중에서도 가장 우위에 있었던 로마교구장은 다른 교구를 통할(統轄)하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특히 그를 교황이라고 부르게 되었었다.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예언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해야 할 국왕(國王)이었다.
  •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예언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해야 할 국왕(國王)이었다.
  • 예언자(豫言者)나 제사장(祭司長)은 국왕이 설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왕을 축복(祝福)하여 세운 후에는 그 앞에 가인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된다.
  •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국왕이었다.
  • 따라서 교황은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의 예언자의 뜻을 받드는 제사장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국왕이 기독이상을 실현해 나아갈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 그를 축복하여 왕으로 세운 후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해야 되고, 한편 국왕은 교황의 이상(理想)을 받들어 국민을 통치해야 될 것이었다.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에 있어서 국왕은 예언자의 말씀에 의하여 국가를 통치해야 되고, 예언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국왕에게 순종해야 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국왕이었던…
  •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에 있어서 국왕은 예언자의 말씀에 의하여 국가를 통치해야 되고, 예언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국왕에게 순종해야 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국왕이었던 것이다.
  • 사실상 아브라함으로부터 800년 되던 때에, 예언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축복함으로써 그를 제1 이스라엘 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삼상 8 : 19∼22, 10 : 1∼24).
  • 한편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에 있어서 국왕은 교황의 이상(理想)을 받들어 국민을 통치해야 될 것이었다.
  • 사실상 이러한 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교황 레오 3세는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여 금관(金冠)을 씌움으로써 그를 제2 이스라엘 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
사울왕은 선지자(先知者) 사무엘을 통하여 내리셨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에(삼상 15 : 1∼23)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였다.
  • 사울왕은 선지자(先知者) 사무엘을 통하여 내리셨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에(삼상 15 : 1∼23)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였다.
  • 그리하여 사울왕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도 모세 때와 같이, 다윗왕 40년을 거쳐 솔로몬왕 40년에 이르러서야 그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져서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었다.
  • 그러나 솔로몬왕이 음란(淫亂)으로 흘러서 ‘실체헌제(實體獻祭)’를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났기 때문에
  •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제4절

남북왕조분립시대와 동서왕조분립시대

사울왕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는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에 이르러 그가 왕비들이 섬기는 이방인(異邦人)의 신을 섬겼으므로(왕상 11 : 5∼9), 3대 만에 분립되었었다.
  • 사울왕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는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에 이르러 그가 왕비들이 섬기는 이방인(異邦人)의 신을 섬겼으므로(왕상 11 : 5∼9), 3대 만에 분립되었었다.
  • 12지파 중 10지파를 중심으로 세워진 북조(北朝) 이스라엘은 가인의 입장에 있었다.
  • 나머지 2지파를 중심으로 세워진 남조(南朝) 유대는 아벨의 입장에 있었다.
  • 그리하여 남북왕조분립시대(南北王朝分立時代)는 오게 되었던 것이다.
  • 이와 같이 카알대제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기독왕국(基督王國)도 그 3대에 이르러 손자들 3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왕국은 동·서프랑크와 이태리로 3분되었던 것이다.
  • 카알대제의 후손들은 서로 끊임없이 격심한 분쟁을 벌였다.
  • 그러나 이태리는 동프랑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는 동·서프랑크왕국으로 양분된 셈이었다.
  • 한편 동프랑크는 오토 1세로 말미암아 크게 융흥(隆興)되어 신성로마제국이라 부르게 되었고, 로마황제의 이름으로 서구(西歐)를 통치하여 정교(政敎) 2권을 확보하려 하였었다. 이렇게 하여 동프랑크는 서프랑크에 대하여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남북왕조분립시대(南北王朝分立時代)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이상(聖殿理想)에 배치(背馳)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마다
  • 남북왕조분립시대(南北王朝分立時代)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이상(聖殿理想)에 배치(背馳)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마다
  • 하나님은 계속 4대선지(四大先知)와 12소선지(十二小先知)를 보내시어 그들을 권고하여 내적 쇄신운동(刷新運動)을 일으키셨다.
  •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의 권고에도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애급, 갈대아, 시리아,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이방인들에게 부쳐 외적 확청(廓淸)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동서왕조분립시대(東西王朝分立時代)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교황청(敎皇廳)이 부패하매
  • 토마스 아퀴나스, 성프란체스코 등 수도원(修道院)의 인물들이 그들을 권고하여 내적인 쇄신운동을 일으켰었다.
  • 그러나 그들도 회개하지 않고 더욱 타락과 부패에 흘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들에게 부쳐 외적인 확청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니 이것이 곧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이었다.
남북왕조분립시대에 있어서 북조 이스라엘왕국과 남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모두 이방인(異邦人)에게 포로가 되어 감으로써,
  • 남북왕조분립시대에 있어서 북조 이스라엘왕국과 남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모두 이방인(異邦人)에게 포로가 되어 감으로써,
  • 이스라엘의 군주사회는 붕괴되고 말았던 것이다.
  • 이와 마찬가지로 동서왕조분립시대(東西王朝分立時代)에 있어서도, 십자군이 이교도(異敎徒)에게 패하여 교황권이 그 권위와 신망(信望)을 완전히 잃게 되자
  • 국민정신은 그 중심을 잃게 되었다.
  • 그뿐 아니라 봉건사회(封建社會)를 유지하던 영주(領主)들과 기사(騎士)들이 많이 전사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인 기반을 잃고 말았으며, 또 거듭되는 패전으로 인하여 막대한 전비(戰費)를 소모하게 되어 그들은 여지없이 경제적인 곤궁에 빠지고 말았다.
  • 여기에서 기독교군주사회(基督敎君主社會)는 드디어 붕괴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제5절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바빌로니아에서 포로생활의 고난을 겪게 하셨다.
  •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바빌로니아에서 포로생활의 고난을 겪게 하셨다.
  • 여호야김왕을 비롯하여 다니엘과 기타 왕족들, 그리고 정부 대신(大臣)들과 관리(官吏)와 공장(工匠) 등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 갔던 70년 기간이 있었다(렘 39 : 1∼10, 왕하 24, 25장).
  •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있어서, 십자군전쟁이 끝나갈 무렵 유럽에서는 봉건제도가 점차 붕괴되고 근대국가가 대두하게 되었다.
  • 국왕들의 세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교황과 국왕 사이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다.
  • 그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왕 필립 4세는 한때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를 감금하기까지 하였다.
  • 1309년에는 필립 4세가 교황 클레멘트 5세를 강요하여 교황청을 로마로부터 남부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기게 하였다.
  • 이로부터 70년간 여러 교황들이 그곳에서 프랑스왕의 지배를 받으며 지내다가, 마침내 교황청은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되었다.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멸하고 고레스왕이 조서(詔書)를 내려 그들을 해방시킨 후(렘 39 : 1∼10, 왕하 24, 25장) 3차에 걸쳐 고향으로 귀환하여
  •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멸하고 고레스왕이 조서(詔書)를 내려 그들을 해방시킨 후(렘 39 : 1∼10, 왕하 24, 25장) 3차에 걸쳐 고향으로 귀환하여
  • 선지자(先知者) 말라기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준비를 하는 민족으로 세워질 때까지의 140년 기간이 있었다.
  • 교황이 로마로 돌아온 후, 3교황으로 분립되었던 노정과 공의회 운동, 그리고 로마교회를 중심한 교황전정(敎皇專政)의 복귀를 거치는 약 140년의 기간은
  • 1517년에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제6절

메시아 강림준비시대와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 포로(捕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 400년을 지나서야 예수님을 맞았다.
  •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 포로(捕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 400년을 지나서야 예수님을 맞았다.
  • 이는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로서, 4천년에 걸친 종적(縱的) 탕감조건을 횡적(橫的)으로 탕감복귀하는 섭리적 역사의 마지막 시기가 되도록 예정된 것이었다.
  • 기독교 신도들도 교황이 아비뇽의 포로생활에서 로마로 돌아온 후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 400년을 지나서야 재림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는, 아담으로부터 6천년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이 역사의 최종적인 한 시대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가 없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 이스라엘 민족은 느부갓네살왕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성전(聖殿)을 신축하고, 또 말라기 선지(先知)의 영도에 의하여 사신(邪神)을 숭배하던 과거의 죄를 회개하면서
  • 율법(律法)을 공부하고 신앙의 쇄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교황이 로마로 귀환한 후의 중세 기독교인들은,
  • 루터 등을 중심하고 종교의 개혁운동을 일으키어
  • 중세 암흑시대의 암운(暗雲)을 뚫고 새로운 복음(福音)의 빛을 따라 신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던 것이다.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에 하나님은 이방인들간에 있어서도 각각 그 지방과 그 민족에 적응되는 문화와 종교를 세우시어 장차 오실 메시아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심령적인 준비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 메시아 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에 하나님은 이방인들간에 있어서도 각각 그 지방과 그 민족에 적응되는 문화와 종교를 세우시어 장차 오실 메시아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심령적인 준비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 예수님은 이와 같이 준비된 터 위에 오셔서 모든 종교를 포섭함으로써, 그 종교와 문화의 전역(全域)을 하나의 기독교문화권 내(基督敎文化圈內)에 통합하려 하셨던 것이다.
  •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는 문예부흥시대(文藝復興時代)로부터 시작되었다.
  •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면에 걸친 비약적인 발전은 모두 이 문예부흥시대로부터 급격히 시작되어 재림(再臨)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오늘날의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성숙시켜 나온 것이다.
예수님 때에는 로마제국의 발흥(勃興)으로 인하여 지중해(地中海)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대한 정치적 판도와, 사통팔달(四通八達)한 교통편과,
  • 예수님 때에는 로마제국의 발흥(勃興)으로 인하여 지중해(地中海)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대한 정치적 판도와, 사통팔달(四通八達)한 교통편과,
  • 헬라어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범한 문화적 판도 등으로 말미암아
  • 그리스도를 중심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중심한 로마, 로마를 중심한 세계에로 메시아의 사상이 급속히 확대되어 갈 수 있는 평면적인 기대(基臺)가 이미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 마찬가지로 그의 재림(再臨) 때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열강(列强)들의 융흥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정치적인 판도는 전세계에 펼쳐졌고,
  • 교통 및 통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하여 동서(東西)의 거리는 극도로 단축되었으며, 언어와 문화는 세계적으로 교류되어
  • 메시아 재강림을 위한 사조(思潮)가 자유롭고도 신속하게 전인류의 가슴속에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이미 그 평면적인 판도가 완전히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제7절

복귀섭리로 본 역사 발전

타락된 세계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모양을 닮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타락된 세계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모양을 닮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생활을 살펴봄으로써 인류죄악사(人類罪惡史)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 타락(墮落)한 인간에게는 선을 지향하는 본심(本心)과 이 본심의 명령을 배반하고 악을 지향하는 사심(邪心)이 있어서, 이 두 마음이 항상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 이와 같이 그 자체 내에서 투쟁을 일으키고 있는 개체들이 횡적(橫的)으로 얽혀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사회이기 때문에 거기에도 역시 투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그런데 이와 같이 투쟁으로 얽히어진 사회생활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종적(縱的)으로 변전(變轉)하여 내려온 것이 바로 인류역사이므로, 이 역사는 필연적으로 투쟁과 전쟁으로 엮어지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타락된 인간에게도 선을 지향하는 본심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여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 타락된 인간에게도 선을 지향하는 본심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여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에 의하여 엮어져 내려온 역사는, 선악(善惡)이 교착(交錯)되는 와중에서도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해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 그러므로 역사가 지향하는 종국적인 세계는 바로 선의 목적이 이루어진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투쟁이나 전쟁은 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선과 악을 분립해 나온 하나의 과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부단히 선과 악의 분립역사(分立役事)를 되풀이하면서 선을 지향하고 발전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 그런데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 사탄은 타락된 인간을 중심하고 장차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것과 같은 형의 세계를 앞장서 이루어 나왔었기 때문에,
  • 결과적으로 인류역사는 원리형(原理型)의 비원리세계(非原理世界)를 형성하여 나온 것이다.
  •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지상천국(地上天國)을 복귀하시기 전에 사탄을 중심으로 한 그와 같은 형의 비원리세계가 먼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인 것이다.
타락된 인간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원시공동사회(原始共同社會)였다.
  • 타락된 인간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원시공동사회(原始共同社會)였다.
  •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응하려는 인간의 본심(本心)의 작용에 의하여 사탄을 중심하고 조성되었던 원시공동사회에는 일찍부터 싸움에 의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 실상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세계에서 선의 중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자녀를 번식케 함으로써
  •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 그 후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급(埃及)에 들어가서 씨족으로부터 부족으로 발전되었으며,
  • 그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에는 사사시대(士師時代)를 이루었던 것인데, 이 사사를 중심한 사회가 바로 이스라엘 봉건사회였다.
이스라엘 봉건사회로써 사탄편의 침범을 막을 수 있는 소단위의 하늘편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를 형성한 후에, 다시 이것들을 통합하여 보다 더 큰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로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군주사회가…
  • 이스라엘 봉건사회로써 사탄편의 침범을 막을 수 있는 소단위의 하늘편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를 형성한 후에, 다시 이것들을 통합하여 보다 더 큰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로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군주사회가 오게 되었던 것이니,
  • 이것이 바로 사울왕으로 시작된 통일왕국시대(統一王國時代)였다.
  • 하나님은 유대왕국을 멸하신 후,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까지 유대민족을 여러 이방(異邦)들에게 속하게 하심으로써 이 민족의 왕위를 비워 두셨다.
  • 하나님은 장차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 민의(民意)에 의하여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이스라엘 사회를 헬라식 민주주의(民主主義) 형태로 이루어 놓으셨다.
  • 그러나 유대인들의 민의는 예수님을 왕위에 올려 세우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에 살해하고 말았으므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영적으로만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당초에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모시어 하나가 되었더라면, 로마제국을 중심하고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는 응당 살아 계신 예수님에게 감화되어,
  • 당초에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모시어 하나가 되었더라면, 로마제국을 중심하고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는 응당 살아 계신 예수님에게 감화되어,
  • 그를 왕으로 모시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왕국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유대민족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메시아왕국을 위한 터전이 되었어야 했던 로마제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서기 476년에는 서로마가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패망되고 말았다.
  • 유대민족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메시아왕국을 위한 터전이 되었어야 했던 로마제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서기 476년에는 서로마가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패망되고 말았다.
  • 이리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중심은 하나님의 한(恨)이 서린 땅 유대로부터, 옛 서로마제국의 영토였던 서구(西歐)로 옮겨지게 되었다.
  • 따라서 예수님 이후에 있어서의 기독교에 의한 영적 복귀섭리는 서구를 발판으로 하고 이루어 나왔기 때문에,
  • 이 시대의 복귀섭리역사는 서구에서만 전형노정(典型路程)을 따라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유물사관(唯物史觀)에서 논하고 있는 역사발전 과정도 서구의 역사에서만 적응되고 있는 바, 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이와 같이 되어 서구를 중심한 기독교사는 복귀섭리연장시대(復歸攝理延長時代)를 형성한 중심사료(中心史料)가 된 것이다.
이러한 부조화(不調和)는 종교와 경제의 관계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경제도 역시 과학과 같이 현실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더욱이 과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부조화(不調和)는 종교와 경제의 관계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경제도 역시 과학과 같이 현실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더욱이 과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관계로 인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에 의한 종교사(宗敎史)와 그 외적인 섭리에 의한 경제사(經濟史)는 그 발전에 있어서 서로 방향과 진도를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 따라서 종교와 경제는 그 발전과정에 있어서 서로 상충적인 면을 지니면서도, 우리의 사회생활과 결부되어 각각 기독교사와 경제사를 형성해 온 것이다.
  • 그러면 그것들은 우리의 사회생활과 어떻게 결뉴(結紐)될 수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정치에 의해서였다.
  • 서구(西歐)의 정치사(政治史)는 종교와 경제를 조화시키려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 따라서 복귀섭리를 위한 역사의 발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는 정치사도 역시 별도로 고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수님을 살해한 유대민족은 이미 사탄편 계열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회를 그대로 두시고는 복귀섭리를 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 예수님을 살해한 유대민족은 이미 사탄편 계열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회를 그대로 두시고는 복귀섭리를 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 따라서 하나님은 이 사회를 분열시켜 그 가운데서 독실한 기독교 신도들을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기독교씨족사회(基督敎氏族社會)를 세우셨던 것이다.
  • 기독교씨족사회는 원시기독교사회(原始基督敎社會)였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도 정치나 경제에 있어서의 어떠한 제도가 필요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립된 발전을 할 수 없었다.
  • 기독교씨족사회(基督敎氏族社會)는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 안에서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받아 가면서 번성하여 기독교부족사회(基督敎部族社會)를 형성하는 데 이르렀었다.
  • 서로마제국의 판도 안으로 이동해 온 게르만 민족에게 기독교가 침투됨으로써 그들을 중심하고 광범한 기독교사회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왕권(王權)이 쇠미해지고 국가가 무질서한 상태에 빠졌을 때 봉건사회는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왕권(王權)이 쇠미해지고 국가가 무질서한 상태에 빠졌을 때 봉건사회는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 하나님은 게르만 민족을 새로운 선민(選民)으로 교화(敎化)하여 봉건사회를 수립함으로써 쇠망한 서로마의 터전에다 종교와 정치와 경제의 3면으로 소단위의 하늘편 판도들을 강화하여,
  • 장차 하늘편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종교면에 있어서 기독교봉건사회(基督敎封建社會)에 뒤따라 온 기독교군주사회(基督敎君主社會)는
  • 종교면에 있어서 기독교봉건사회(基督敎封建社會)에 뒤따라 온 기독교군주사회(基督敎君主社會)는
  •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敎皇)을 중심하고 세워졌던 국토 없는 영적 왕국사회였다.
  • 17세기 중엽부터 봉건계급이 몰락됨에 따라 지방으로 분할되었던 영주들의 권력은 국왕을 중심하고 중앙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 이와 같이 국왕이 봉건계급사회의 영주의 입장을 벗어나 정치면에서의 군주사회(君主社會)를 사실상 형성하였던 것은 17세기 중엽으로부터 1789년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이 일어날 때까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봉건사회(封建社會)에 뒤이어 오는 것이 군주사회(君主社會)라면, 경제면에 있어서의 봉건사회에 뒤이어 오는 것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사회(資本主義社會)와 그 뒤에 따라오는 제국주의사회(帝國主義社會)인 것이다. 국정(國政)에 대한 독재가 군주주의의 특색인 것같이, 금융자본(金融資本)에 대한 독점이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의 특색이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는 17세기 중엽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가 시작될 무렵부터 싹이 터 영국의 산업혁명기(産業革命期)로부터는 점차 원숙기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군주사회(君主社會)를 깨뜨리고 메시아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세우신 것이다.
  • 하나님은 군주사회(君主社會)를 깨뜨리고 메시아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세우신 것이다.
  • 종교면에서의 역사발전 과정에 있어서도, 1517년 종교개혁(宗敎改革)으로 인하여 교황을 중심한 국토 없는 영적인 왕국이 붕괴된 후에 기독교민주주의시대(基督敎民主主義時代)가 왔다.
  • 기독교민주주의는 종교개혁을 일으킴으로써 교황이 독재하여 내려오던 영적인 왕국을 붕괴시켰다.
  •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전제군주주의(專制君主主義)에 대항하여 일어난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영(英)·미(美)와 불란서(佛蘭西)에서 민주주의 혁명을 일으키어 군주사회(君主社會)를 붕괴하고 민주사회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 한편 경제사(經濟史)의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그 발전법칙에 의하여 제국주의(帝國主義)를 깨뜨리고 민주주의적인 경제사회(經濟社會)를 이룩하기 위하여 사회주의(社會主義)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늘편의 사회주의사회(社會主義社會)를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은 마침내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共義主義)를 부르짖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이루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 하늘편의 사회주의사회(社會主義社會)를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은 마침내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共義主義)를 부르짖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이루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 이 세계가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중심한 지상천국(地上天國)인 것이다.
  • 사탄은 하나님의 섭리를 앞질러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므로, 사탄편에서는 먼저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입각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를 부르짖어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서구(西歐)를 중심하고 이루어진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는 종교사와 정치사와 경제사의 3면으로 분립되어 각각 공식적인 노정을 통하여 발전하여 나왔다.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하여서 서로 동일한 역사노정에서 융합되는…
  • 서구(西歐)를 중심하고 이루어진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는 종교사와 정치사와 경제사의 3면으로 분립되어 각각 공식적인 노정을 통하여 발전하여 나왔다.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하여서 서로 동일한 역사노정에서 융합되는 섭리역사로 종결을 지어, 재림이상(再臨理想)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인가?
  • 이렇게 3부면(三部面)으로 발전해 온 역사가 하나의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초점으로 귀결되기 위하여서는, 종교와 과학을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진리(眞理)가 나와야 한다.
  • 그리고 이러한 진리에 입각한 종교에 의하여 온 인류가 하나님의 심정(心情)에 귀일(歸一)함으로써
  • 하나의 이념을 중심한 경제의 기대 위에 창조이상(創造理想)을 실현하는 정치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니,
  • 이것이 바로 공생공영공의주의에 입각한 메시아왕국인 것이다.